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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31. 2019

시대와 맞물리는 개인의 삶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https://artlecture.com/article/1146





'Hotel Room (1931)'부터 시작해서 'Chair Car (1965)'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점이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손길을 거쳐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그림을 통해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그려낸 걸로 유명한 에드워드 호퍼는 무심한 방식으로 삶의 단면에서 내면의 고독 및 단절감을 포착했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2013)은 내면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여성을 시대상과 분리시키지 않고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그려낸다. 특히, 공간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형성하는 분위기는 현실의 환영 때문에 가려진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도록 이끈다. 게다가, 내면의 어두운 구석을 탐구하고, 시공간에 갇힌 내면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셜리(스테파니 커밍)’가 기차 안에서 읽고 있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도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지닌 주제 의식을 뒷받침한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셜리’의 나지막한 독백을 따라 그녀의 삶에 접근하지만, 단순히 관조적인 자세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각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전, 라디오 뉴스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이슈를 제공한다. 경제 공황, 제2차 세계 대전, 매카시즘, 인종 차별 문제, 쿠바의 미국 출판물 검열 문제 등이 전달되면서 불안한 시대적 정서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셜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고독감과 단절감이 시대의 흐름과 밀착되어 있음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1920년 미국 여성들은 참정권을 획득했지만,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 여성 해방 운동이 잠재기를 맞이함으로써 미국 여성들은 다시 사회의 부조리에 당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영화는 ‘그룹 시어터’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스테판(크리스토프 배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셜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대 여성이 겪은 부당함을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의 악순환으로 구체화한다. 아울러 ‘셜리’는 라디오를 즐겨 듣고, 영화 관람을 좋아하는 등 예술 분야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사진작가인 ‘스테판’의 모델이 되면서 자신을 위한 삶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즉 타인의 상상 속 인물이 돼버린다. 게다가, '그룹 시어터'가 각종 사회 이슈들과 얽혀 서로를 배신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셜리’가 직접 준비한 연극 공연이 무산되었고, ‘셜리’의 주체로서의 자아는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 특히, 영화는 그런 내면의 고독감과 상실감을 묘사하기 위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표현 방법을 택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의 특이한 점은 에피소드 13개 중에서 에피소드 12개의 날짜가 해만 달라질 뿐 '8월 28일'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8월 28일은 계속 돌아오는데 셜리의 삶은 점차 피폐해진다. 관객이 두 명 밖에 오지 않은 극장임에도 영화를 좋아해서 ‘셜리’는 좌석 안내원 업무에 만족하고, 공연 준비를 위해 열심히 대본을 외운다. 그렇지만, ‘셜리’의 바람과 달리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셜리’는 여전히 ‘스테판’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관계가 예전과 달리 소원해지면서 외로움에 사무친다. 이때, ‘셜리’는 방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는 보여줌으로써 더는 몸을 웅크리지 않고 기지개를 켜겠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국가론’ 속 동굴 우화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동굴 안에서 손발이 묶인 죄수들은 눈 앞 그림자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경험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실재라고 보기 힘들다. 현실과 실재를 구분하지 못할 때 고독감 혹은 단절감이 발생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셜리’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정되어 있던 날짜 8월 28일은 1963년이 되던 해 8월 29일로 바뀌었고, ‘셜리’는 동굴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셜리’는 한동안 그만뒀던 배우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며 익숙했던 장소를 떠난다. 그때, ‘셜리’가 들고 있는 라디오 너머로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이 흘러나온다. 이제는 차별이 아닌 평등을 원하는 당시 마틴 루터 킹처럼 ‘셜리’는 더는 남성 중심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아가기로 희망한다.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해 ‘셜리’가 방을 나서자 빛은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따뜻하게 채운다. 미국 여성 해방 운동사에 따르면, 1960년대는 잠재기에서 벗어나 제2기 여성 해방 운동으로 접어들었으며, 제1기와 달리 제2기 여성 해방 운동은 실천적인 측면에서 발전을 보였다. 따라서 이 점을 고려한다면, ‘셜리’는 자기 꿈을 이루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갔을 거로 추측할 수 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승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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