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거짓말>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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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할 때 거짓과 진실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
'거짓말' 자체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단지 '거짓말을 한다'라는 행동에 '의도'가 담기게 되고, 그 의도는 대체로 우리를 힘들게 만듭니다. 서울미술관의 2019년 하반기 기획전 <보통의 거짓말>에서는 '거짓말'에 대해, 정확히 말해 '거짓말을 하는 행위'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한 '거짓말'이 '나'자신을 향한 거짓말을 넘어 '관계'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동안 '진실'로 믿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크게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는 지를 23명의 작가 작품 들고 함께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전시 설명 중에서
<보통의 거짓말> 전시를 본 뒤 평소의 거짓말을 생각해봤다. 인사 혹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밥이나 먹자" 같은. 대화 속에 진실이 있긴 할까? 진실을 자꾸 거짓으로 포장하고, 가리다 보니 마음이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다 모른 척했던 진실을 들키는 날이면 괜히 더 울컥해지기도 한다.
릴리아나 바사라브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반복되는 거짓의 굴레를 재해석했다.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먹었지만, 영상 속 두 연인은 사과를 먹지 않고 다시 상대방에게 넘겨준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모르고 영상을 봤을 때 서로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과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사과를 하고, 다시 사과를 주는 그런 영상처럼 느껴진다.
스캔들로 강제 은퇴당한 질리안 청의 얼굴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많은 악성 댓글과 폭력에 휘말리고 있다고 한다. 영상 속에서 그녀는 웃는 것 같으면서도 슬픔을 참으려 하는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음성이 들리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집중돼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의 힘듦은 내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SNS상의 모습과 진짜 모습이 다르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얼굴만 올리는 SNS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나 역시 좋은 모습만 올리고 있고. 그렇게 진짜 속마음을 감추고, 화면 속 꾸며진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며 개성과 자기다움을 잃어가는 건 아닌가 싶다.
누구든 하나로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소개했다면 이제는 "이럴 땐 이런 사람이야, 저럴 땐 저런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즉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른 자아가 나온다. 수많은 감정이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내 감정을 선택할 때도 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척하며. 재미있지 않지만, 재미있는 척하면서. 그렇게 척만 하다 보면 본래의 내 모습을 잃을 때도 있는데, 진짜 내 마음인 노란색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대부분 그런 말도 거짓말일 때가 많으니까.
졸업사진은 주로 사진작가가 자세를 정해준다. 턱을 조금 더 내리고,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손은 바르게. 그렇게 경직된 자세로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진효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으로 어른스러움을 다른 사람에게서 강요받았던 경험"
우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묻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어른들을 따랐던 것 같다.
필자는 91년생이지만, 내 친구들은 92년생이 많다. "12월이 지나면 우린 30살이야" 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너만 30살이라고 한다. 사는 건 91년생처럼 살지만, 막상 조금 더 젊고 싶기 때문에 두 개의 나이로 살고 있다. 이해강 작가는 12 간지를 캔버스에 담아 말과 뱀의 중간, 개와 돼지의 중간 형태를 만들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사실 빠른 생이든 아니든 결국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좋아하는 뮤지션 잔나비 2집 앨범 커버를 작업한 콰야 작가이다. 작가만의 색깔이 뚜렷해서 좋아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반가웠다. 밤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저녁이라는 조용한 시간 속에 무기력하고, 공허해지면서 온갖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시간이 가장 솔직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왕자(공주)가 말합니다. 난 당신에게 눈부시고, 빛나며, 찬란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난 나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 빛나고 싶답니다. 동화는 끝나고, 우리는 계속 살아갑니다. 세상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으니까요."
-전시 설명 중에서
흔히 말한다. 영화에선 디즈니 공주의 결혼 전 모습만 보여주는데, 결혼 이후의 삶을 보여줬다면 다 지옥이었을 거라고. 디즈니만 봐도 공주는 날씬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왕자는 근육이 있고, 잘 생기고, 용감해야 하는 정형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로돌포 로아이자 작가는 그 틀을 깨어 통통한 공주의 모습과 왕자끼리 혹은 공주끼리 사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3개의 화면을 보면 인물이 반복되는 행동을 할 때 '약속'이라는 주제로 자막이 나온다. 이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남긴 댓글이다. 당일에 약속을 깨거나 자주 약속을 취소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은 나도 그런 적 있다며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 조언을 남겼다. 댓글을 읽어보면 다들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는 "괜찮아"라고 거짓말한 듯하다. 익명으로 진심을 말하면서 그때 서운하고 기분 나빴음을 공유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적 있다. 약속을 당일에 취소하면 기분이 언짢지만, 괜찮다고 거짓말했던 적이.
그림자는 예뻐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거짓말의 주제로 다양하게 표현된 작품을 보다 보니 거짓말과 진실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고 했던 거짓말과 진실을 감추기 위해 저울질하며, 들어낼 것을 스스로 고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아가 된 기분이다. 그만큼 우린 진실보다 거짓말에 더 가까운 사람 같다. 그래서 진실을 알아차릴 때면 무너져버리거나 오히려 가벼워지곤 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 어떤 비난이나 충고 없이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 그런 공간이 세상에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요."
설은아 작가는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진짜 이야기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두드리기 시작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이다. 진정한 소통 한 조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서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구현 중이다.
2층에서는 1층과 다르게 진실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전시 장엔 공중전화와 전화기들이 있고, 수화기를 귀에 대면 다른 사람의 진심을 들을 수 있다. 오랜만이었다. 진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게. 전화를 받으며 미처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부재중을 들을 수 있다.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연,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지 못 했던 말까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조심스럽고도 망설임이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울컥할 만큼. 사람들이 공중전화와 메시지로 남긴 이야기를 영상과 전화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각자만의 사연이 있다.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착각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판단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상처 받기도 하면서. 나만 내 진실의 무게가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도 각자의 무거운 진실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구나. 오랜만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이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해도 좋지만, 혼자 가서 둘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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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보통의 거짓말 Ordinary Lie
서울미술관 https://seoulmuseum.org/
https://artlecture.com/project/4391
글_아트렉처 에디터_송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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