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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03. 2020

화가의 애티튜드, 구스타브 쿠르베

https://artlecture.com/article/1380



<세입자 구함> 파리 16구. 에펠탑 10분 거리. 지하철 Iena/ Boissiere 도보 2분 거리. 15㎡. 풀옵션. 월 900유로. tel: 06.23.52.47.68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부유한 동네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만 같은 조용한 거리. 그 한복판에 아기자기한 발코니가 시선을 끄는 고급빌라가 있었다. 내 키의 두 배가 넘는 회색 대문을 밀어젖혔다. 레드카펫이 깔린 대리석 계단 옆 쪽문을 지나면 눈앞에 작은 정원이 펼쳐졌다. 열 걸음 걸어 정원을 가로지르면 나무계단이 보였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계단에 숨이 가쁠 때쯤이면 벌써 3층이었다. 그곳에 으리으리한 회색 대문과는 정반대인 작고 허름한 문이 나온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그 문 안에 내 셋방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 방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 “하녀 방이야.” 가난한 유학생과 어울리는 초라한 방이라 지은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그 방을 부끄러워 한 건 아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완벽한 타인의 나라에 온전한 내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늘 감사했다. 하지만 이 방을 유지하기 위해선 한 달에 한 번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이 있었다.



매월 1일.

집주인 에흐베(Herve) 씨를 만나는 것이다.



1일 아침마다 나는 고민한다.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건넬까? 인사말은 뭐라고 해야 할까? 혹시 안부를 물으면 어떤 안부를 전해야 할까? 어눌한 불어로 공손하고 주술이 맞는 문장을 만들어 중얼중얼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에흐베 씨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혹시나 맘이 바뀌어 집을 비워달라고 하진 않을까?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진 않을까?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벨을 눌렀다. 그러면 파란 눈의 에흐베 씨가 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에흐베 씨. 이달 월세입니다.” 나는 최대한 예를 갖춰 발음했고, 꾸깃꾸깃한 100유로 9장을 바르게 펴서 건넸다. 그러면 에흐베 씨는 옅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Merci.” 내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문 앞을 돌아서며 한숨을 쉬었고 한 달은 또 버티겠다고 안도했다. 사실 에흐베 씨가 나를 타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대리석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다.   

  

부유한 삶도, 가난한 삶도 똑같은 삶일 뿐인데 에흐베 씨 앞에서 왜 그렇게 작아졌는지 모를 일이다. 이 타지에서 당장 쫓겨나면 벌어질 뒷일들을 내가 지나치게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 앞에서 작아지는 못난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발휘했는지도. 무엇이 됐든 멋없는 구린 ‘애티튜드’였던 건 틀림없다. 에흐베 씨는 악마가 아니었고 나는 주눅 들 필요가 없었다.


당시의 나와는 전혀 다른 애티튜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 


구스타브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1854



“만약 내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천사를 그려주겠소.” -구스타브 쿠르베     



19세기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사실주의 작가로서 그의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화가들은 작품 속에서 귀족들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옷과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지위를 한껏 뽐낸다. 하지만 쿠르베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미화하거나 억지로 꾸민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배경은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한적한 시골길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나 인사를 하는 중이다. 그림 오른편에 허름한 등산복을 입은 남자는 산길을 얼마나 헤맸는지 신발에 흙이 잔뜩 묻어있다. 등에 화구를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쿠르베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맞은편에는 녹색의 트렌디한 신사복을 입은 화가의 후원자 알프레드 브뤼야스가 악수를 청하려는 듯 장갑을 벗고 있다. 한 눈으로 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다. 그의 옆에는 쿠르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하인과 혈통 좋은 사냥개가 동행하였다. 브뤼야스와 하인의 말끔한 구두는 저 멀리 지나가는 마차에서 이제 막 내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사람의 제스처나 몸짓이 옷차림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매우 상반된다.     


당시 쿠르베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실을 냉담하게 담아내는 쿠르베의 그림이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여겼던 당시 부르주아들에게 매력적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브뤼야스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했을 때였다. 





하지만 작품 속 쿠르베는 자신의 돈줄을 쥐고 있는 후원자 앞에서 잘 보이려고 애쓰거나 주눅 든 기색이 전혀 아니다. 마치 동료 화가를 대하듯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오히려 브뤼야스가 허리는 세우고 있지만,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어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작업복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치켜든 쿠르베는 상사나 다름없는 경제적 지원자 앞에서 전혀 굽실거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품 속 그는 무례하다기보다 당당하고 가식적이라기보다 진솔해 보인다. 작가는 그저 화가로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저절로 묻어나는 것이지 화려한 겉모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사실주의 회화가 추구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이러한 점은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진실이 늘 아름답고 좋은 것만은 아니듯 삶도 그렇다. 작품 속 쿠르베는 겉으로 보이는 격식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브뤼야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닐까?     


쿠르베가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서는 브뤼야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도 현실의 삶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쿠르베는 브뤼야스를 단지 자신에게 돈을 주는 후원자로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 그를 마주하고 있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지위에 있고, 어떤 옷을 입고, 나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지금 쿠르베의 눈앞에 있는 한 인간. 알프레드 브뤼야스로 말이다. 한 인격체로, 인간으로서 그를 존중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그의 당당한 애티튜드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          


상황 탓을 해보지만 어쨌든 나는 에흐베 씨를 프랑수아 에흐베라는 인간으로서 그를 마주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는 집주인, 모든 상황이 나보다 유리한 현지인으로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 앞에서 난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던 적이 있었던가, 마음 다해 그를 마주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에흐베 씨는 두려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담담하게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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