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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y 31. 2019

현대의 풍경화가

올라퍼 엘리아슨

https://artlecture.com/article/764

Rainbow assembly


전시장에 들어선다. 물 냄새와 습한 기운이 피부를 적신다. 천장에서부터 작은 물방울들이 촘촘한 가랑비처럼 떨어진다. 전시장 한 가운데 물로 이루어진 원형의 얇은 장막이 드리워 있다. 방 안 공기의 흐름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해, 부슬거리는 물줄기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물의 커튼 위쪽에는 옅은 무지개가 일렁이고 있다. 한 발 앞으로 디디니 무지개는 보이지 않고 흰 물방울 뿐이다.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다시 붉고 푸른 무지개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광경에 매료되어 손을 뻗어 물방울을 만져보기도 하고 잠깐 동안 물 안개에 몸을 적시기도 한다. 옷자락이 젖을 때까지 물줄기 속에서 노니며 그 변화하는 모양을 지켜본다. 그러다 천장을 보면 이 광경을 만들어낸 기계 장치가 보인다. 원형의 쇠 파이프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고 간격을 두고 흰 전구가 설치되어 작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물줄기들을 비추며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삼성 리움미술관에 설치된 이 작업은 1998년의 <Beauty>를 재구성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2016년 작 <Rainbow assembly>이다. 





엘리아슨이 미술관에 가져다놓은 물 안개와 무지개에 취해 있노라면 이것을 무엇으로 분류하고 식별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자연인가? 인공인가? 자연적인 인공? 인공적인 자연? 그리고 이 순간의 감각적인 매료가 스펙터클한 광경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쾌에 불구한 것 아닌지, 과연 지속되어 가치있는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덴마크 태상의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물이나 빛, 바람과 같은 자연요소들을 기계장치를 통해 공간에 설치하는 작업을 해 왔다. 그의 작업의 중심에는 그 소재이자 주제로서 자연적 대상이 있다. 그의 작업에서 빛은 다른 대상들을 비춰주며 시각성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써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로서 다루어진다. 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기물적인 자연, 즉 배경으로서 후경에 있어왔던 물, 바람, 흙, 이끼 등이 여기서는 주연으로서 전면에 제시된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이들의 아름다움과, 이들이 가능케하는 시청각, 촉각의 경험, 이들이 주는 정서적 반향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감각은 당연시되었던 대상들에 집중된다. 그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한편 그가 미술관 안팎에 설치한 작업들은 감상자의 움직임과 행동에 반응한다. 감상자가 작업을 이루며 완성하는 한 요소로서 그 안에 참여하는 것이다. <Rainbow assembly> 에서 처럼, 감상자는 작품 안을 거닐고 그 움직임은 낙하하는 물의 흐름이나 무지개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감상자는 작업을 자신과 분리되어 있으며 자신의 시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외부 사물이나, 특권적인 위치에서 자신에게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라는 특정 인물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 관계는 빛 설치 작업인 <Your unpredictable sameness> 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작업에서는 두 개의 쇠 막대기로 이루어진 기계 팔이 움직이고 있다. 두 막대기는 관절처럼 연결되어 있고 아래 막대기의 끝에는 작은 조명이 붙어 있다. 이 팔은 벽에 달린 모터에 부착되어 있는데, 모터가 팔을 위로 향하게 했다가 떨어뜨리면 막대기들은 무작위적으로 흔들린다. 진자처럼 움직이는 위 막대기에 연결된 아래 막대기는 윗 막대의 움직임에 반응해 흔들리기도 하고 돌기도 한다. 이에 따라 조명도 예측할 수 없는 경로로 움직인다. 이 작업은 비단 이 기계 장치와 조명의 움직임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변화하는 건 이 장치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업 앞에 가만히 선 감상자는 자신의 그림자도 빛의 이동에 따라 길어지고 짧아지고, 흔들리고 도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은 그대로인데, 자신의 일부이자 분신, 내가 원인이 되어 만들어진 그림자는 움직인다. 주인인 자신이 손 쓸 수 없이 흔들리고 있는 그림자를 보며 기이한 느낌이 든다. 돌이켜보면 그림자라는 것도 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나’, 즉 빛과 ‘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부는 사실상 변화하고 있고, 이는 내 시각에 변화를 준다. 보이는 세계, 자신을 이루는 요소들과 자신에 대한 인식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감상자를 작업의 한 요소로 참여시키는 그의 작업들은 작업과 감상자, 외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일방적이고 의도에 부합하는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고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 요소와 그 미적 감흥에 감탄하고, 작업을 경험하는 내내 그 모습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이 모든 유사 자연 현상을 만들어 낸 기계 장치이다. <Rainbow assembly>에서는 고개만 들면 보이는 천장의 쇠파이프와 조명이, <Your unpredictable sameness>에서는 작동음을 내는 모터와 회전하고 있는 쇠 막대기가 그러하다. 감상자들은 이 유사 자연 현상이 주는 환상적인 느낌에 빠져들다가도 동시에 기계성과 인위성을 보고는 몰두에서 잠시 깨어나게 된다. 

이 기계장치들은 감상자들에게 작업의 감각적 효과들에 빠져들지만 말고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라고 요청한다. 즉 눈 앞에 있는 이 현상들은 자연적이지 않으며, 특정 매체의 효과이고 어떤 사람의 형성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움과 진실임을 가장하는 스펙터클들이 만연한 문화와 이에 빠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 또한 이 기계장치들은 이 유사 자연 현상의 배후에는 어떤 과학 원리, 즉 예측 가능한 법칙이 있고, 자연에는 인간이 개입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측면이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능력, 과학, 기술, 이성적 사고와 상상력을 이용해 자연을 더 낫게 변화시킬 가능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슨의 작업을 현대의 풍경화(landscape)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요소들을 작업의 소재로 다루며 자연의 일부 요소들을 선택해 제시함으로써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엘리아슨의 작업은 풍경화 전통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첫 눈에 풍경화 장르로 식별하고 분류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엘리아슨의 작업은 기존 풍경화와 시각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전통적 풍경화가 자연을 재현했다면 엘리아슨은 자연의 요소를 그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재구축한다. 또 전통적 풍경화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상정하고, 작품의 틀로써 둘의 경계를 지으며, 원근법적인 시선과 자연미에 대한 특정한 모델을 바탕으로 자연을 모방한다. 반면 엘리아슨은 작업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감상자도 자연 현상들에 참여해 이를 오감으로 경험한다. 감상자가 작업과 같은 수준에서 작업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인간도 자연과 사회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 반응하고 변화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엘리아슨은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고 참여하며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개개인이 더욱 이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책임감 있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술관을 나온다. 빛과 빛이 만들어내는 색, 드리운 그림자가 보인다. 목 뒤로 스쳐가는 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거기 ‘내’가 있다. 변화하며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자연 그리고 세상과, 또 이 모든 것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나’를 느낀다. 그리고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좀 더 아름답고 재미있고 좋은 무언가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그림자와 일렁이는 무지개가 마음 한 켠에서 아른거린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 _지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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