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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y 28. 2020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로댕<칼레의 시민>

https://artlecture.com/article/1620


노블레스 오블리쥐;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     


<칼레의 시민들> 오귀스트 로댕, 1884~1889년, 청동



칼레시는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영국과 가장 가까이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은 지역이다. 14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인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 의하면 1347년 8월 3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시가 오랜 저항 끝에 항복한 날이었다. 영국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로 향하는 모든 보급로를 차단해 버린다. 오랫동안 굶주린 칼레시는 기나긴 투쟁 끝에 결국 항복하고 만다. 이에 의기양양해진 에드워드 3세는 철수의 조건으로 칼레를 대표하는 시민 6명을 선발해 교수형에 쓰일 밧줄로 몸을 묶고 성문 열쇠를 들고 나오라고 요구한다.


깊이 분노한 칼레 시민들은 시민 회의를 열고….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깨고 가장 부유한 지도자인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앞장섰다. 이를 지켜본 시민 중 5명도 그와 함께하겠노라며 용기를 낸다.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의 대열에 동참한 6명의 당당하고 결의에 찬 모습에 놀란다. 이것을 지켜본 왕비 역시 그들의 용기에 감동하여 자비를 베풀 것을 왕에게 간청한다. 결국, 6명의 시민은 목숨을 구하게 된다.      


로댕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당시, 칼레시는 유스타슈 생 피에르를 영웅시하는 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연대기를 읽은 로댕의 생각은 달랐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닌 전체 시민이 협동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구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고심 끝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로댕은 칼레의 시민에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쥐를 본 것은 아닐까?  









정중앙에 위치하여 무리를 이끄는 군상이 유스타슈 생 피에르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의 표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육중한 책임감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 같다.  







그의 왼편으로 성문 열쇠를 들고 있는 시민은 장 데르이다. 자기 삶의 터전을 적에게 내주어야 하는 심정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감당하려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4명의 군상은 두 사람처럼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하다. 억지로 누르고 있는 감정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찌할 바를 모르고 표출되고 있다.     







가장 오른편에 서 있는 두 군상은 피에르 드 비상과 자크 드 비상 형제이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피에르 드 비상은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뒤틀며 뒤따라오는 동생을 재촉한다. 일그러진 그의 표정과 역동적인 제스처는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옆으로 장 드 핀네와 앙드리외 당드레이다. 한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넋이 나간 모습으로, 또 다른 이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파리 로댕갤러리 정원에 놓여있는 작품 앞에 서면 숭고한 군상들의 눈빛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심지어 생을 마감하기 직전 힘줄이 툭툭 불거진 그들의 팔과 다리를 만질 수도 있을 듯하다. 군상들은 우리와 같은 지면을 밟고 서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듯 매우 사실적인 모습이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군상의 모습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작은 손해를 넘어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야 할 때가 있다. 또한,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나는 과연 여섯 군상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만 손해 볼세라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며 사는 게 인간 사이다. 소위 권력자라고 칭하는 자들의 비리나 부정은 이러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일부 권력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무게나 책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것을 이용하여 취할 수 있는 이득만을 목표로 상처 받거나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고 타인을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원래 갖고 있었던 권리란 없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생명의 본질은 안정감이라고 한다. 안정감은 균형과 공존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균형과 공존 없이는 서로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깊이 있는 신뢰가 쌓일 수 없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같은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서로 연대하고 포용할 수 있는 문화.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회. 대다수가 바라는 사회일 것이다.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나누거나 포기하기란 매우 힘든 일임을 잘 안다. 하지만 칼레의 시민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과 희생정신, 더불어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훨씬 더 건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글 아트렉처 에디터_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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