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충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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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돈의문 #전차
다소 불친절한 나만의 기록
충정로-서대문 도보 왕복 30분
1899년, 서울에 돈의문(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왕복하는 전차가 개통되었다. 1901년에는 돈의문에서 마포까지 전차선이 연장되었다. 돈의문에서 마포까지 가려면 '충정로'를 거쳐야한다.
이번 걸음 기록은 충정로에서 서대문, 서대문에서 충정로를 왕복하는 코스이다. 전차노선도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충정로는 '서대문'과 '아현동'사이에 위치한다. 사라진 전찻길을 상상하며 걸어보았다
서대문사거리에 서대문고가가 있었다. 2015년 9월, 개통 44년만에 서대문고가도로는 완벽히 철거되었다. 아현고가, 홍제고가에 이어 서대문고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대문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버스 중앙차선이 만들어졌다. 나의 출근길을 책임지는 버스중앙차선이기도하다. 미동초등학교 앞에 놓인 육교에 올라가면 서대문사거리와 마포방향의 충정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대문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일로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지하철역이다. 서대문사거리에 위에, 서대문구, 종로, 중구의 경계에 위치해있다.
1936년 8월 조선신문사는 대형 조감도 '대경성부대관大京城府大觀 을 발행했다. 이 지도는 일본인 오노 가즈마사이가 제작하였다. 경성(서울), 인천, 월미도까지 포함된 한 장의 조감도로 마치 구글 항공뷰를 보는 듯 하다.
서대문우체국
- 1901년 한성 우체사 경교지사로 업무 개시
서울 적십자병원 - 1905년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됨과 동시에 적십자병원도 창립
4.19 혁명 기념 도서관
- 1964년 4.19이념과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계승 발전시키고자 설립된 도서관
죽첨장에서 경교장으로
- 1938년 일제의 금채굴장려정책으로 금광재벌이 된 최창학이 세운 2층 서양식 건물
죽첨장은 그 당시 가로명 죽첨정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은 주로 외빈 접대용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최창학은 친일 이력을 없애기 위해 김구에게 집을 무상으로 내주었고 김구는 '경교장'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이 건물은 1949년 김구 서거직전까지 임시정부 청사와 거처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복원 후 전시공간이 되었다.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의 서(쪽)대문이다. 의로움義을 돈독히敦 한다는 뜻이다. 1396년(태조 5년) 한양도성이 마무리되면서 사대문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돈의문이 처음 설치되었다. 이후 몇 차례 위치를 옮겨 새로 설치하다가 1422년(세종4년) 현재 정동사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북문 숙정문은 풍수상의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기에 돈의문이 사람과 물자의 통로가 되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 서대문정거장이 생겨났고 이로 인하여 돈의문 주변의 교통량이 폭증했다. 1915년 일제는 돈의문을 철거해버렸다.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10시~오후7시 / 무료
1422년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돈의문이 조성되면서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골,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1960-70년대까지 새문안동네에는 서울고, 경기고, 경기여고 등 명문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다수의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강북삼성병원 신관과 같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기존 건물을 전면 철거하여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지만 서울시는 2015년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돈의문전시관 아지오 Agio -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Agio는 새문안 동네의 명소 중 한 곳이었다. 이곳은 현재 돈의문 전시관으로 사용되고있다.
6080 감성공간
- 서대문 사진관, 새문안극장, 삼거리 이용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 3.1운동 100주년 기념
- 독립운동가의 집,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의 소품전시 등
한국전쟁발발로 전차 궤도가 파괴되고 승객도 감소한다. 도심에 세종로 지하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대문-종로 네거리, 남대문-효자동 전차의 운행은 중지되었다. 1968년 모든 전차는 운행을 멈추었다.
한길 위에 사람들은 바쁘게 또 일 있게 오고 갔다. 구보는 포도 위에 서서, 문득 자기도 창작을 위하여 어디, 예(例)하면 서소문정 방면이라도 답사할까 생각한다. '모데르놀리'를 게을리 하기 이미 오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中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씨는 전차를 타고 경성을 배회한다. 위 글귀에 등장하는 '서소문정'은 현재 경찰청일대를 일컫는다. 나도 구보씨처럼 경성 한복판을 '점심산책'이라는 명목으로 배회하였다. 서소문정 방면으로 다시 걸어가보자.
1920년 조선은 일본에게 식민지 경제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에 특수은행, 즉 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을 세워 조선총독부에 필요한 자금을 뒷받침하도록 하였다.
식산은행은 현재 롯데호텔에 위치하고 있어 충정로까지는 전차로 한 번만 갈아타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충정로일대에는 식산은행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현재 미동아파트는 1969년에 지어졌고, 그 자리에 1940년에 지어진 또 다른 아파트가 존재했다. 이는 경성대화숙이다. 경성대화숙은 식산은행의 독신자 아파트였다. 전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 않았겠는가
미동아파트에서 충정로를 건너 마포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식산은행과 관련된 건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충정각이다. 1902년 한성전기회사의 미국인 기사장 R.A 매클켈런이 지은 집이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미국이 전기 관련 이권을 따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 전기회사가 운영되었다. 조선에는 전기공이 없었고 미국의 전기공들은 고임금을 받고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향이 그리웠던 이들이 전형적인 미국 캘리포니아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이다.
이후 1930년 초 다카마쓰 류키치 일본인이 이 집을 소유하게 된다. 다카마쓰 류키치는 식산은행 비서과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현재는 대안공간이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사용 중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며 여러 매체의 인터뷰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전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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