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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Apr 03. 2019

Rothko and Mozart

Art an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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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ko and Mozart



로스코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구도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가 쓴 마크 로스코 전기가 출간됩니다. ‘Mark Rothko, From the Inside Out’ 제목 그대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족의 눈으로 인간 마크 로스코를 재조명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책에 나온 내용 그대로 보여드리면 a painter “who aspired to be a musician” 이 우리가 몰랐던 마크 로스코의 숨은 비밀이었습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항상 모짜르트의 오페라가 흘러나오는 작업실 광경을 익히 알고 있었고, 모짜르트는 그에게 작품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  원천이라고 합니다. 로스코는 고전주의의 간결함과 형태의 미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런 고전주의 음악가 중에서도 간결함과 형식미만을 통해서 희노애락이 풍부하게 표현되는 모짜르트의 오페라를 무척 좋아했던 것입니다.



과연 모짜르트의 오페라는 어떻길래 이 세계적인 미술가를 사로잡고 그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까요?


모짜르트의 오페라 중에 대표작인 Don Giovanni, Le Nozze di Figaro, Die Zauberfloete 이렇게 3 작품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3개의 주요 오페라 가운데, 제일 처음 완성된 '피가로의 결혼'은(그의 전체 오페라 중에는 중반 이후에 해당합니다) 바리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의 작품 중 바리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오페라는 리골레토와 팔스타프 정도인데, 모짜르트는 돈지오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등의 주인공이 다 바리톤입니다. 전체적인 음악적 완성도가 중요했던 모짜르트에게는 당시 유행하던 일반적이던 이태리 오페라 스타일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리히 클라이버의 명반도 있지만, 실비아 맥네어의 수잔나를 런던에서 직접 본 인연으로 제일 아끼는 녹음입니다


오페라 전체의 진행을 레치타티보 등으로 빠르게 넘기고, 중요한  부분에 등장하는 아리아 (대부분 사랑을 노래하며,  일반적으로 오페라는 세명의 주인공이 삼각관계에 빠진 작품이 많습니다)를 주인공이 멋지게 부르는 당시의 일반적인 오페라는 남자(테너)와 2명의 여자 (소프라노, 메조)가 등장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 부르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럴 경우에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큰 아리아 자체로 보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소화할 수 있는 테너와 소프라노가 메인 곡을 부르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바리톤이 주연을 하게 되면, 뭔가 맑은 고음을 멋지게 뽑아내는 우리가 기대하는 테너의 아리아는 불가능해집니다. 하지만 테너보다 바리톤들은 일반적으로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넓은 특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짜르트는 한 두곡의 아리아로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음악을 통해 전체 스토리를 이끌고 나갈 주인공역을 창조하는 데 더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작품으로 돌아가, 피가로의 결혼 1막을 예로 보면 서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면 피가로가 등장해서 결혼식을 앞두고 신방으로 사용할 방의 치수를 재며 수잔나와 함께 즐거워하는 쾌활한 노래로 시작합니다. ("Cinque, dieci, venti") 그러다가 남자(피가로)와 여자(수잔나)의 생각 차이가 나타나고 (수잔나는 백작에 대해 걱정스럽지만 피가로는 계속 쾌활한)("Se a caso madama la notte ti chiama") 그러고 나서 백작의 음흉한 속셈에 대해 나름 준비가 돼있음을 알리는 (Cavatina "Se Voul Ballare signor contino")까지, 처음 등장해서 극의 전체 분위기에 대한 암시를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성격의 노래를 3곡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래를 통해 전체 극의 진행을 끌고 가고자 했던 모짜르트라면 주인공에 테너를 배치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물론 모짜르트도 당시의 관객 호응 등을 위해, 테너 아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지오바니에 나오는 돈오타비오(테너)의 아리아 "Dalla sua pace"는 최초 공연 시에는 없었다가 이후에 추가로 삽입된 곡이라고 합니다. 모짜르트의 테너 아리아 중에 테너 리사이틀에 공연되는 곡이 그나마 이 아리아와 마술피리의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on" 정도 인걸 생각해 보면 모짜르트의 이런 배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피가로로 돌아와 그 스토리를 보면 중세 시대의 악습인 초야권과 이 작품의 전편에 해당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이루어진 백작과 백작부인의 사랑이 식었다가 다시 피어나는 동안 생기는 에피소드와 러브라인, 그리고 피가로가 지고 있는 사채와 그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피가로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등 오페라 중에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극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짜르트는 이 많은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다양한 중창을 통해 극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극의 무난한 진행은 물론 음악적 완성도도 상당히 높이는 그야말로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해결하는 대단함을 보여줍니다.  (대사 처리를 일반적인 레치타티보로 하게 된다면 등장인물들의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 음악 부분의 연결성이 떨어져 전체적인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피가로의 결혼'은 극과 음악의 일치를 통해 오페라의 완성도를 그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전혀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발표된 그 이듬해 곧바로 돈지오바니가 발표됩니다. 이 오페라는 돈 후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나 윤리의 틀을 뒤집는 스토리 덕분에 음악 자체의 얘기보다는 철학적 해석이 더 분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반박하는 주인공을 지옥의 문이 열려서 끌고 내려가는 부분은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할 때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렇지만 작곡가가 원했던 건 그런 철학적 분석이 아닐 겁니다.



