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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22. 2019

고달픈 하루를 보낸 그대에게

명화 읽기

https://artlecture.com/article/1200



금수저,은수저,흙수저와 같은 이야기처럼, 너무 단단해 보이는 이 사회 구조가 젊은 세대를 절망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요즘 시대의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이렇듯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계급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룬 작품이 하나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그림에서는 한 상점안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각자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 그림 정중앙에 불안해 보이는 한 소녀가 보입니다. 벽에 붙여져 있는 많은 그림들로 볼 때 이곳은 그림을 팔고 사는 상점인 듯합니다. 
  


착잡해 보이는 그녀의 오른쪽에는 도매상이 그림을 감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도매상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은 소녀가 직접 그린 것이겠죠. 소녀는 자신의 그림을 도매상에 판매하러 나온 길인 것입니다. 







소녀가 머리에 쓴 검은 모자와 검정 드레스를 보았을때 최근에 상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 반지를 끼고 있지 않은것으로 보아 아마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소녀와 옆에 서있는 남동생은 가난한 고아의 처지입니다. 








차가운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도매상은 작품에 그리 좋은 금액을 매겨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매상이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의 작품은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정물화일것 입니다. 당시에 가난한 작가에게 모델을 구하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당시의 많은 여류 작가들이 정물화를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그림이 팔지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인지 소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손으로 손뜨개 실을 만지작 거리고 있습니다. 아래로 힘없이 떨궈진 시선과 불안한 손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도매상의 책상 옆에는 그림을 팔러 온 사람이 앉게 되는 의자가 놓여 있지만, 도매상은 그녀에게 잠시나마라도 자리를 권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것 같죠? 그녀 또한 자리에 앉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듯 하구요. 덩그렇게 남아있는 의자가 더 휑하게 보입니다. 









옆에 있는 어린 남동생은 애가 타는 누나의 마음과는 달리 당당한 눈빛으로 도매상 아저씨를 응시하고 있는데요. 붉은색 스카프와 자신만만한 눈빛에서 누나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느껴집니다. 아직은 험한 세상을 모를 나이, 하지만 선량하면서도 당당한 눈빛이 오히려 냉혹한 세상을 알고 있는 우리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타들어가는 소녀의 마음과는 달리 가게의 다른 공간들은 다른 세상입니다. 화면 왼편의 의자에 앉은 남자와 그 친구는 그림을 보면서 곁눈질로 흘긋흘긋, 소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발레리나와 이 소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누구의 다리가 더 날씬한지, 누가 더 이쁜지 비교해 보기 바쁩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할 일에 빠져 있어서 이 소녀의 걱정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림이 팔리길 바라는 소녀의 간절한 소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많은 시선이 소녀의 흔들리는 눈빛을 더 안타깝게 만듭니다. 









여기서 더 안쓰러운 것은, 소녀가 아마 그림을 팔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작가는 저 뒤편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가게를 나서는 소녀와, 그림을 말아들고 그 뒤를 따르는 소년을 그려넣어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옷차림을 미묘하게 다르게 그려넣었지만, 사실은 그림을 팔지 못하고 가게를 나서는 소녀와 동생의 모습인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가게 밖에서 우산을 쓰고 이 거리를 빠져나가는 소녀와 남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들은 얼마나 더 많은 가게를 헤매야 따뜻한 빵을 살 돈을 받을 그림을 팔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의 제목은 그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한 문장으로 만든 것 같은 구절입니다. '이름도 없이, 친구도 없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죠. 부모님도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과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 누군가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그녀가 명성이 있는 화가는 아니며, 이러한 고통을 알아줄 친구 또한 주변에 없습니다. 삶이 중심이 흔들리는 가장 위태로운 순간, 외로운 그녀의 처지를 여과없이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에밀리 메리 오스본이라는 여류 작가로 빅토리안 시대에 가장 성공한 여류화가 중 한명이었습니다. 뛰어난 그림 실력과 열정으로 그림을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큰 성공을 이뤄냈던 작가이기도 하구요. 로얄 아카데미에서 정기 전시회를 열 고 자신만의 작업실을 살 수 있을정도의 큰 돈도 벌어들였지만, 그 시대에 여성 작가로서의 한계는 아주 명확했습니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이 될 수 도 없었고, 로얄 아카데미의 정식 수업도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카데미의 선생님들을 설득해서 과외를 따로 받아낼 정도로 열정과 신념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에게는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거죠. 그녀의 작품들 속에는 이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묻어나오고, 특히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에 가장 잘 드러나있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회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이 그림은 단순히 여성으로서 당시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토로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림이 그려졌던 1857년을 전후해서 당시 런던에서는 급격한 산업 혁명의 결과로 여러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급격한 성장은 어떤 면에서는 노동계급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런 복지 정책이 없이 삶의 질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계급의 격차를 엄청난 속도로 벌여 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적절하고 균둥한 일자리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노동계급들의 삶이란 깨지기 쉬운 유리같이 불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의 부제를 통해서 독자가 좀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이름도 없이, 친구도 없이'라는 서글픈 제목의 부제는 의미 심장한 성경 구절로 붙여졌습니다.






'부유한 자의 재산은 그에게 견고한 성읍이 되고 
빈곤한 자의 가난은 그에게 몰락을 가져온다.'






'재화'라는 것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에 대해 경고한 글귀입니다. 이 부제는 작가가 단순히 남녀의 차별하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작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사회를 양분하는 기준 -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남자와 여자, 이러한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전체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화면에 나타난 소녀는 작가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만을 그대로 투영하는 존재가 아닌 거죠. 

이 소녀는 사회의 모든 소외받는 약자 - 수적으로 열세에 있고 강자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며 약해보이는- 를 대변하는 존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중앙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모습으로 그려짐으로써, 약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가장 강한 사람들임을 반어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저는 사는게 고달픈 날에 이 작품이 떠오릅니다. 이 소녀의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예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세상살이란 참 고달픈 일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어쩐지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박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이 밥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착한 여러분 모두 힘을 내시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Nameless and Friendless. "The rich man's wealth is his strong city, etc." - Proverbs, x, 151857, Emily Mary Osborn



글.아트렉처 에디터_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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