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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08. 2018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을 찾아서

황금비黃金比의 오류



Venus de Milo),Between 130 and 100 BC by Alexandros of Antioch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 수학을 배운 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피타고라스의 정의’의 그 피타고라스. 그는 수학을 사랑한 철학자로 유명한데, 물리적 우주 속 사물들이 '수(數)’로 이루어져 있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비(黃金比) 역시 피타고라스 발견 중 하나이다.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던 이 비율은 고대 파르테논 신전에서부터 밀로의 비너스, 다빈치의 모나리자까지 미적 우수성을 지닌 미술품에 두루 쓰임을 보였다. 당시에 황금비라는 것이 예술가들에겐 이상적 미(美)에 가까워지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 황금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밀로의 비너스 상만 해도 그렇다. 비너스 상의 황금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점은 정해져 있다. 그 지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완벽하고 영원할 것 같아 보이던 이상적 미는 나약하게 무너진다. 황금 비율이라는 것은 결국 찰나적인 것이다. 이상적으로 완벽한 미의 지점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오류는, 다시말해 우리에게 시간을 들여 그것에 가장 가까운 지점을 찾아나갈 일종의 미션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의 가치


얼마 전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 아트북페어 (UNLIMITED EDITION - SEOUL ART BOOK FAIR)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21,500명의 관람객들은 219팀의 작가/제작자를 만나는 경험을 통해 아트북과 독립출판을 더욱 가깝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10번의 생일을 맞는 동안 그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일정 부분에서는 그들의 의견에 동감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페어에 이렇게나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페어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작가/제작자와 관람자가 '직접 판매 부스'를 통해 만나고,프로그램과 특집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그해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조망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서 쉽게 대형 서점들을 찾을 수 있고, 몇 초만에 인터넷에 접속해 주문한 신간을 바로 다음날 받아서 읽어볼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기술은 더욱 발전할 테고 우리는 배워야 할 지식과 언어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책이 종이라는 물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전자책과 종이책은 구분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먼 미래에는 책이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출판물들은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하고, 시간의 쓸모를 나누어 고안한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한편으론 조금 아쉬운 일이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했는지, 내가 접하고 있는 디자인이 누구의 생각에서 뻗어 나갔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던 것들이 불필요함과 비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잘려 나가는 것이 속상하다. 앞으로 10년 뒤에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행사에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아니 애초에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세상에 이런 행사가 존재할 수는 있을까? 이것은 비단 출판에만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생각할 때에도 그렇다. 모두가 디자이너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술을 대해야 하는 걸까.




아름다움이란 결국 함께 만들어가는 것


모든 기술과 발전을 부정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본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에서 이야기 했듯,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을 창작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술과 디자인이 거의 무한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예술은 감성적 인식의 완성형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애초에 완성형이라는 말은 오늘의 예술과 디자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분야라면 더더욱, 함께 만들어가는 진행형으로 되는 것이 이상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름다움이 쉽게 흐트러지는 황금비처럼, 예술의 아름다운 지점 역시 그렇다. 그래서 더욱이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지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하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그럼 의미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는 본인의 창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고 관객은 자발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창작물의 황금비를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술과 디자인을 대하는 조금은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



약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시각문화 라운드 포럼 (Editor’s Talk - 독립출판과 상업 출판 사이의 예술잡지)이라는 이름 아래 보스토크(Vostok)오큘로(Okulo)와 같은 잡지의 출판인들이 모인 행사를 진행한 적 있다. 약 두 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 ‘잡지 성공에 대한 각자의 기준’을 묻는 관객의 질문에 그들은 주저 없이 ‘독자들끼리 잡지를 공유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생산해내는 생태계의 유지.’라고 답했다. 출판이라는 분야를 넘어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각자의 황금비를 찾아나가는 방식에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저 문장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향한 가장 멋진 태도이다.






아트렉처 에디터_윤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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