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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Aug 14. 2019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바바라 크루거 : Forever>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19. 06. 27 ― 2019. 12. 29

https://artlecture.com/article/932



You are not yourself



바바라 크루거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 태생의 작가이다.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성, 계급, 인종, 외모 지상주의 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 준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 철폐, 여성 동등권, 성 소수자 차별 반대, 동물 해방 등 유무형의 사회 제도가 만들어 내는 차별과 혐오와 불평등에 대항하는 여러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특히 여성의 권리와 지위 향상을 위한 변혁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크루거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고 당대의 현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통제와 억압을 주요 화두로 삼은 크루거는 작품을 통해 대상화된 여성의 실상을 폭로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의 신화를 해체한다. 크루거의 1982년 작 <You are not yourself>는 이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You are not yourself


바바라 크루거의 <You are not yourself>에 보이는 깨진 거울과 그 위로 비춰지는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의 대중 매체를 통해 이미 본 듯한 익숙한 이미지이다. 실제로 광고와 영화 등에서 차용된 이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화면 안에서 그 전형성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화면 위쪽에 자리한 강한 타격의 흔적과 깨어진 거울, 그리고 파편화된 이미지와 텍스트의 공격적인 구성은 시각적인 강렬함과 더불어 남성 중심 문화의 지배 구조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과 그것의 타파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sex)이 아닌 사회적 · 후천적으로 학습된 성(gender)은 남성을 권력을 가진 주체로 상정하고 여성을 타자로서 존재하게 한다. 크루거는 오래된 사진 연간물, 실용 안내서, 잡지 등의 대중 매체에서 추출한 이미지와 대중적 명언, 정치 문구, 광고 선전 문구로부터 유래된 강력하고 풍자적인 글을 사진에 덧붙임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 안에 조성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저항한다. <You are not yourself>는 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조장하는 사회를 고발하면서 동시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Who are you?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작품에서 언급한 ‘당신(You)’은 과연 누구인가? 우선 You는 거울에 비친 여성,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인습화된 고정 관념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You는 남성 중심의 사회 문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이며 수동적이고 소비되는 대상이다. 그렇기에 여성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You are not yourself). 한편 화면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더불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깨진 거울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You가 지칭하는 대상은 달라진다. 여기서 거울은 남성 중심의 사회적 관습과 규범을 상징하며 여성을 대상화한다. 부서진 거울과 그 속에 비치는 여성의 모습은 남성적인 힘과 지배력을 파괴하려는 의지와 소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남성(You)은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권력을 지닌 자로서 존재할 수 없다(You are not yourself).

이밖에도 You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체계로 정의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You는 작품을 보는 관객을 뜻하는 동시에 일반적인 사람들, 즉 사회 구성원을 일컬을 수 있다. 그렇다면 ‘You are not yourself’는 현대 사회에서 당신이 정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냐는 물음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부서진 여성의 이미지가 가지는 전형성의 재생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우리가 보는 거울 속의 여성이 상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남성 중심 사회 체제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수동적인 여성성의 파괴 또는 사회 주류를 형성하는 남성 중심 문화의 파괴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부서진 거울 속 여성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You are not yourself


화면 속의 문장 ‘You are not yourself’에서 not은 다른 단어들에 비해 현저히 크기가 작다. 하지만 검은 바탕 위에 쓰인 흰 글자는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화면 안에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존재한다. 검은 볼드체를 크게 오려 붙인 ‘당신은 당신 자신이다(You are yourself)’와 not이 결합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You are not yourself).’ 이는 ‘당신이 당신 자신인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당신은 실체로서 존재하며 본능과 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회 제도 속에서 학습되고 규정되고 길들여진 존재이며 당신이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주체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사실 환상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 제도의 변동이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 등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 실재하는 당신도 외부의 압력이나 환경의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즉, 당신은 당신 자신이면서 동시에 당신 자신이 아니다. You are not yourself. 이 말은 존재의 영속과 고유함을 추구하지만 유한하고 변하기 쉬운 존재인 인간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담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적 권력을 고발하고 사회의 문화적 · 정치적 담론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Visual communication


바바라 크루거의 <You are not yourself>는 예술 작품의 형식과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 작품은 화가의 서명 이외에는 글자를 배격하고 이미지만으로 작품을 설명하였다. 그러던 것이 현대에 와서는 텍스트 위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텍스트가 예술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다.

<You are not yourself>는 언뜻 보면 광고처럼 보인다. 실제로 크루거의 작품들은 잡지, 책, 포스터, 간판, 가방과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인쇄되었고 공공장소의 선전용 문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옥외 간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전시 방법은 전시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미술 작품을 가두었던 전통적인 전시 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섰다. 미술관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넘어 대형 간판, 책표지, 티셔츠, 포스터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하는 작품 유통 전략은 크루거의 작품이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자 하는 소통의 미술임을 보여 준다. 작품의 매체가 사진이라는 것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루거는 사진을 직접 찍지 않고 기존의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 · 병치시켰는데 이는 전통적인 사진 개념에 반하는 이미지의 독창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크루거는 광고를 자신의 언어로 치환하여 성공적으로 작품에 이용하였고 사진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한 작품 형식은 이미지의 차용, 작가 정체성의 해체, 복제성,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구분을 와해하며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의 경계에 위치하는 탈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매김했다.




Whose values?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는 예술 형식을 통해 당대의 사회 모순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평서문이나 고발적 문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회의 부조리나 불공평을 고발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역설적이게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생산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작품 속의 텍스트는 직접적으로 성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극단적으로 확대되거나 잘려진 인물 또는 사물과 같은 파괴적이고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지닌 이미지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텍스트는 이미지와 결합되어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미지를 명확하게 한다. 사진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더불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 고발적인 작품으로 재생산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크루거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함으로써 모더니즘 미술의 신화에 일침을 가한다. 또 이미지의 진실성은 그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이 만든 사회적 담론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바바라 크루거


바바라 크루거는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남성에게 예속시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예술로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였다. 크루거는 작품을 통해 지배 집단과 권력의 작동 방식을 풍자 · 폭로하고 대중의 의식을 바꾸었다. 크루거의 작품은 사회의 이면에 존재하는 부조리하고 부정한 권력이나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는 작가의 정신을 표방하는 산물이다.


*이 글은 저작권법에 따라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필자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영리적 ㆍ 비영리적 목적이든 간에 글의 인용이나 게재를 금합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나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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