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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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토론의 장으로 삼다 <논픽션>: 프랑스 영화의 교육적인 특징을 실천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최근 5년간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면 각본가로 참여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실화> (2017)를 포함해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2014)와 <퍼스널 쇼퍼> (2016)에 주목할 수 있는데, 세 작품 모두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의 신작 <논픽션> (2018)은 이전 작품과 결이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논픽션>은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으며, 코미디 장르에 해당하므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상대적으로 생소하다고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현실과 분리된 가정법적 시공간 매체, 즉 픽션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픽션의 매체를 활용해 21세기의 현재와 미래와 밀접한 현실적인 문제 및 질문을 스크린 안에서 밖으로 던진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인물들의 대화들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디치털화, 오늘날의 출판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 관계의 문제, 정보 자정 능력의 결여 문제 등 수많은 주제를 공유한다. 이는 영화의 여러 역할 중 하나인 '토론의 장'의 기능을 해냄으로써 결국 프랑스 영화의 교육적인 특징을 실천했다는 영화적 성취를 이룬다.
영원한 진리와 같은 답은 없다, 그래도 계속 토론을 해야만 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이번에 <논픽션>과 같은 현학적인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사회는 중요한 이슈로 4차 산업혁명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많은 분야들이 디지털화를 논하고 있거나 일부 분야는 벌써 디지털화를 진행 중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사람들의 의식주 습관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근데 만약 이런 사회현상을 들여보는 일을 꺼려하고 구시대적인 트렌드만 고수한다면, 현대사회의 문제를 외면하기 쉽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그런 우려를 이미 자각하고 있었고, 공론장과 같은 영화로 자신의 고민을 표상했다. 특히, 극 중에서 대화 혹은 토론이 진행되는 공간을 집안, 카페, 바, 토론회, 블로그, 라디오 스튜디오, 서평회 등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논픽션>을 만든 목적을 강조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모든 대화의 끝무렵에 확인할 수 있는 분위기와 각 인물의 태도다. 매체가 발달되면서 언제나 누군가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할 수 있지만, 토론을 할 때 감정을 온전히 분리하지 못한 나머지 대개 감정이 상한 채로 토론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논픽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토론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자신들의 신념을 쉽게 접지도 않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말을 해도 이를 인정하는 태도롤 취한다. 그래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만들어낸 토론의 장은 끊임없는 대화와 옅은 미소로 가득하다. 더 나아가, 카메라 시선을 대화 내내 어깨너머로 보여주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선 토론을 하되 영원한 진리와 같은 답은 없으니 계속 자기 의견을 드러낼뿐더러 타인의 의견에도 경청해야 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논픽션>이 제기하는 현대사회의 현상과 문제 Part1: 디지털화를 향한 맹목적인 신뢰와 문화산업의 위기
<논픽션>은 일상적인 부분에서 현학적인 부분까지 아우르는 현대사회의 현상과 문제를 지적한다. 우선 이 영화가 주요하게 관심을 갖는 현대사회의 현상은 '디지털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독자들의 독서습관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의 블로그 글이나 SNS 게시물을 보며 자신의 주관보다 타인이 제시한 기준을 자신의 기준인 것인 마냥 따르면서 온라인으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흐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게다가, 알랭(기욤 까네)이 직면한 출판업계의 현실도 디지털화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디지털화 과정을 통해 편집과 유통의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으며 덕분에 판매 가격을 낮춤으로써 책을 향유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도리어 지식의 양극을 심화시킬 수 있다. 누구나 전자기기를 하나쯤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뿐더러 레오나르(빈센트 맥케인)의 아내처럼 여러 대의 스마트 기기를 소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디지털화된 자료를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디지털화는 모두가 지식을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부여하기보다 전자 기기를 소유한 이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일종의 특권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이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부분은 도서관의 전망을 어둡다고 당연하게 말하는 극 중 인물들의 태도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저장하는 아카이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처럼 도서관 역시 디지털화를 일부 수용하는 동시에 미래에서도 기능하기 위해 지역사회나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복합 기관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무분별한 디지털화 추구는 '탈진실'이라는 문제로 확장된다. 탈진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게 진실이고, 그런 믿음이 만들어낸 허구 세계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디지털화 덕분에 굳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많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지만 탈진실에 묶여있다면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문화가 쇠퇴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보의 범람에서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자정 능력을 기를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디지털화와 얽힌 복잡한 문제들을 여러 주제로 토론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룬다.
