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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ul 25. 2020

빛의 안개 속으로

'yellowbluepink' by Ann Veronica Janssen

https://artlecture.com/article/1774

 Ann VeronicaJanssens, 2015yellowbluepink, Ann VeronicaJanssens, 2015



분홍, 노랑, 파랑색의 빛은 전시장의 구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처럼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천천히, 슬로우모션 비디오처럼 걸어다니며 두리번거린다. 약간의 습한 냄새가 나는 이 공간 속에서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깔은 천장과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입구부터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꿈에 취한 것처럼 이방향 저방향을 느릿느릿하게 헤맨다.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의 형태는 안개 속으로 사라질 듯 흐리고, 자신의 손도 뻗으면 보일듯 말듯 하다. 분명히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시각적으로는 농도가 짙기에 마치 물속 같기도 하다. 노랑 빛속에서 분홍빛을 향해 가다보면 노랑과 가까운 주홍빛에서 분홍에 가까운 연어색의 그라데이션을 통과하고, 또 다시 걸어가다 보면 짙어지던 분홍을 지나 자주빛, 보라빛을 지나 파랑에 도달한다. 이 수채화 같은 빛 속에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한참을 혼란속에서 헤매던 관람객은 무아지경에 빠지다 다시금 천천히 빛, 그림자, 사람, 사물이 분명하게 보이게 될 출구를 향해 나간다.



2015년, 런던의 웰컴 컬렉션 박물관에서 보여진 이 작품은 설치조각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 (AnnVeronica Janssens)의 <옐로블루핑크 (yellowbluepink)>이다. 웰컴 컬렉션에서는 <마음의 상태 (Stateof Mind)>전시 시리즈의 첫출발로 얀센스의 안개 작품을 보여주었다. 과학과 의학, 예술의 공존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의 삶과 건강에 대한 크고 작은 질문을 연구하는 웰컴 컬렉션 박물관은 2015년에서 2016년까지 인간의 의식에 대한 예술가, 심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신경학자들의 생각과 시각을 모았다. 몽유병, 마취상태, 불완전한 기억 등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탐험하며, 한 사람의 의식이 방해받거나 훼손당할때 어떠한 상태가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이 전시에서 작가는 현실의 디테일을 어지럽힌 전시관을 준비하였다. 액체 안료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빛의 굴절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바꾼 이 작품에서 작가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며 몽롱한 무의식 상태를 표현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얀센스는 부모님과 콩고의 킨샤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자연속에서 뛰놀던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랐다고 한다. 건축가인 아버지와 갤러리를 운영한 어머니는 어린 얀센스에게 빈 공간 속 여백과 비치는 빛과 그림자, 작품이 가지는 존재감을 직접 체험할수 있게 해주었다.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속에서 얀센스는 숲과 들에서 해돋이와 해넘이 사이 하늘의 그라데이션을 매일 보고, 움직이는 물살에 비치는 햇빛을 몇시간이고 관찰하고 작은 극장을 만들거나 도자기를 구웠다. 후에 미국 서부 작가들이 보여준 건축, 빛, 시간 속 색과 조용한 움직임에 대한 작품들을 보며 연결고리를 느꼈고, 이것은 작가의 작업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작가는 빛을 중심으로 기체, 액체, 고체 등 다양한 형태의 물질과 그것들이 만났을때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각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탐구하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형태의 유연성을 연구하는 얀센스의 작업 패턴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통해 단순한 물질의 배치에서 요소를 제거하고 또 제거하며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는 물질의 순수함을 추구한다. 안개작업은 공기 속에서 작은 입자들에 색을 입혀 존재를 눈에 드러나게 하고, 염색된 입자들이 공간의 벽과 천장 등 경계를 없애며 마치 연기만 있는 듯한 현상을 일으킨다. 관람객은 안개 속에서 빛깔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시각과 눈 앞에 보이는 색을 느끼며 공간의 틀에서 벗어나는 듯한 상상을 할수 있다. 작가는 지금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보여지는 수만가지의 정보, 물건, 이념, 시간의 틀을 없애고 없애며 어린시절 노을을 한참 바라보던 때처럼 관람객들이 빛깔에 몸을 담고 숨을 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yellowbluepink, Ann VeronicaJanssens, 2015



이미지

<yellowbluepink> Ann Veronica Janssens, 2015 (https://images.prismic.io/wellcomecollection/4c65b57af26758e0d84c37838a19b8b15ca26e0d_c0124383.jpg?auto=compress%2Cformat&rect=&w=2048&h=)



참고자료

Ann Veronica Janssens Interview: To Walk Into a Painting https://youtube.com/watch?v=B5tvvN5-CCA

Ann Veronica Janssens Interview: Passion for Light https://youtube.com/watch?v=oFu6XQlFX2E

Ann Veronica Janssens: yellowpinkblue https://wellcomecollection.org/exhibitions/XFximBAAAPkAioWz

Into the Mist: Ann Veronica Janssens fills the Wellcome Collection with Thick, Multicoloured fog (https://www.wallpaper.com/art/into-the-mist-ann-veronica-janssens-fills-the-wellcome-collection-with-a-thick-multicoloured-fog)




글 아트렉처 에디터_조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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