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_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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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은 앤 여왕의 불행한 삶과 사라 처칠과 아비가일 마샴 간의 삼각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줄거리는 그렇지만 영화의 시각적 공간에서는 앤 여왕에 관한 다른 것들도 보여준다. 영화는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나타난 서양 벽화의 시각 방식으로 공간을 설정했으며 인물들의 촬영 방식은 르네상스 이후의 초상화 작업 방식이다. 미술 양식사로 따지자면 영화의 시각적 공간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에 이르는 벽화와 초상화의 특징들로 촬영했다.
그렇기에 영화 더 페이버릿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자면 하나의 시선이 강요되는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영화 촬영의 시선은 이젤을 앞에 두고 모델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깔려 있다. 모델과 친밀해야만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처럼 관객이 인물들과 친밀하기를 바라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의도이다. 그래서 고정된 듯한 영화의 시점이지만 화가가 마음대로 그림을 변형 가능한 것처럼 관객 스스로 생각과 느낌에 따라 인물에 대한 관점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영화의 고정된 듯한 시선은 어떤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의 취향에 따라 인물들이 서로 다르게 읽혀지게 한 것이 두 번째 의도다. 그러니까 같은 영화를 보았다 하더라도 관객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인물들의 중요도는 다를 수 있으며, 세 사람 중에서 누군가의 시각으로 영화가 설정한 세계를 해석할 선택의 개별화가 가능하다.
프레스코화
방식의 문제일 뿐, 영화는 환영을 다룬다. 더 페이버릿의 시각 공간은 프레스코화 방식의 환영이다. 이 의도는 프레스코화가 그렇듯 스캔들이라는 픽션을 사실과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스캔들과는 별개로 앤 여왕에 관해서 재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한 의도다.
감독의 의도를 보면, 풍경화나 건축에서의 원근법인 2점 투시도법으로 공간을 보여준다. 중앙 소실점에서 좌측은 인간적인 공간으로, 벽면의 커다란 거울을 보는 앤 여왕과 시녀들 그리고 사라 처칠이 배치되어 있다. 우측은 신화적 공간으로, 태곳적 유혹과 원죄를 상징하는 아담과 이브의 그림과 그 아래에 걸려 있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역사의 증인처럼 걸려있는 헨리 8세의 초상화 다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야 15세기 튜더 왕가 다음이며 프랑스가 만들고 유행시킨 대형 평면거울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17세기로 짐작할 수 있다. 앤 여왕 스타일이라 하는 가구들이 놓여 있다는 점과 17세기 이후의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앤 여왕을 다룬 영화임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가 앤 여왕의 스캔들을 다루고는 있지만 이 글은 그와 관련된 것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스토리가 궁금한 분들은 읽지 않아도 된다. 이 글은 감독에 의해 창조된 미술적 공간의 설정 방식과 의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이자 목적인 스캔들 너머의 앤 여왕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영화의 공간으로 돌아가보면.
원근법과 구도
거리에 따라 사물의 크기를 축소시키는 2점 소실 원근법으로 공간을 시각화했다. 2점 소실점이라 하면 중앙이 앞으로 끌어당겨지고 좌우가 멀어져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좌우 양쪽이 끌어당겨지고 가운데는 멀리 밀쳐내 배치했다. 이런 원근감 처리는 가까운 것을 눈에 먼저 담게 한 다음에 시선이 중앙으로 향하는 우리의 시각적 습관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화면 전체를 눈에 모두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다. 이 시각효과는 서양의 벽화(프레스코화) 전통에서 비롯됐다.
우리에게 친숙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원근법이 수학적 비율로 사실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중세시대에는 환영을 얻기 위해서였다. 정면의 것을 끌어당기고 주변을 흐릿하게 보는 인간의 시각 방식을 잘만 활용한다면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중세 화가들은 알고 있었다. 환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보는 방식과는 반대다. 중앙을 멀리 보내고 양 옆을 끌어와 정밀하게 그렸다. 그렇게 해서 2차원의 평면은 3차원의 입체감을 갖게 된다.
