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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01. 2018

디스토피아의 예술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디스토피아의 예술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 <그래피티>로 우리에게 친숙한 감독이다. 2016년작<칠드런 오브 맨>은 국내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천억의 제작비를 들이고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영화가 인기를 끌지 못한 데는 크리스마스에 개봉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고 한다. 제목에서는 예상할 수 없지만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미래, 영국 정부는 난민을 탄압하고 반란군은 끊임없이 테러를 일으킨다. 세계의 모든 여성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한다. 새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잃는다. 그 와중에 주인공 테오는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이자 불법 이민자 ‘키’를 안전하게 ‘휴먼 프로젝트’라는 살아남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영화에는 예술적인 메타포가 포함되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주인공 테오가 사촌 나이젤을 만나는 장면이다. 나이젤은 정부에서 각국의 예술품을 훼손되기 전에 가져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한 전쟁통이지만, 부유층인 그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집에서 하인들을 거느리며 살고 있다. 나이젤이 테오를 맞이한 거대한 복도에는 한쪽 다리가 훼손된 다비드 상이 서 있다.


<그림 1> 미켈란젤로, ‘다비드’가 있는 복도

나이젤은 ‘피에타 상도 구하려 했지만 이미 폭파되어 버렸다’고 한다. 테오는 ‘어릴 적 화장실에 플라스틱 다비드 모조품이 있었다’고 비아냥거린다. 힘과 의지를 상징하는 다비드가 다리를 잃고 숭고한 어머니를 반영하는 피에타가 사라진 미래의 인류에게 여유와 감동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 영화 후반부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여성이 등장하며, ‘키’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은 작품으로서는 사라졌지만 현실에서 구현된 피에타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그림 2>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
<그림 3> 아기를 안고 있는 ‘키’


테오는 나이젤과 긴 식탁에 앉는다. 식탁 뒤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가 걸려있다. 그림은 무고한 스페인 시민들이 나치에게 폭격을 맞았던 참상을 담고 있다. 작품 속 현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쟁을 경계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작품을 뒤로하고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테오는 나이젤에게 ‘키’와 함께 떠날 방편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나이젤은 쉽게 승낙하고 알약 하나를 삼킨다. 그리고 테오에게도 하나 권하지만, 테오는 먹지 않는다. 이처럼 테오는 현실을 잊기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마주하려 한다.


<그림 4> 피카소 ‘게르니카’가 걸려 있는 풍경
<그림 5> 왼쪽부터 ‘나이젤’과 ‘테오’


테오는 나이젤을 향해 피식 웃는다. ‘앞으로 100년 후면 예술품을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이런 짓을 하지?’ 나이젤은 답한다. ‘난 미래를 생각 안 해.’ 이는 현재의 쾌락에만 몰두하는 부유층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뒤로는 돼지 형상의 풍선이 지나간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1977년 앨범 ‘animals’ 커버에 실린 ‘발전소와 돼지 애드벌룬’을 떠올리게 한다. 이 앨범은 자본가와 노동가를 풍자한 노래들을 담은 것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 풍선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라는 소설 속 대사의 의미가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림 6> 돼지 애드벌룬이 있는 배경
<그림 7>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Animals’ 앨범 커버, 1977


그러나 나이젤의 말은 예술은 현재를 위해 존재하지, 미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예술은 현실적인 이유가 우선시되면 존재가치가 희미해진다. 한쪽에서는 난민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예술품을 위한 방주를 만들고 있다. 테오 역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비관적 기대와 달리, ‘키’가 낳은 후손들이 번성하여 언젠가 보존된 예술품을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 한 줄기 빛이 어딘가에 숨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에서 고매한 정신을 추구하는 예술이 설 자리는 없다. 테오와 나이젤의 대사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희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대비하며, 디스토피아에서 예술이 경험할 위기에 대해 예상하고 있다.


영화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난민 문제나 폭동 및 테러, 출산율 감소 등이 현재에도 전혀 낯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약하고 실리적이지 못한 예술은 1순위로 파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부유층의 전리품으로 살아남으면서 대중의 비판을 받게 될까. 인간의 높은 이상과 휴머니즘을 담아내고자 했던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지면서 그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예술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게 될까.


<그림 8>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아트렉처 에디터_양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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