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tlecture.com/article/1751
"순간의 예술을 만든 위대한 음악가를 우리가 영원히 기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6일 타계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멜로디들을 떠올리다 보니 불쑥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음악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 중 하나는
미술 같은 장르의 예술과 달리
동시적으로 실현되지만 연속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또는 CD를, 음원을 플레이하는 동안에만 존재하고,
그 존재를 인지하는 바로 그 순간 소멸됩니다.
그나마 녹음이라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어느 순간에 감동을 주었던
바로 그 동일한 소리(연주)를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렇듯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것의 특징이,
즉, '음'이라는 소리와 그 음이 지속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표상'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지'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 속에 깊이 작용을 해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물리적인 순간들을 '영원'이라는 개념으로 체득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들이 최초로
존재하기 시작한 시간들과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많은 과정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 작곡을 공부한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등장한 아방가르드적인 현대음악에 관심이 무척 높았고, 실제로 아방가르드 앙상블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옵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영화 음악을 많들었던 많은 음악가들이
낭만주의 음악사조에서 연결되어 나온 전통적인 음악 작법을 사용했던 것에 반해,
모리코네는 당시 현대음악에서 실험적으로 사용되었던 새로운 기법들을
그의 영화 음악에까지 반영하고 있는데,
먼저 60년대에 작곡된 대표곡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h1PfrmCGFnk&feature=emb_title
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영화음악은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다양한 전자악기 컴퓨터 등을 이용해서 작업을 많이 하지만, 신디사이저라는 제품이 실용화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에
접어 들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니,
그 이전에는 오케스트라 연주 외에는
사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죠.
현재의 관객들 귀에는 마치 다양한 효과음이
쓰인 것 같이 들리는
이 <석양에 돌아오다>의 주제곡 역시
그렇기에 당연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되었고, 우리가 효과음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 소리들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모리코네가 실험한 독특한 악기 및 주법들을 가지고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오케스트라가 공연하는
<석양에 돌아오다> 메인 테마 연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nuOArEfqGo&feature=emb_title
다양하고 독특한 악기들이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성악가의 목소리와
합창단의 보컬 부분은,
만약 그 부분만 떼어내서 본다면, 60년대 전후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 등장하는 아방가르드한 현대음악의 여러 면모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아방가르드 앙상블인 <Nuova Consonanza>라는 그룹에 일원이었던 현대음악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모습이 상상이 되실까요?
아래의 동영상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죠.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인 루이지 노노 등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재즈의 리듬, 시리얼리즘(12음 기법의 확장된 형태의 일종) 그리고 콘크리트 뮤직 등의 다양한 실험적 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EiIT7K4A6rU&feature=emb_title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 그룹에서
트럼펫과 플루트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 음악 그룹은 70년대 후반까지도
꽤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단지 소리만을 듣던 것과 달리 우리가 효과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부분들을
실제로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연주해 내고 있는지 보는 것으로
모리코네가 가진 뛰어난 음악적 재능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는 <석양에 돌아오다>의 공연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메인테마가 끝나고 약 2:40부터 시작되는
두번째 곡인 "The Ecstasy of Gold"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60년대 작품 중에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곡입니다.
피아노의 반주 위로 흐르는 잉글리시 혼의
애잔한 멜로디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영화 <미션>에 등장하는
"가브리엘의 테마"에서의 오보에 소리를 연상케도 하는데요, (잉글리시 혼은 큰 범주로 오보에 계열에 속하는 악기입니다)
사실 대부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필자를 포함해서) 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을 즐겨보던 세대는 아닐 듯 싶은데,
그렇기 때문에 모리코네의 이 명곡을
<석양에 돌아오다>에 삽입된
영화 음악으로가 아니라
다른 작품으로 알고 계시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Metallica의 공연 오프닝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메탈리카의 광팬이시라면 메탈리카 오프닝송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또 심슨 등 다양한 TV, 영화 등에도 재 사용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rvb3i1q-E&feature=emb_title
60년대에 작곡된 모리코네의 대표곡들을 들어보셨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마카로니-웨스턴 류의 영화는 한국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에게 엔니오 모리코네의 명성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영화의 OST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이죠.
이 OST에는, 어느 곡 하나를 특별히 손들어 주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음악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시작 부분의 팬플룻 음색이 모리코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childhood memories"와
https://www.youtube.com/watch?v=7VJyYF4RDNA&feature=emb_title
스페인어로 작곡된 인기가요인 "Amapola"의 멜로디를 차용한
"데보라의 테마-아마폴라"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04LIqsH2Os&feature=emb_title
어른이 된 누들스의 시선에서 시작되어, 어린 누들스가 첫사랑 데보라의 발레 연습 장면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이 음악은, 우리가 인생에서 잃어버린 순간들에 대한 회한인
"노스탤지어 - 향수"의 감성을 정확하게 음악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워낙 인기곡이다 보니, 스페인 출신의 테너인 호세 카레라스와 도밍고도 즐겨 부르는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8vXJ3_B6pU&feature=emb_title
이렇게 비교해서 들어보니 기존의 아마폴라와 모리코네가 새로이 작곡한 아마폴라 사이에 결이 많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렇듯 기존의 곡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완전히 새로운 변모 시켜 모리코네가 새로운 음악을
작곡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의 대표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The Mission>에서는 "넬라 판타지아"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의 오보에"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 위로 잔잔하게 흐르는 오보에 솔로 멜로디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용기, 그리고 그들이 겪는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랑과 희생의 모습 등을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WJhax7Jmxs&feature=emb_title
이 곡을 듣다 보면 엉뚱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요, 영화의 배경은 18세기 남아메리카입니다.
