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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an 13. 2020

나는 스스로의 능력을 얼마나 믿어줄 수 있을까

픽처에세이-아마추어 화가였던 앙리루소

https://artlecture.com/article/1330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참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그나마 만성적인 자기혐오로부터 벗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부럽다. 대책 없는 비관보다 근거 없는 낙관이 낫다는 말이 있던데. 몇몇 예술가들의 삶을 보면, 때로는 스스로를 믿어줄 수 있는 자신감의 토양에서 재능이 싹터오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화가 앙리 루소는 복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에게는 천부적인 자기 긍정이 힘이 있었다. 앙리 루소는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모두를 놀라게 할 재능을 드러냈다거나, 아카데미나 거장의 밑에서 수업을 받는 엘리트 코스를 밟거나 하지 않았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주말 화가' 즉, 아마추어 화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앙리 소는 27살에 파리 세관사무소에 취직한 뒤 퇴직 전까지 22년을 시 공무원으로 일했다. 본격적으로 전시회에 작품을 내기 시작한 것은 40대의 일, 그리고 전업화가로 전향한 것은 퇴직한 뒤인 49세가 되어서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어떤 운동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마치 그 자체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당시의 그림 사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유로운 작품이다.



Myself: Portrait – Landscape, 1890


Tiger in a Tropical Storm (Surprised!), 1891


The Dream, 1910


The Muse Inspiring the Poet, 1908-1909



이렇듯 그의 작품에는 특별한 기교가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조금 서툰 듯 그려진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작품의 모델은 천재 시인이라 불렸던 기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화가 마리 로랑생이다. 마리는 뮤즈를 연기하고 있고, 그녀의 오른손은 천상에서 받은 영감을 그의 시인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작품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잘 그린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모델들은 입체감 없이 납작해 보이고, 자세나 손의 모양도 부자연스럽다. 꽃이나 나무도 너무 섬세히 그리다 못해 뻣뻣하고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재밌는 것은 그림을 그린 앙리 루소는 본인의 작품을 극 사실주의 작품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그가 작품을 그릴 때마다 모델의 온몸 치수를 재고, 피부 옆에 물감을 대어 색깔이 같은지 확인하는 등 유난을 떤 일은 유명하다. 나무를 그릴 때는 나무를 30cm 앞에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나무의 결이나 이파리의 세세한 모양 하나하나를 다 그려냈다.


그러나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사실주의(?)로 그리려 노력한 그림은 실물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비례도 맞지 않고, 원근법이나 입체감이 하나도 없는 그의 그림은 바로 이 점으로 인해서 그를 성공하게 만들었다. 그는 피카소나 들로네, 막스 에른스트와 같은 화가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막혀있던 근대 서양화의 새로운 물길을 트여줄 거장으로 받들여졌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거장 화가들에게 인정받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이 인정받기 훨씬전부터 일관되게 자신이 '최고의 화가'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은 그가 사기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을 변호하면서 "내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일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될 때도 이렇게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힘이라니!!


일찍부터 루소의 그림을 사서 모았던 피카소는 그런 루소의 그림에서 싱싱한, 때 묻지 않은 원시성을 보았다. 피카소는 "나는 거장 라파엘로처럼 그리는데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 내 인생 전부의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10대에 전통적인 미술의 기법을 모두 터득했던 대가에게는 루소의 작품처럼 '무언가를 배우기 전’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루소가 피카소에게 '우리 둘은 현존하는 최고의 화가들이야. 물론 자네는 좀 이집트풍이고 내가 더 모더니즘 쪽에 가깝지만 말이지.'라고 말했을 때도 피카소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악의 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그의 성격 때문도 있지만, 정말 그는 근대 미술 최고의 화가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순수한 자신감과 시대를 잘 타고난 때 묻지 않은 재능은 '정말로' 그를 피카소와 견줄 수 있는 최고의 화가로 만들었다.




글_아트렉처 에디터_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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