또한 중세시대의 프레스코화가 인물들의 키를 비슷하게 그린 것처럼 시녀와 앤 여왕과 사라 처칠의 신체적 평등이 이뤄진다. 이 신체적 평등은 위에 배치된 사라 처칠이 아래에 배치된 앤 여왕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13세기에서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벽화에서 사용된 환영 원근법(환영 원근법은 필자가 임의로 만든 말)은 파도바와 시스타나 성당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공간은 벽화의 환영 원근법과 같은 방식이다.
앤 여왕 스타일
공간이 벽화의 표현방법이라면 인물들을 촬영한 방식은 모델과 친밀했고 교감을 나누었던 화가의 시점과 같다. 또한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충실한 학생의 시선과 같다. 그 시선의 높이를 위해서는 초상화를 그리거나 수업을 들을 때 앉을 의자가 필요하다. 그 의자에 앉아 모델이나 스승을 그리거나 바라보는 높이가 영화의 촬영 높이다. 이 높이를 설정했던 이유는 앤 여왕 스타일의 의자에 있다. 통풍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에 그나마 선명하게 보이는 앤 여왕 스타일의 의자는, 다리는 곡선으로 휘어져 있으며 의자 다리의 밑면에는, 어쩌면 그녀의 체중을 위해서 고안된듯한, 짐승의 발바닥과 같이 무엇인가로 덧대어 있다. 가구들만 그녀의 취향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로코코 양식이 성행할 무렵 영국에서는 앤 여왕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찰스 2세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앤 여왕의 재위 기간에 완성되었다고 해서 앤 여왕 스타일이라 불리는 이 양식은 영국의 바로크 양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이들을 잃은 심리적 불안이나 비만 체질이라는 신체적인 결함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앤 여왕 스타일의 건축물들은 수평적인 안정감을 추구했다. 영화촬영의 경우에 임의의 지평선을 사용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나 수업을 듣는 학생의 시선의 높이에서 인물을 보게 되고 수평적인 안정감을 바탕으로 전체 공간을 보게 된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이 구도는 부도덕하거나 불쾌한 장면을 보여줌에도 관객의 시선을 유지하게 한다.
초상화
초상화의 나라라 할 정도로 영국인들은 초상화를 사랑했다. 영국 왕실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상화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왕의 권위를 이상화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초상화를 “사회적 초상화”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왕의 초상화는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아주 커다랗게 그려져야 했겠지만 때로는 귀족들의 초상화보다 작게 그려지기도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궁정은 이동식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머무르는 곳이 왕궁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17세기 초까지 새로운 왕이 즉위한다 하더라도 전임 왕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전임 왕이 건네줄 몇몇의 물건들은 새로운 왕이 있는 곳으로 운반해야 했다. 초상화도 그것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 하더라도 초상화의 크기는 운반하기 적합하게 작게 그려져야 했다. 왕궁의 벽보다는 성당의 벽화가 많이 그려지고 크게 그려진 이유와 같이 재산과 성을 대대로 물려받는 귀족들이 소유한 그림이 왕의 초상화보다 더 크게 그려졌던 것이다.
작다 하더라도 왕의 초상화가 소홀히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왕의 초상화는 당대 최고 실력자라는 명성을 얻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다.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재산을 형성한 상인들이 새로운 후원자가 된 북유럽의 화가들의 상황과 달리 영국의 화가들에게 후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서유럽의 화가들은 다른 화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경쟁은 실력도 중요했지만 자신을 알리는 홍보도 필요했다. 화가들은 작은 초상화를 그려 지금의 명함처럼 자신을 알리는데 이용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파르미자니노가 건넨 자화상은 명함이기도 했다. 파르미자니노의 자화상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파르미자니노의 초상화를 통해서 당시의 화가들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알 수 있다.
