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과 허무주의에 대한 웹코믹의 이야기
https://artlecture.com/article/1518
번역: (왼쪽 3째 칸부터) ‘안녕 레이첼’ ‘좋은아침 폴’ ‘나, 음’ ‘나 한시간쯤 전에 죽었어’ ‘콜록’ ‘어떤 차가 빨간신호등에서 달려버렸어’
회색 배경의 패널 속 검정색 선으로 그려진 무표정한 캐릭터가 말한다.
’나 한시간쯤 전에 죽었어 (I died about an hour ago)’.
그리고 곧 이어서 설명한다.
‘어떤 차가 빨간신호등에서 달려버렸어’.
방금 교통사고를 당한 그의 대사엔 놀라움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대화하는 캐릭터의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폴, 작가 존 캠벨 (John Campbell)이 2007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연재한 웹코믹 <Pictures For Sad Children> (슬픈 아이들을 위한 그림) 의 주인공이다. 작중 유령이 된 폴은 죽음을 통해 이전의 삶과 끊어졌고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생전의 그가 다니던 사무실에 출근하고,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시공간적 제한이 없는 폴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도시나 나라도 방문하지만, 그 어느 곳도 특별함을 찾을 수 없어 뻔하고 지루하다는 평을 내린다. 그의 생전 직장동료들도, 친구들과 가족들은 죽은 폴이 지구에서 떠나지 않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변함없이 삶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가는 주변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인생, 죽음, 일, 미술 등의 여러 주제와 그것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한다. 캠밸의 모든 캐릭터들은 코와 입이 생략된 점, 선으로 이루어진 스틱피규어에 가깝게 디자인되어 있고, 그들이 있는 배경은 낮이나 밤을 알수 없는 회색의 모노톤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한 에피소드의 시간과 장소, 인물들의 관계도나 생각은 그들의 대사를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많은 만화들이 대문자 알파벳으로 대사를 입력한 것과 달리 작가는 모든 대사를 소문자로만 입력하여 무심하고 초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만화 속에서 오가는 대사들은 서로가 나누는 대화 같으면서도 혼잣말처럼 작게 느껴지고, 많은 경우에 캐릭터들은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적인 모습이다. 그렇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패널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와 단어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한다. 이 미니멀적 디자인의 세계는 당시 2000년대 현대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작가의 허무함을 나타낸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질병, 외로움, 우울증이 끊임없이 늘어가는 사회 속에서 작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고 꿈과 희망이 배제된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작가의 시니컬한 세계관은 인터넷상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게 되었고 2년후 첫 단행본 <Pictures For SadChildren>이 출간되자 더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번역: ‘봐’ ‘날 봐’
만화속에서 캠벨은 종종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현대미술의 의도와 의미의 필요성을 주제로 삼으며 미술을 단순한 관심끌기로 요약하기도 한다. 한 장면에서는 갤러리 안에 쌓아놓은 사탕더미 작품을 보여준다. 아마도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사탕 79kg>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을 본 한 우울한 여성은 작품 옆에 앉아 사탕을 한알씩 집어먹기 시작한다. 그녀가 갤러리 안에 있는 사탕을 전부 먹어치우는 것을 본 다른 관람객들과 큐레이터들은 이것을 하나의 퍼포먼스 작품으로 오해하며 획기적인 작업으로 예찬한다. 캠벨은 예술의도가 없는 행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며, 독자는 이를 통해 작가의 허무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2012년, 작가는 3년만에 크라우드 펀딩 킥스타터를 통해 두번째 단행본 <Sad Pictures for Children> (아이들을 위한 슬픈그림)을 제작하기 위한 후원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전 단행본의 인기에 힘입어 캠페인은 몇달만에 1000여명의 후원자들과 51,615 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인쇄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마지막 배송단계가 남은 시점인 9월, 작가는 ‘나는 이익을 위해 우울증 연기를 했다’라는 제목과 함께 배송이 늦어짐에 대한 사과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작가는 창작을 위한 정신적인 고통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돈과 예술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정신건강이 안 좋아졌음을 밝혔다. 이야기를 읽은 다수 후원자들은 그가 건강을 되찾길 바라며 그가 회복시간을 갖기를 기다렸다. 그후 약 1년 동안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완성된 책을 받을 수 있었으나 2013년 10월, 예산 문제로 인해 책의 배송은 또 다시 미루어졌다. 기다리던 후원자들은 항의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마침내 2014년 2월, 약 4개월의 무소식 후 드디어 마지막 업데이트가 올라왔다. 