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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29. 2019

한국의 보물 '사랑방 문화'

https://artlecture.com/article/1230



‘하늘과 땅의 지혜’를 담았다는 라파엘로의 작품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이 작품에는 로마 성 베드로성당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에 54명의 철학자와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들에는 각자의 특징이나 상징이 암호처럼 표현되어 있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그림은 한가운데의 그리스의 대표적인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다수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시대와 활동 무대가 달랐음에도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모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인물들이다.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조로아스터까지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이들은 고대의 최고의 학자들로 그야말로 지식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누군가와 격렬하게 토론하거나, 연구하는 모습이다. 라파엘로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써 배치하면서도 그리스의 토론문화를 알리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마치 그 토론과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들이 토론하는 주제를 알 수는 없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따로 나누지 않는다. 서로의 학문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듯 자신의 주된 연구 분야를 초월해 토론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벌이는 토론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교육하고 진리로 이끄는 방법도 질문과 응답, 즉 토론을 통한 대화술이었다. 대화를 통해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나가다 보면 심오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모가 낳는 것이지 산파가 대신할 수 없다. 산파는 그저 산모가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진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산파로 비유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도 모르는 것이 많으면서 소위 현자(賢者)라고 자만하는 많은 혹자(或者)에게 주는 경고의 말이다. 결국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진리로 가는 길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학습의 전통은 이후 서양 교육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아테네 학당을 그린 라파엘로는 단순히 토론하는 전통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화가가 노리고 있는 것은 ‘통섭(統攝)’이다.

한국에서 얼마 전까지 ‘통섭’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낯선 단어는 한자어 그대로 쓰자면 ‘큰 줄기(통)를 잡다(섭)’라는 뜻이다.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그림에서도 수학자, 자연철학자, 천문학자, 시인 등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는 나이와 성별, 전공을 불문하고 모여 자유롭게 배우고 익히고 토론하는데 익숙한 환경이었다.  




토론의 전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제자이면서도 철학적인 차이가 컸다. 이들은 그림 한가운데서 서로의 생각의 틈을 토론을 통해 메우고 있다. ‘이데아(idea)’를 설명하는 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 그리고 지상을 가리키며 현실 세계를 논하는 모습의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만이 실재 세계(ousia)로서 참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상보다는 현실에서 덕을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행복이고, 중용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플라톤에게는 하늘을 뜻하는 빨간 망토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땅을 뜻하는 파란 망토를 입혀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다. 라파엘로는 그런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려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왼편으로 가면 무리 중 초록색 옷을 입고 서 있는 소크라테스가 보인다. 열심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투구를 쓴 남자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이지만 그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앞쪽 계단을 내려오면 왼쪽에는 한 무리의 제자들에 둘러싸인 채 피타고라스가 책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피타고라스 뒤로 왼쪽 기둥에 머리에 포도 이파리로 장식된 화관을 쓴 에피쿠로스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앞쪽 계단 한가운데에는 디오게네스(Diogenes)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그는 가난하지만 만족하며 사는 게 행복이라고 했다. 디오게네스가 일광욕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곁에 서서 소원을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렇듯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개성 있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 사상을 되살려 유럽에 전파한 이슬람 신학자 아베로에스도 등장한다. 여기에 조로아스터와 같은 이교도, 여성 수학자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히파티아까지 그려 넣으며 지역과 문화, 사상, 성을 초월한 토론의 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세 암흑기를 보내고 인간이 이성을 자각하기 시작할 때, 라파엘로는 모든 시대의 이념이나 역사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임을 알리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고대 아테네 시민사회는 그림처럼 토론문화가 주를 이루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상대 의견과 조화를 이룰 최선의 방안을 찾는 토론은 시민사회의 꽃이었다고. 


르네상스는 그러한 고대의 소중한 유산을 다시 살리자는 것이다. 그리스를 포함한 고대 토론의 전통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발전해 나가는 통로였다. 또한, 인간과 인간의 교류를 통해 삶을 더 이상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나아가 지식의 발전과 새로운 창의성의 발판이 되었다. 


그들에게 토론은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알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동조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는 가운데 더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토론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통 도서관인 '예시바'이다. 예시바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도서관에서 펜 굴러가는 소리에도 눈총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계로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예시바는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면 어김없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각의 책상마다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책상의 구조도 한국의 도서관처럼 칸막이로 가려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책상은 두 사람 이상이 마주 보고 앉도록 놓여있다.



