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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20. 2020

대중의 마음을 훔칠 神소리, 이날치

https://artlecture.com/article/1429



‘국악’을 생각하였을 때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데 대게 많은 사람들은 민요, 판소리에 해당하는 소리 즉 민속악의 성악을 그중 첫째로 꼽는다. 이전 글들을 통해 경복궁타령, 군밤타령과 같은 민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민요만큼 친숙한,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와 가까운 우리 소리인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판소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세기 중반 이후로 서민층을 기반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며, 판소리를 구성하는 배경, 인물, 상황은 조선시대를 뿌리에 두고 있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창), 이야기로 내용을 전개하는 아니리, 몸짓 등을 통해 상항을 표현하는 발림 이 세 가지 표현법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통 공연예술이다. 판소리가 발생했던 당시에는 판소리 열두 마당으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흥보가, 수궁가, 장끼타령, 웅고집타령, 변강쇠타령 등 지금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한 마당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흥보가, 수궁가만이 다듬어져 현재의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정착된 것이다. 판소리가 서민층을 기반으로 발생, 흥했던 이유로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통예술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수용하고, 우리 민족의 언어, 희로애락의 정서를 종합하는 표현방식, 청중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판소리의 대목들을 들어보았다. 대표적으로 <춘향가>의 한 대목인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시작하는 <사랑가>가 있다. 판소리는 청중과 함께 하는 청중 참여 공연이라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판소리 완창 공연을 보거나 응원하는 등의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막연히 ‘국악’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중독적이고 ‘힙’하다고 느껴질만한 그룹이 있다. 전통예술을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풀어내는 프로젝트 판소리 밴드, 이날치이다. 이 그룹의 이름인 ‘이날치’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이날치(李捺致, 1820-1892)는 19세기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명창으로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이날치의 소리에는 서민적인 정서가 풍부하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널리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밴드 이날치를 만든 장영규 음악감독에 따르면 과거의 인물이지만 단어가 주는 어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느낌을 주어 차용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TRaSg2fTQ&feature=emb_logo

(c) 이날치, ‘범 내려온다’ 온스테이지 영상



이날치는 다섯 명의 소리꾼과 베이스, 기타, 드러머로 편성된 밴드로 이들의 ‘범 내려온다’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 100만을 넘었다. 우선 위 영상에 대해 소개하자면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으로 자라가 범을 만나는 장면이다. 소리꾼들이 구성한 ‘범 내려온다’에 베이스, 기타, 드럼을 더한 것으로, 자신 있게 말하건대 현대인의 감성에도 울림을 준다. 전통예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신세대가 좋아하고 익숙해 하는 음악을 접목하여 ‘판소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대체로 판소리는 길이가 길고 그 박자가 느려 고루하다 생각하기 십상이고, 실제로 감상하는 단계까지 이어지기가 어려운데,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아주 긍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영상을 끝까지 감상해보길 바란다. 이것이 판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세련되었다. 판소리에 관심 없던 젊은 세대를 중독시켰다. 이 영상의 댓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아, 나 지금 이틀 동안 이 영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 호랑이 한 378마리 내려옴 지금.’



살짝 전통이라는 옷고름을 풀었을 뿐인데 세계를 와락 껴안았다.

호랑이 한 마리에 존비귀천 죄다 퉁치고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졌다



사실 오늘날 ‘판소리’ 그 자체로는 국악을 전공하여 공부하거나 특별히 애정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익숙하지 않은 음악으로, 사설이 어렵고 대체로 길고 느려 공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표현하는 판소리는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게 되고, 어느새 소리꾼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기게 된다. 이런 것들이 베이스 기타, 드럼 때문인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음악은 장단과 서사가 주된 요소를 이루며, 다섯 명의 소리꾼들이 구성과 편곡을 한 뒤에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간다. 따라서 편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음과 리듬이 반복되어 흥이 나고 소위 말하는 ‘힙’한 음악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창법으로 부르는 소리, 언밸런스한 춤, 서양 악기 반주, 통일성 없는 의상들은 어딘가 불편함을 줄 법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묘하고, 중독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02j4_G3EA&feature=emb_logo

(c)이날치, ‘별주부가 울며 여쫘오되’ 공연 실황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이날치의 음악을 ‘진짜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고 말한다. 또 혹자는 이들의 음악이 ‘진정한 케이팝’이라고 칭한다. 충격적으로 새로운 음악이다. 이날치를 어떤 밴드라고 규정할 수 없다. ‘이날치는 이날치다’라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정의한다면 판소리를 국악과 팝의 결합체로 만드는 밴드라 할 수 있겠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명백했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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