캠벨은 약 4000자가 넘는 긴 글과 영상메시지를 올렸는데, 영상 속에는 127개의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완성된 책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For every message I receiveabout this book I will burn another book (책에 대한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한권씩 태울 것이다)’ 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보이고, 작가는 계속해서 재고를 불속으로 던졌다. 영상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전체 후원자들 중 75퍼센트에게 배송을 완료했으나 계속 들어오는 항의 이메일을 읽다 보니 본인이 여태껏 피하려고 했던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더 이상 자본주의적인 활동을 하고싶지 않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If you have negative feelings about theactions I am taking, that is part of what I am protesting against. I amprotesting the values you use to determine how you feel about and interact withthe world. . . . I want to try to “give up my privilege” to see whathappens. It’s impossible for me to do this, since I carry my privilege aroundinside of me forever, but I can subvert it in ways I’ve never seen — likeforfeiting my ability to manufacture objects and sell them for profit to a“fanbase” . . . (Campbell,2014)
“내가 취하는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다면, 그 감정도 내가 항의하고자 하는 것의 일부분이다. 나는 당신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세상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영향을 끼치는 당신의 감정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대항하고자 한다. .. . 나는 나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결과를 볼 것이다. 내가 이미 가지고 태어난 특권을 버리기는 불가능하지만, 나는 이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최대한 이 특권을 없앨 수 있다 — 제품을 만들어 “팬베이스”에게 파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 . . . (캠벨, 2014)
캠벨의 글에서는 부족함 없이 유년시절을 보낸 것과 예술을 통해 수입을 창출해낼수 있는 것을 특권으로 표현하며, 이것은 돈으로 가치가 결정되기 쉬운 사회에 반항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작가의 사상과 반대된다. 그가 추구하는 허무주의는 진리, 의미, 권위 등이 존재하지 않고,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위해 후원금의 가치를 자신의 작품으로 환산하지 않는 행동을 통해 실천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연재블로그, 프로필을 모두 지워버림으로써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냈다.
이 결정을 통해 작가는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만화를 읽으며 공감했던 독자들 사이에 많은 소통이 오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가 만화를 통해 이야기했던 미술의 가치에 대한 무의미함처럼, 작가는 자신이 이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버리며 동시에 그의 작품의 소유권을 내려놓았다. 책을 받은 이들은 다른 책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이전에 개인소장용으로 저장했던 만화들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소수의 팬들은 <Pictures For Well-AdjustedAdults> (다 큰 어른들을 위한 그림)이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만들어 사라진 캠벨의 만화를 공유하고, 캠벨의 톤과 분위기에 맞춘 패러디만화를 그리며 사라져버린 만화와 캠벨이 말하고자 했던 ‘허무’에 대한 토론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고자료
Pictures For Sad Children https://www.goodreads.com/book/show/7079056-pictures-for-sad-children
Pictures for Well-Adjusted Adults https://picturesforwelladjustedadults.tumblr.com/
Pictures for Sad Children: The Rise and Fall of John Campbell, Morgan Thistlethwaite https://potato-revolution.com/2017/06/13/pictures-for-sad-children-the-rise-and-fall-of-john-campbell/
Comic Artist Raises $50K For Books, Then Just Burns, Colin Daileda Them https://mashable.com/2014/03/06/kickstarter-comic-burns-books/#bwCpgkWxVPq3
John Campbell’s Sad Pictures for Children Kickstarter Drama, Leo Reyna https://www.nerdspan.com/john-campbells-sad-pictures-for-children-kickstarter-drama/
Pictures For Sad Children, Odanoroc http://odanoroc.blogspot.com/2010/11/pictures-for-sad-children.html
이미지
<Paul who is a ghost(유령인 폴)> http://odanoroc.blogspot.com/2010/11/pictures-for-sad-children.html
<A Brief History of Art(미술의 간결한 역사)> https://i0.wp.com/i.imgur.com/BHqMx6r.jpg
<IT’S OVER(끝났어)>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73258510/sad-pictures-for-children/posts/759318
글 아트렉처 에디터_조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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