유대인들의 예시바



이러한 구조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공부하는 유대인의 교육문화가 집약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치열하게 토론한다. 그러면서도 지속해서 파트너를 바꿔가며 자기의 생각을 나눈다. 이들의 공부는 책이 아닌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토론은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책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에게 책이란 토론을 위한 일종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한 배움을 얻는 것은 토론을 통해서다. 그들에게 소통이 바로 공부가 된다.


이런 토론 방식의 수업은 티베트의 불교 승려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리문답 토론인 ‘최라(Chora)’라는 수업이다. 이는 ‘법의 울타리’라는 뜻이 있다. 이곳은 일반인들의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모임처럼 보이는 이것은 티베트 승가 전통만이 가지는 교육방식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 교육의 핵심은 토론이다.




티벳 불교의 최라 (사진_불일암 덕조스님)




최라는 주로 야외 정원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서로 일정한 화두를 던지며 토론을 이어간다. 경전을 이용하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특이한 것은 손뼉을 치면서 마치 춤추듯 토론을 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흡사 싸우는 모습으로 비칠 때도 있다. 


앞에서 말한 유대인들의 예시바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나 티베트 승려들의 최라의 공부는 그저 책을 읽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과 ‘토론’이야말로 동서양을 떠나 가장 중요한 학습 방법의 하나였다.  


근대 유럽에서 이런 토론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살롱문화’다. 

‘살롱’은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손님을 맞는 ‘응접실’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교모임’으로서 의미도 있다. 유럽 사회에서 이러한 ‘살롱문화’는 18세기에 퍼지기 시작해 19세기에는 전 유럽으로 확산했다. 오늘날에 와서 문화의 한 틀로 자리 잡고 있다.


살롱문화가 한국 역사에서 등장한 최초의 사건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이 일본의 강제 때문에 을사조약을 체결한 시점이다. 고종의 특명을 받고 1907년 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간 사람들이 활용한 것이 바로 이 살롱문화다. 고종의 밀사들이 일본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살롱에 모여 외교를 펼쳤다. 그곳에서 일본에 의한 주권침탈의 부당함을 알리는 일을 했다.


이러한 살롱문화의 기원은 아테네의 ‘아스파지아’가 운영한 살롱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알키비아데스가 만나 정치와 철학을 논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살롱은 남녀,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라도 들어와 대화할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 발전했다. 문학과 예술, 철학 등 모든 지성의 출발이었고 중개 역할을 했다. 살롱문화는 프랑스에서 계몽사상가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토론이 이루어지던 살롱




살롱은 흔히 영국의 커피하우스와 대비되기도 하는데 커피하우스가 남성 중심의 토론 문화였다면 살롱은 여성 중심이었다. 여성이 살롱을 열고 점차 확대되어 남녀 구분이 사라지며 모두에게 열린 토론의 장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살롱문화는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힘이 만든 공간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한 사회의 문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토론의 장이 된 사랑방


한국이라 해서 이런 토론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희미해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문화가 힘을 발휘한 시대가 있었다.

적어도 유교적 전통이 살아 있던 시기까지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토론과 필담이 중요한 문화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토론은 사라지고 칸막이 도서관이나 고시원처럼 좁은 공간에 갇히기 시작했다. 면벽수행하는 사람처럼 공부하는 문화가 확산했다. 지식은 외워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대학입학이 훗날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친한 친구들마저 경쟁자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약점을 감추면서 상대를 이기고 올라서는 공부에만 집중한다. 학습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주어진 지식의 습득에만 몰두해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사실 토론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 존재해왔고 한국 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왔다. 왕실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주로 경연(經筵)을 통해 이루어졌고, 민간에서는 사랑방이 그 역할을 했다. 

경연은 주자학이 명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으로 건너왔다. 조선 초기부터 행해왔던 경연은 왕이 국가를 잘 운용할 수 있도록 고전과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을 교육하고 신하들과 토론하고 담론하는 모임이다. 


조선 시대 세종의 경우 즉위한 뒤 매일 참석하며 괄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세종은 경연을 통해 당대 최고의 학문적 실력을 갖춘 집현전 학자들과 공부하고 토론하며, 국정 현안의 해결 방안을 찾고 문화 창조의 기틀을 다졌다. 


경연은 오늘날로 보면 정책 세미나인 셈이다. 왕은 경연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을 신하들과 젊은 유생들의 학문적 성취를 끌어올리는 데 활용할 때도 있었다. 

