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미술관, 하루.K <와신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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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귀농·귀촌은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직장인, 또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개척지를 보여주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 기대에 부응해 각 지자체에선 귀농·귀촌을 장려하고 지원하고 홍보했고, 생활 정보 프로그램들은 성공 사례를 연신 쏟아내며 도시에 찌들고 사회에 병든 우리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미 시골에서 나고 나란 기억이 있는 중장년에게는 향수를 청년에게는 도시를 벗어난 여유로운 삶과 새로운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며 귀농·귀촌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귀농·귀촌과 더불어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은 힐링과 놀이의 공간으로 인식되게 됐다. 하지만 왜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꾸만 늘어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시골에서의 생활이 생각보다 지루하다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자연이 힐링이 아니라 일상으로 다가오는 순간, 대부분은 다시 도시를 동경하게 될 것이다. 귀농·귀촌은 여름휴가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계곡, 산, 바다는 여흥을 위한 공간이고 일탈을 위한 공간이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공간이 다시 일상이 된다면 누가 그것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귀농·귀촌의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은 이유가 다 이런 데에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짬뽕하다=여러 가지 것을 한 데 뒤섞다
지금의 우리에게 자연은 놀이의 공간이다. 그곳에 머물러 살기보다는 잠깐 있으면서 폐에 신선한 공기 한 번 넣는 공간이고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힘을 내게 해주는 장소다. 그렇기에 자연은 우리에게 재밌어야 하고, 언제 가도 새로워야 한다. <와신짬뽕>의 작품들은 그런 발상에서 출발한다.
작품에 산수화와 짬뽕, 백숙, 팥빙수 등이 섞여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연관성을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산수화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짬뽕, 백숙, 팥빙수로 인해 고고하기만 했던 전통적인 산수화의 개념은 사라지고 우리에게 익숙한 여흥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곳곳에 배치된 사람들은 여유롭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수 주변을 고독하게 거닐지도 않고, 농사를 짓거나 전원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정반대로 자연을 즐기고, 뛰어다니고, 놀이터처럼 사용한다. 이처럼 하루.K의 먹거리들은 전통적인 산수화에 자극적인 매운맛을 끼얹어준다. 변모하는 산수화는 더 이상 고고하고 경외의 대상이 되는 자연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뛰놀고 즐기는 현대의 놀이문화를 상징한다.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처럼 폭포처럼 내려오는 짬뽕과 사람이 올라타기도 하고 먹을 수도 있는 거대한 수박은 분명 환상적이지만, 순간적 쾌락은 그 순간이 지나면 익숙함으로 바뀌고 그건 더 이상 쾌락이 아니게 된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상상 속 풍경에 담긴 우리의 향수와 여유를 그저 즐기자는 것이다. 자연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해왔다. 경외의 대상에서 정복의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복원해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개념들이 모두 ‘짬뽕’ 돼 있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추상적 문구보다 이제는 자연을 즐기자는 현실적인 조언이 더 와닿는 때가 아닐까?
이토록 맛있는 자연이라니! 벌써 여름이 기다려진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쇼코는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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