디지털화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근심과 더불어 이 영화는 현재와 앞으로의 문화산업을 걱정하는 시선도 포함하고 있다. 극 중 셀레나(줄리엣 비노쉬)는 본인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의 다음 시리즈에 출연하는 것을 굉장히 망설여한다. 이는 최근 드라마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소재나 서사는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독창성이 부족해지고 있는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드라마의 수가 점점 늘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좋게 말해서 트렌드지만, 실은 콘텐츠 산업의 정체기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신선한 창작물이 등장하지 않는 상황은 제작자의 근심을 증가시킬뿐더러 배우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배우라는 직업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돈과 명예를 잡을 수 있지만, 대중으로부터 안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순간 두 가지를 쉽게 잃을 수 있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또한 배우에게는 익숙한 배역을 계속 연기하는 순간 그 배역에 갇히게 되고 결국 앞으로 연기자로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위기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셀레나의 고민은 개인 혹은 특정 직업의 고민에 국한된 게 아닌 문화산업과 맞물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극 중 토론의 시작점이기도 한 출판산업에서도 문화산업의 위기가 드러난다. 기술 발달 덕분에 점점 많은 현대인이 블로그와 트위터를 포함한 각종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이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트위터에 남긴 글이나 이메일을 모아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대필 작가로 활동하면서 쓴 편지를 모아 책으로 출판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처럼 책으로 발간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면 바로 문제가 된다. 시류에 따른 적절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지만, 사고를 이끌어내지 않고 단순히 읽고 소모해버리는 책만 양산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우려를 알랭의 입을 빌려 표명한다.
<논픽션>이 제기하는 현대사회의 현상과 문제 Part2: 삶에 관한 담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꺼낸 삶에 관한 담론은 '관계'와 '모순적인 태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관계'에 대해 말을 꺼내자면, 영화는 현대인이 맺는 관계는 점차 비건설적이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듯이 금방 오래가지 않아 끝내버리는 일종의 소진적 행위임을 꼬집는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루함을 느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데, 극 중에서는 불륜이라는 일탈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같이 있을 때는 쉽게 불타오르지만,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쉽게 꺼진다. 심지어 관계가 손쉽게 끝나는 것에 대해 화를 내기는커녕 묵묵히 받아들어거나, 이미 눈치를 챘기에 힘들지 않게 이를 수용한다. 이런 삶의 한 단면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셀레나, 알랭, 레오나르, 그리고 레오나르의 부인(노라 함자오위)의 만남이 발생하는 후반부 시퀀스로 그려낸다. 관계에 대한 지적은 '이미지 소비'에 관한 테마로 발전된다. 레오나르가 독자뿐만 아니라 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 테마와 관련 있다.
그의 말처럼 한 사람의 성격과 존재는 스스로에 의해 정립되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만남 및 관계에서 비롯된 경험을 통해 정립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허락 없이 자신이 만난 사람이나 겪은 경험을 이미지로 무조건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허구의 캐릭터로 재구성을 한다고 해도, 관계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구성된 캐릭터에 해당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매체에 의해 소비되고 있음을 눈치챈다. 따라서, 자신의 사생활이 자신도 모르는 사람에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에 두말할 것이 없이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 이 테마에 덧붙여 말하자면,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미지는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의 눈을 속여 인위적으로 형상화할 수도 있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레오나르의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관계에 대해 환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한 또 다른 담론은 '모순적인 태도'라고 언급했는데, <논픽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군상의 모습이다.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간단한 이유는 현대인이 편안함과 혼돈을 아울러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는 E-Book이나 오디오북처럼 종이책보다 저렴하고 더 간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수요가 이전에 비해 늘어났음을 알고 있다. 게다가, 알랭처럼 식사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 먹지 않거나 이동하지 않는 대신, 돈을 지불하면 서비스 형태로 쉽고 빠르게 음식을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은 혼돈의 필요성을 논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혼돈의 상황 덕분에 무언가를 사유하고, 상대방과 토론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혼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이전 문단에서 언급한 후반부 시퀀스를 통해 이와 같은 담론을 냉소로 승화한다. 각 인물은 이전 장면에서 보여준 대화와 달리, 후반부 시퀀스에서는 말과 다른 행동을 보이거나 혹은 상이한 말을 내뱉는다. 본인이 과거에 했던 말을 뒤집는 행위는 반성으로 해석하거나 자가당착이라고 양극단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논픽션>에서는 후자에 해당한다. 만약 인물들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인정한다면 반성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후반부 시퀀스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인정은커녕 침묵과 은폐의 흔적만 남아있다.
결론적으로 <논픽션>은 오로지 토론을 위한 영화다. 그래서 수많은 대화가 쏟아지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론장을 계속 이동하고, 다양한 주제를 던짐으로써 쉴 틈 없이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대화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각본을 즐기는 재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승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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