파르미자니노의 자화상은 사실적이면서 상징적이다. 그런데 이 초상화를 순간적으로 보자면 어떤 것이 사실적이고 어떤 것이 상징적으로 그려졌는지 명확하게 판별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조금 긴 시간을 들여 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드러난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얼굴은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나이 21세에 그려진 얼굴 치고는 너무 어리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년과 같이 그려진 이유에 관해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대 최고 화가였던 라파엘로가 죽은 4년 전인 자신의 17세의 모습을 그려 자신이 라파엘로의 뒤를 잇는 신동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으며, 탁자 위에 올려진 창백하고 여린 손의 순수함과 어울리게 얼굴을 그렸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당시의 초상화에서 사실성과 상징성은 중요한 얼굴 표현기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손과 얼굴이 순수함이라는 동일한 의미로 그려졌지만 표현 기법에 있어서는 다르다. 손은 볼록 거울에 비친 모습대로 길게 늘어뜨렸지만 얼굴은 사실적이다. 이 사실적인 얼굴은 거울에 비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되어 있다. 이 왜곡은 주변의 상황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천장, 옆의 가구들이 휘어져 인물에서 멀리 밀쳐지면서 얼굴과 몸이 온전히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빛마저 휘어져 얼굴을 강조하고 있다. 주변부의 왜곡을 통해서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그려져야 할 모델을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은 어떤 의미를 위해 그려졌을까? 그림밖에 나가 있는 손은 거울을 들고 있다. 그림의 오른손은 사실 왼손이다. 이 왼손에 관한 해석의 실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통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독특한 미소로 알려진 모나리자에서 교양과 도덕적 완결은 얼굴이 아니라 손에 있다. 왼손은 의자 끝을 붙잡고 오른손이 왼손을 덮고 있다. 이 모습이 당시의 교양 있는 여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르미자니노의 자화상에서는 왼손이 하얗게 드러나 있으며 그의 새끼손가락에는 금반지가 끼워져 있다. 사용되지 않는 왼손은 순수함을 상징하며 금반지는 영원한 약속을 의미한다. 파르미자니노의 왼손은 “순수한 사랑의 영원한 약속”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그림의 애호가이자 가장 큰손으로 알려진 클레멘스 7세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 당시의 초상화가 어떻게 그려져야 했는지를 정리해 보자면,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야 하며, 얼굴은 이상적으로 변형 가능했으며, 교양과 품위를 갖춘 몸과 표정 그리고 손의 모습을 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초상화가 모델을 사실적으로 그렸든 아니든 사실과 가깝게 사람들에게 보여야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점이 영화 더 페이버릿의 인물들의 촬영 높이가 결정된 단 하나의 이유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하나는, 수업을 듣는 학생의 눈높이 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학습법이 그렇듯 기억법과 관련 있다. 감독의의도가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기억 연상법
자신의 강연을 듣던 청중이 누구였는지 앉은 장소와 연결해 기억해냈다는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기원전 556-468년)의 이야기에서 장소 기억법이 처음 언급된 이후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기억 증강 법을 개발해 왔다. 많은 기억법 중에서 영화에서는 문학과 역사의 교육에 사용되어 온 스토리 연상법과 이미지들을 개념과 결합하는 시각 연상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 두 기억법을 결합했을 경우에 유용한 점은 이해시키기 쉬우며 장기기억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에서의 방식인데, 어떤 것에 관한 선행된 강력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수정하거나 재인식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영화의 의도이기도 한데, 이럴 경우에는 스토리 연상 기억공간과 시각 연상 기억공간을 연계해 주고 시각 연상 기억 공간에 스토리 연상 기억 공간과 다른 기록을 저장하게 하거나 두 기억 공간을 결합해 재편집하게 해 새로운 사고의 결과물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역사극에서 스토리 연상법은 서사를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줄거리가 픽션이면서 내용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따르는 듯한 배우들의 대사나 사건을 등장시켜 관객의 기억을 응원하고 보강해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더욱 폭 넓게 창조된 세계를 관객에게 납득시키고 받아들이게 한다. 