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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07. 2019

인간의 대지

사막 여행자와 장미꽃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어릴 적에 가졌던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반대해서, 돈이 부족해서, 재능이나 체력이 부족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안타깝게 꿈을 포기하고는 한다. 꿈과 현실이 충돌할 때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예술가 생텍쥐페리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고집스럽게도 꿈을 좇았던 사람이었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우편물을 나르는 비행기 조종사로서 거의 한 평생을 하늘 위에서 지냈다. 기술력이 부족한 당시에 비행기 조종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텍쥐페리는 가족의 극심한 반대와 몇 번의 시험 탈락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조종사 일자리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덕분에 그의 아내는 고향에서 홀로 아이를 키워야만 했다. 생텍쥐페리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부부는 크게 싸우곤 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에게 끝없는 지평선과 대양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기에 그는 결코 비행을 멈출 수 없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는 그가 노트에 적은 여러 단상이 담겨 있다. 그는 비행기로 우편 화물을 운송하느라 밤낮없이 바다와 산을 건너곤 했다. 비행을 떠나는 날은 그날이 곧 생애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뜻했다. 비행사들은 해상에서 안전하다는 신호로 무전을 보내곤 하는데, 어떤 비행사는 지평선을 넘어가고 몇 분이 지나도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걸로 그의 운명도 끝이라는 것을 동료들은 직감했다.




"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연장이 필요하다. 대패나 쟁기가 필요한 것이다. 농부는 땅을 갈면서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캐낸다. 그가 캐내는 진리야말로 보편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항공로의 연장인 비행기를 통해 모든 오래된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하늘의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연 앞에 선 인간으로서 겸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거대한 자연과 대립하고, 넓은 세상을 보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을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자연은 한 인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생텍쥐페리는 동료와 함께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사막 한가운데 추락하고 말았다. 물 한 방울 없는 상황이었다. 천막에 이슬을 받았지만 녹이 섞인 물이 되어서 복통과 구토를 일으켰다. 쓰러질 듯 걸어가던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환영까지 보았다. 구조하려는 사람들이 달려오는 환영이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한 행인을 만나 구조되었다. 그들이 끝없는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텍쥐페리는 죽음에 직면해서야 진짜 생명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늘 위를 외롭게 나는 조종사에게도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대지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 생텍쥐페리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인간적인 유대감이야말로 진정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치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머리의 깨달음을 따르기에는 너무나 하늘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었다. 생텍쥐페리는 구조된 후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찌그러진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좁은 구석에 몸을 구기고 있었다. 한때 서로 설렘을 느꼈을 부부들도 서로를 보지 않고 진흙처럼 뭉그러져 있었다. 생텍쥐페리가 그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과 답답함, 환멸이었다.



이처럼 현실보다는 모험을 사랑했으며 높고 넓은 자연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던 예술가는 결국에는 운명처럼 구름 위 세상으로 영원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생텍쥐페리의 마지막은 외딴 바다 위 상공에서 비행하다가 돌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 외롭고 우울했던 예술가는 위험 지역 해상까지 나아가 추억을 떠올리다 독일군에게 격추되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아무리 하찮은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을 깨달을 때, 그때에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니까." - <인간의 대지>



사막을 여행하던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별에 두고 온 장미, 바오밥나무. 마치 지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어린 왕자'의 상상력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늘을 동경했지만 언제나 대지에 대한 향수를 느꼈던 생텍쥐페리처럼, 어떤 사람들은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끝없이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아쉬워하다 결국에는 그 꿈이 뭐였는지도 잊어버린다. 선택의 신은 참 얄궂다. 그래도 마음이 가는 길을 간다면 조금은 더 희망적인 내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살짝 기대해본다.




책 속의 글귀: 펭귄클래식 코리아





아트렉처 에디터_양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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