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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29. 2020

자연의 언어를 인간의 온기로 번역하는 일

이타미 준의 바다

https://artlecture.com/article/987



이타미 준의 건축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닮았다. 그의 건축은 사람처럼 태어나고 자라서 늙으며 소멸한다.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재료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건축의 모든 재료는 유한한 시간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나무,돌,흙과 같은 자연의 재료가 생명의 기한이 정해져있음을,그는 아쉬워하거나 부정하려 들지도 않는다.그의 건축은 소멸을 도리어 긍정한다.그는 그것을 ‘시간의맛’이라고 표현한다.태어나서 사람을 품고,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시간을 견디며 함께 늙어가는 건축.그러니 그에게 건축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아니라,시간이 만들어낸 무언가와 같다.


그렇다. 이타미 준에게 ‘시간성’이란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동시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또다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구별되는 요소이기도 하다.안도 타다오는 ‘공간감(공간체험)’이중요시 했다. 재료의 실체보다,무언가의 ‘공간’이 내부를 감싸는 듯한 감각을 건축에 담고자 했다.그래서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 발생되는 시선 분산이나, 혹은 특정 재료의 부분적 표현을 막기 위해서 노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내부와 외부가 하나의 일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노출 콘크리트의 실체는 추상화되면서 옅어지지만,형태는 도리어 명료하게 드러남으로써 건물 내부의 공간감이 극대화된다.



왼쪽: 안도 타다오의 <바람의 교회>(1986), 오른쪽: 이타미 준의 <석 박물관>(2006)



이타미 준의 건축은 공간보다 시간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도쿄의 <먹의공간>(1998)의 외벽엔 대나무 띠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처음 초록이었던 색이 시간이 흐르며 갈색으로 변한다. 그 변색이 흉하지 않고,건물과 기묘하게 어우러져 기품있어 보인다.그의 딸인 유이화 소장(ITM 건축사무소)은 아버지가 생전에 이것이 시간의 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한다.제주의 <석 박물관>의 외벽은 철판으로 되어있다.처음 이 색은 황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부식되면서 점점 붉은 색이 되었다고. 그는 시간의 흐름 역시 건축의 중요한 재료임을 굳게 믿는 것 같다.


한편 그는 건축의 지역성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만들고 싶습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장소와 공간에 대해 깊고 냉철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또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으며 건축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야 합니다. 특히 조형은 바람을 절대로 거스르지 않아야 하며, 자연의 힘인 바람에 관한 것은 바람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빠짐없이 그곳의 역사,지형,풍토,재료를 담고 있다.온양 미술관의 벽돌은 충남 아산의 흙으로 빚었고,제주의 포도 호텔의 지붕은 제주 지역 전통 민가의 오랜 풍습인 ‘오름’ 형태를빗대어 표현했다. 물과 바람과 돌이 유명하다는 제주도에 건물 한 가운데 물을 받아놓은 수 박물관,목재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도록 여백을 내준 풍 박물관,돌의 은은하고도 항구적인 물성을 담아놓은 석 박물관은 그가 건축이 그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드러내준다.



이타미 준의 <풍 박물관>



이타미 준에게 건축이란 도드라지는 개별적 구조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건축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것이다”.결국 그의 건축은 자연의 언어를 사람의 온기로 통역하는 일과 같은 것일까.문득 자연의 언어가 따뜻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시간이 지난다는 것은,사라진다는 것은 슬퍼할 것이 아니라고.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럴 거 없다고. 어둠 속에 들어앉아 있어도(<먹의 집>)그곳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빛을 바라볼 수 있지 않냐고. 그렇게 나직이 말하는 것 같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렇게.



(부기) 문득 영화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준의 바다>의 또다른 차이점이 떠올랐다. 극에서 안도 타다오는 노령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있다. 이타미 준은 지난 2011년 타계했으므로극중에서 관객은 사라진 그의 흔적만을 목격할 뿐이다. 각각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 재료를 사용한 둘의 건축만큼이나 상징적인 차이 같다고 느껴졌다.둘 모두에게 깊은 평화가 있기를.


참고글: https://artlecture.com/article/491




글 아트렉처 에디터_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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