픽션의 확장이 아니라 사실의 입증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관객은 거부감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더 페이버릿은 데보라 데이비스와 토니 맥너마라 두 각본가들이 창조해낸 세계다. 그 가상의 세계를 란티모스 감독은 실제화하고 그 실제화된 세계에 앤 여왕의 시각 연상 이미지들을 통해서 앤 여왕에 관한 다른 기록을 수용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시각 연상 이미지들은 앤 여왕의 업적과 관련되었지만 설명해서 알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의 기억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만 관객들에게 기억을 재편집할 공간을 마련해 주려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이 기억의 장소는 쉽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이후에 앤 여왕에 관한 자료를 접하고 영화가 제공한 시각 이미지와 결합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사라질 공간이다. 영화 안에서 제공된 스토리 연상법으로 사용된 토끼들과 그녀의 불행을 떠올리듯이, 영화 이후 관객이 얻은 정보나 자료가 시각 연상 이미지로 제공된 앤 여왕 스타일의 의자와 건축물, 그리고 현재의 지적재산권의 시초가 된 앤 여왕법을 연상시키는 책들과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발견되는 곳이다.
영화 이후에
영화에 관해서 도덕적인 모범에 관해서 이야기될 수도 있고, 문학적인 서사와 역사적인 사건의 맥락에 관해서 이야기될 수도 있다. 또한 신분제와 부의 불균형에 관해서 정치 사회적인 고찰을 할 수도 있다. 영화 더 페이버릿은 관습적인 답변들 안에서 말해지는 것에 충실한 영화다. 이 관습적인 사유 영역을 오래된 그러나 잊힌 방식으로 탐험하게 해 줌으로써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무엇인가를 얻게 해 준다. 처음에는 스토리 연상법으로 제시된다. 스토리 연상 공간이 이어지다 스토리가 빠져나가고 시각화된 것만 남은 시각 연상 공간이 따로 제공된다. 이곳에 다른 무엇인가를 관객이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래서 영화가 제공해주는 새로움은 영화 안이 아니라 영화 밖에서 생성될 사고 영역에 있다.
시각 연상법이 적용된 곳을 다 찾아내지 못해 이 글에 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만을 기억할 것인지 아니면 앤 여왕의 업적과 역사적 평가나 다른 창의적인 무엇까지 가능할지는 영화를 본 사람들 각자의 몫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결함만을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앤 여왕 또한 불행과 스캔들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가 제공해 준 기억의 공간을 비워두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르네상스의 예술이 그랬었던 것처럼 란티모스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정신영역의 틀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시도한 것인지, 혹은 단순한 정보전달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형식주의 영화가 그렇듯 물질세계의 표면을 왜곡하다 우연히 이렇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의 의도였든 혹은 우연이었던 간에 영화에 인지과학적인 것이 담겼다는 점을 응원하고 싶다.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야 하는 현재, 앤 여왕법(현재의 지적재산권)으로 지식을 축적하게 된 영국이 유럽의 산업혁명을 주도 했던 것과 같이, 우리 사고영역의 관습적 폐쇄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기억의 자유와 개방성을 통해서 사고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유의 진전에 관한 신르네상스(Neo Renaissance)적인 시도 같아서다.
ps
초상화의 얼굴은 화가의 취향이나 당시 유행하는 얼굴형에 따라 결정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을 그렸다 하더라도 비슷한 표정과 얼굴형 때문에 쌍둥이를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국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은 초상화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상화박물관에서 다양한 초상화를 감상하기 바란다.
영국 국립 초상화 박물관 : https://www.npg.org.uk/
글_아트렉처 에디터_꼭그래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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