<성균관친림강론도(成均館親臨講論圖)>는 왕이 성균관에 가서 명륜당 마당에서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유교 경전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서 윗부분이 명륜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이고, 중앙의 왕이 앉은 옥좌를 중심으로 신하들과 호위 군사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균관친림강론도(成均館親臨講論圖)



이렇게 왕실에서도 신하들과 혹은 유생들과 토론하며 정사를 논하거나 경전을 공부했다.  

왕실 밖에서는 사대부들이나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사랑방을 통해 토론 문화가 이어졌다. 사랑방은 백성들의 토론 학습장이었다.


조선 시대에 ‘안채’가 아녀자들의 주거 공간이라면 ‘사랑방’은 남성들의 생활공간이었다. 보통 남자는 7세가 되면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 그리고는 사랑방으로 거처를 옮겨 글공부와 학문을 배우면서 선비의 생활을 시작했다. 

사대부를 비롯한 민간에서 사랑방은 주거 공간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선비들은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고 고고한 지조를 자랑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랑방 역시 소박하고 검소하게 꾸몄다. 이곳은 평소엔 선비가 학문에 정진하고 취미활동을 영위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그를 맞이하며 교류하던 공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그래서 사랑방은 사적으로는 학문과 예술의 장소인 동시에 공적으로는 사랑채를 지키는 이의 격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또한, 사랑방의 개방적인 성질은 낯선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선비들은 사랑방에서 낮은 담장 사이로 자연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곤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대화하며 필담을 나누거나 시를 읊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사대부 가운데 소양이 있는 사람은 거문고를 연주하는가 하면, 바둑과 장기로 풍류를 즐겼다.





미래형 토론 모델



사랑방은 문화의 교류가 있고, 토론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의 형식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속에는 교류와 소통, 토론의 유전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SNS를 통한 교류와 정보교환, 소통이다. SNS 소통은 현재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위에 있고 가장 활발하다.

이는 한국의 사랑방 문화가 세계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통로가 SNS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미래 사회의 소통과 토론 교육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한국이 주도할 SNS의 미래는 단순히 대화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한국 고유의 사회 네트워킹 방식인 ‘사랑방’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한다. 


유교 사회에서 사랑방이 지적·문화적 교류 공간이었다면 현대적인 SNS 사랑방은 그 의미가 확장돼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가 교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SNS 토론을 통해 미래의 교육과 혁신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결국,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전의 SNS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한 폐쇄형이었다. 그런데 사랑방의 장점이 추가된다면 이는 개방형으로 확장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선비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사랑방을 장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이모티콘부터 템플릿을 설계하고, 심지어는 사랑방에서 작동하는 앱까지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혁신을 통해 사람들은 SNS 활용이 시간 죽이기가 아닌 새로운 소통과 토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페이스북도 지식·경제·기술의 교류에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활용도가 지나치게 낮다. 이는 개방형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발한 토론문화를 준비하는 소셜 미디어들



한국의 사랑방문화가 접목된 SNS는 최고의 인재들이 사회의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 가며 세상을 개선하는 진지한 플랫폼으로 바뀔 수 있다. 사랑방SNS에 구글 같은 강력한 검색 엔진이 포함된다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고, 비정부기구(NGO) 활동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학생들 간의 교류가 가능해지고, 사업파트너간의 연대가 이어지고, 새로운 교육 모델로도 성장할 수 있다. 


가장 핵심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토론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방형 사랑방의 특징이 될 것이다.

아테네 학당의 수많은 철학자와 수학자, 과학자, 인문학자들이 교류하고, 이를 통해 쌓인 지식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갔던 것처럼 사랑방SNS는  항상 열려 있다. 유대인 전통 도서관인 ‘예시바’처럼 서로의 주제를 나눠 토론하고 토론 대상, 주제도 수시로 자신에 맞게 선택하게 될 것이다. 사랑방의 개방이 일방이 아닌 사방인 것처럼 오픈된 토론도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SNS에서 구현되고 있는 시각적인 형상화 또한 개선요소가 생긴다. 사랑방 사용자들은 사랑방의 3차원 구조의 네트워크와 가상 현실을 기반으로 가상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방 SNS는 정부나 교육기관이 세미나를 개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사랑방 웨비나(webinar,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에 모인 전문가들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연구 파트너와 공동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반드시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필담(筆談) 전통을 응용할 수 있다. 웨비나에 모인 전문가들이 코멘트를 글로 적으면 이를 번역해 주는 것이다. 언어의 제한을 받지 않는 깊이 있는 대화가 필담 접근법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글.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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