줄리니의 이 오래전 녹음은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고, 저 역시 최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에만 집중해서 보더라도 이 돈지오바니 역시 아주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두 명의 바리톤 (또는 바리톤과 베이스)이 주인과 하인으로 등장하는 포맷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분량도 사실 주인공(돈지오바니)과 조연(레포렐로)이 별반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거기에 3명의 소프라노가 등장하는 데 각각의 성격이 (드라마틱, 리리코 스핀토, 수브레토 - 소프라노의 목소리 스타일에 따른 분류로 아주 강하고, 강하지만 표현이 다양하며, 가벼운, 이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확연이 틀린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각 소프라노의 파트너 격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사장(베이스) 돈오타비오(테너) 마제토(바리톤 또는 베이스)인데 기사장은 훨씬 무거운 음질로 노래하고(Dramatic basso profondo) 테너는 가벼운  성격(leggero) 그리고 바리톤 역시 가벼운 성격의 가수가 불러야 합니다.  돈지오바니는 기본적으로 높은 바리톤이 하는 것이 맞고 레포렐로는 좀 더 낮은 음역의 하지만 코믹한 성격의 목소리가 불러야 하는데, 이렇게 보면 등장인물마다 부여한 음악적 성격이 얼마나 서로 다른 지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완성도 높은 소설을 보더라도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해서 전체적인 구조가 완벽한 작품이 흔치 않은데, 이걸 음악적으로 균형을 잡고, 다양한 대칭을 통해 여러 요소를 구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의 기반은 고전주의라는 음악적 형식 아래에 이루어집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균형과 대칭 등은 로스코도 아주 좋아한 컨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점 (단순하면서 균형과 대칭이 잘 이루어져 있는)을 통해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모짜르트의 음악이 음악가를 꿈꾸었던 위대한 미술가에게 영감의 샘물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술피리가 있습니다. 이 마술피리는 독일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독일 음악극인 징크슈필의 전통에 따라 음악이 수반되지 않는 순수한 대사 부분도 들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독일 외의 지역에서는 이 대사가 삭제되고 연주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 마술피리 역시 음악적으로 상당히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스토리 상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조수미가 밤의 여왕을 맡은 솔티의 두 번째 녹음 음반입니다.



1막과 2막에서 밤의 여왕의 성격이 변모하는 모습과 자라스토로의 역할 등에 대한 여러 논란은 역시나 여러 가지 세계관을 대표하는 철학적인 분석으로 시끌벅적 합니다. 마술피리가 등장하면 빠지지 않는 것 하나가 바로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스토리에 3과 관련된 많은 내용 (‘세 개의 문’, ‘세 개의 계율’, ‘세 개의 교훈’, ’세 개의 시련)등을 프리메이슨과 연결하고, 서곡의 첫 부분이 3개의 화음으로 분리돼서 시작하는 것도 프리메이슨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만약 모짜르트가 진짜 극 안에 프리메이슨을 넣고 싶었다면 모든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이렇게 뻔한 방법으로 집어넣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시 유행하는 프리메이슨 분위기를 (모짜르트도 프리메이슨의 일원이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하며, 진위야 아무도 알 수 없는) 오페라의 흥행 요소로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모짜르트가 했다고 하기에는 그의 wit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사실 스토리상의 3의 의미가 계속 나오는 것은 모짜르트가 만든 게 아니고, 대본을 쓴 Emanuel Schikaneder인데 이렇게 대본에 계속 3의 의미가 나오는 것을 음악적으로 보여 준 것 일거라는 생각이 좀 더 원래의 모짜르트와 가깝지 않나요?



이렇듯 어떠한 스토리가 오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적 언어(simple and balanced)를 통해 재창조된 새로운 감정을 청중에게 불러일으킨 모짜르트처럼, 로스코도 본인이 겪은 많은 인간적인 슬픔과 좌절 등의 많은 스토리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단순화시킨 형식 안에서 녹여내어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작가와 감정의 동화가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창조해낸 인류 역사의 위대한 천재중 한 명입니다.



지난번 한국에서 열린 로스코전은 가보신 분은 다 아시는 것처럼 흥행에 성공한 5일장 분위기라 거장의 그림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기회가 생겨 로스코를 보러 미국에 간다면, 꼭 돈지오바니를 귀에 들으며 그의 그림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훈수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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