종교적인 사명감으로 이 오지에 들어온
예수교 신부에게 왜 하필이면 가장 비싼
목관악기 중 하나인 오보에가 있을까인데요,
만약 덜 고급스러운 목관악기를 사용했다면 영화에서 느꼈던 감성을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일지..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는지 아니면 클라리넷도 충분히 가능한데 억울했던지
이 곡을 클라리넷 버전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장면이 마침 눈에 들어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mHsNVu8klc&feature=emb_title
클라리넷의 소리에서 훨씬 목관악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풍겨옵니다. Reed 갯수의 차이 때문인지,
오보에는 좀더 정제되고 분명한 튠을 들려주며, 클라리넷의 소리에는 목가적인 몽환이
담겨 있습니다.
세련된 느낌은 좀 덜하지만, 오히려 예수회 신부의 모습과는 클라리넷이 더 잘 어울리는 음색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셨나요?
<The mission>의 다음 해에, 당시로는 최고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했던 드 팔마 감독의 히트작 <Untouchable>이 등장하고 그리고 1년 후 <Cinema Paradiso>가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Qh4PeB8PE&feature=emb_title
등장하는 모든 곡들이 다 마음에 드는 그래서 어느 곡 하나를 딱 고른다는게 불가능한 ost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Malena>를 거쳐
https://www.youtube.com/watch?v=W-YD2Y8ojYE&feature=emb_title
그에게 유일하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 Hateful 8>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7EbmNz0GC2A&feature=emb_title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렇게 많은 양의 뛰어난 음악을 듣다 보면, 그의 음악세계를 통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많은 ost 중에 훨씬 두각을 나타내는 음악들은 대부분 인생의 여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영화의 ost입니다.
똘똘했던 소년, 그래서 주위 친구들의 리더였던 그는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큰 죄를 저지르고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있다 나오지만 그가 없던 시간 동안 변한 친구들과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는 주인공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삶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삶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탕아가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고자 하면서 그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선과 악, 인내와 행동, 평화와 폭력 등에 대한 갈등에 부딪히는 <더 미션>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한 누군가의 사랑이 있건만, 정작 자신은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기 힘들어 했던 그리고 결국 돌아와 거울 앞에 서는 <시네마 파라디소>에서,
시대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과 그녀가 속한 사회 구조의 부조리 때문에 정말로 아름다워야 할 한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더 역설적으로 아프게 다가오는 <말레나> 까지.
과연 모리코네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영화가 가지는 내러티브와 감정선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었을 까요?
삶이 가지고 있는 고뇌와 불행의 요소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비극의 종류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불행을 모사하는 것은 비극에만 본질적이다"
그리고 그는 이 불행의 종류를 다음의 3가지로 분류하는데요
1. 불행은 어느 인물의 이례적인 악의에서 생겨난다 - 이아고, 샤일록 등
2. 맹목적인 운명, 즉 우연과 오류에 의해 생겨난다 - 오이디푸스 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
3. 인물들 상호 간의 관계를 통해 초래되며,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과오도 우연도 또 극악무도한 성격도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행위와 성격으로 인해 쉽게 저절로 거의 본질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행복과 삶을 파괴하고 우리는 언제라도 그 피해자가 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삶으로 다가올수록 3번째 분류에 속하는, 즉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이런 범주의 소재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비극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비극으로서의 극적인 수단과 원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훨씬 더 다각적이고 대칭적인 서사구조와 캐릭터들이 필요하게 되죠.
다시 말해 비극이 운문을 버리고 산문으로 넘어오면서 불행을 창조하기 위한 더 복잡한 논리적 구조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한 상태에서 다시 모리코네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위에서 '인생의 여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삶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극적인 모습에 대한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죠.
그래서 '인생의 여정 (다시 말해 인생이라는 긴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를 편하게 둘러보는 것 같은 잠시 일상을 벗어난 휴가지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많은 관계에 의해 수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행들을
다양한 서사를 통해 보여주어야 하는
현대적인 예술에서 이 불행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감정들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모리코네의 많은 영화 ost 중에서도
유독 '인생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들에서
그의 특징이 훨씬 더 잘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귀에 편하고
멜랑콜리하게 들린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음악을 쉽고 편하다고만 여겼던 선입견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에 사용된 음악이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초기작
<황야의 무법자 - A fistful of dollars>의
관현악 연주 장면을 보시면서,
이 아방가르드 작곡가가 싸구려 영화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던 대중영화의 음악 속에
얼마나 많이 난해했던 현대 음악의 요소
(휫파람, 전자기타, 다양한 타악기, 소리치듯 부르는 합창 등)를 사용하고 있고,
어떻게 그 요소들이 쉽고 귀에 착착 감기는 대중음악으로 변모되는지 찾아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4niv522mbtM&feature=emb_title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고흐를 소재삼아 작업한 결과물의 느낌도 어쩌면 위의 음악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가시는 길에 자신의 부고를 직접 작성해 남기신 엔리오 모리코네의 마지막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 Maria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나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훈수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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