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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05. 2018

정은영: 무엇이, 어떻게, 동시대의 예술이 되는가?

MMCA Seoul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올해의 작가상

MMCA Seoul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올해의 작가상

정은영: 무엇이, 어떻게, 동시대의 예술이 되는가?


정은영 작가의 작품에는 두 축의 문제의식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젠더의 문제입니다. 나뉘어진 성역할과 이를 강화하는 이분법적 성담론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아카이브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역사로 기록되고 전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그러한 판단과 수행을 이루는 권위는 어디에 있으며 그 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작가는 묻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오늘날 더더욱 강력하게 요청 받는 이 두 질문을 품고 여성국극을 파헤칩니다.




여성국극은 창무극의 한 형태입니다.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되 단순화된 선율로 대중성을 갖추고, 춤과 연기 등의 연극적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오로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극단에 의해 극 중 남성 배역도 여성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입니다. 해방 후 50년대 새로운 대중예술 장르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전통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현대극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결국 무대 안팎에서 모두 잊혀지고 만 것이지요.

작가는 여성국극을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 경계를 무너트리는 경쾌한 수행의 장으로 조명합니다. 여성의 몸으로 남자 배역의 분장을 하고 남성을 재현해내는 배우들은 당시 공고했던 성의 외형을 뒤흔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여성 배우가 남자 배역으로 연기하느냐가 흥행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극단은 회상합니다. 하지만 이 수행이 무대 위에서 한시적으로 이뤄졌던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여성배우들이 극단 공동체 생활 안에서 하나의 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여성국극 단원의 삶 자체가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졌던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고정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성국극은 60년대 이래로 점차 쇠퇴하여 결국 공연계에서 사라집니다. 여기에는 여성극단의 생명력이 길게 유지되지 못했던 내부적인 원인도 있었지만, 여성국극이란 장르 자체가 평가절하된 구조적인 이유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국극에 대한 자료는 제대로 기록되고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극단의 희소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자료의 부족은 작가로 하여금 그 빈틈들을 능동적으로 채우는 작업을 필요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공식적인 형태의 자료를 의미합니다. 만약 기존의 잣대를 들이민다면 작가의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로서 인정받지 못하겠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아카이브가 역사를 호명하고 지연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했으면 좋겠다고요. 이전까지 아카이브가 역사를 결정하고 물화 시키는 권위에 가까웠다면 그녀가 시도한 아카이빙은 역사의 확정을 유예하고 계속 의미를 생성하는 현재적인 활동일 것입니다.


정은영 작가의 영문 예명은 ‘siren eun young jung’ 입니다. ‘Sire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새의 존재로, 바다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죽음에 빠트립니다. 작가는 ‘Siren’을 “제도를 무화시키고 중심성을 해체하는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또한 뒤의 성명을 모두 소문자로 쓴 것은 무엇이 성인지 이름인지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요. [1]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교육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활동하는 그녀의 행보도 굳어진 경계들에 계속해서 균열을 내는 수행에 다름 아닐까요. <여성국극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논문을 읽는다면, 더욱 날카롭고 정교한 언어로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에 접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국극의 형태를 오늘날의 무대에서 새롭게 구현해내는 시도를 보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무대 위 일회성의 순간을 영구하게 새긴 영상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나 작가는 단순한 유쾌함을 넘어서 더 복잡한 고민들에 봉착하게 만듭니다.이분법의 해체가 무대 위의 연극적인 연출이 아닌 실재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의 시도에서 연극성이 두드러져 보일수록 규범의 해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해체의 시도가 여전히 고정된 역할을 전복시키는 형태에만 머무르는 것 또한 서글픈 한계였죠. 기존의 성을 답습하는 형태로만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일 수는 없는 거니까요. 본연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두텁고 과한 화장과 의상, 그리고 남성다움을 모방하는 과장된 발성과 몸짓들. 그 연기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배급사 ‘영희야 놀자’ 제공


작가와 작가의 작품세계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경향일보 인터뷰, 201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261225001&code=960202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전시공간과 제작 지원, 그리고 국내외 전문가 및 폭넓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홍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해마다 4명의 후원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개최합니다. '올해의 작가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지점은 '올해'와 '작가'입니다. 즉, 올해 바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이며, 좁게는 미술계에서, 넓게는 우리 사회에서 비평과 토론의 소재로 삼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전시이죠.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개요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는 11월 25일까지 입니다. 정은영, 구민자,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정재호 작가의 전시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올해의 가장 뜨거운 작가들의 전시를 감상해보세요. 


      

[1]


경향일보 인터뷰


백승찬의 나직한 인터뷰

나는 90년대 영페미, 성별 규범을 깨지 않고는 그 무엇도 깰 수 없어”, 2018.10.26 





아트렉처 에디터_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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