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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돌리지 마,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
무언가에 눈길이 갈 땐 그 사물이나 행동, 사람의 본질 등이 내 마음에 와 닿아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상태나 상황이 바뀌어 감에도 처음 그것을 마주했을 때의 그 기분과 감정에 얽매이기에 눈을 돌리지 못했고 진실한 본연의 모습을 응시했다. 진실한 것은 주변의 상황이 바뀌던, 외부의 압박을 받던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진실은 그 누구에게나 숭고한 것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회화의 새로운 획을 그은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가 응시하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가 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작가미상 (Werk Ohne Autor)>속 주인공 쿠르트 바르너트(톰 쉴링)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사랑 정치 예술 이 모든 것이 흐릿해진 세상에서 아름답고 선명한 진실을 그린다.
쿠르트의 모델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감독의 구애로 편지를 주고받고 삶에 대한 인터뷰를 나누며 영화 기획에 참여했지만, 리히터는 본인의 작품 세계와 인생이 있는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리히터라는 이름 대신 쿠르트가 그의 이야기를 대변했지만 3시간이 넘는 긴 영화는 리히터의 인생을 너무나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그림들이 마음에 들어”
혼란스럽던 2차 세계대전 전후 유년 시절 쿠르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인 이모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가 오프닝부터 등장한다. 그녀는 독일 정부가 퇴폐 미술(Entartete Kunst)로 규정한 미술 전시장에 쿠르트를 데려간다. 그림을 설명하던 나치 당원은 경멸적인 어조로 칸딘스키 등의 표현주의 예술품들을 혹평하여 쿠르트는 실망하지만, 그의 이모 엘리자베스는 “나는 이 그림들이 마음에 들어”라고 속삭인다.
곳곳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마치 독일의 미술관에서 나도 함께 퇴폐 미술을 외쳐야 한다고 말하는 듯이 옥죄어온다. 사방으로 가득 찬 예술작품들, 칸딘스키나 피카소의 작품을 퇴폐 미술로 규정한 그 당시의 예술계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리 낯설다.
“눈길 돌리지 마, 쿠르트.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
“눈길 돌리지 마, 쿠르트.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라고 말해줬던 쿠르트의 이모는 정신적 질병을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운의 삶을 맞이한다. 당시 신체적 결함이 있거나 조현병과도 같은 정신적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나치 우생학 실험의 목적으로 끌고 가 임신이 불가능하도록 불임 수술을 할 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누구보다 이모를 잘 따랐던 쿠르트는 ‘눈길 돌리지 마,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라는 말을 어른이 되어서도 되새기게 된다.
가족들은 엘리자베스가 병원에 끌려가는 모습을 쿠르트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모의 말대로 이 모습까지도 쿠르트는 끝까지 바라본다.
영화에선 이 장면 말고도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이 시기 독일의 모습과 전쟁이 끝난 이후 나치당에 입당한 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독일의 모습을 잔잔한 영상미와 그에 맞는 배경음악으로 감상자를 끊임없이 진실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난 예술가가 안 되도 돼요, 뭐든 해도 돼요. 옳은 걸 찾을 거예요, 진실한 것을요. 이 순간을 간직해야 해요. 어떻게든 간직해야 해요.”
전쟁의 폐허 속에 온 나라가 나치즘과 파시즘의 광기에 휩싸였고, 사회주의 이념의 동독에서 미술대학 학생이 된 그는 전쟁은 끝났으나 예술의 자율성은 사라진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풍의 그림만을 그린다. 우연히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엘리자베스 시반트(줄여서 엘리, 폴라 비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예술적 갈망이 깊어지면서 세상이 숨긴 진실과 가까워진다. 나치당 입당에 반대하던 쿠르트의 아버지는 이후 나치당 입당이 큰 ‘자산’이 될 거라는 어머니의 말에 입당했지만 (어릴 적 쿠르트가 나치당 입당이 자산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자살‘이라고 잘못 발음하면서) 예견이라도 한 듯 아버지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동독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의 딸 엘리와 쿠르트는 신분의 불균형에도 뜨겁게 사랑했고 나치의 우생학 정책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실천했던 엘리의 아버지는 쿠르트의 이모를 죽음으로 내몰았었고 이제 쿠르트도 그에 의해 진실의 굴레로 이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 강자의 편에 서서 생존의 길을 찾아내는 기회주의자였던 그는 순혈주의를 중시하기에 딸의 낙태까지 감행하게 된다.
“태도에 공을 들이세요. 손길에 공을 들이세요. 그러면 올바른 예술이 흘러나옵니다. ‘나, 나, 나’의 태도는 불행으로 이끕니다.”라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동독에서 쿠르트는 끊임없이 갈망했고 진실한 옳은 것을 찾기 위해, 그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에 엘리와 서독으로 넘어간다.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아.”
“외부의 지도 없이 자기의 능력을 개발한다면, 스스로 자유로워짐으로써 너희는 세상을 구한다.”
예술에서는 오직 작가 개인의 자유만이 잣대가 될 뿐 예술만이 자유의 감각을 돌려줄 수 있다고 믿으며 학생들이 어떠한 외부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안토니우스 판 페르텐 교수(올리버 마수치)는 돕는다. 그렇게 쿠르트는 ‘나’를 숨기는 예술에서 드디어 벗어나 ‘나’를 들어내는 예술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서독의 자본주의,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현대미술을 접한 쿠르트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다른 작품을 모방하기도,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언제나 부족함을 느꼈던 그에게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몸으로 느끼게 된 세계, 피부로 이해한 지방과 펠트만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페르텐 교수의 굳은 신념과 더불어 “자네는 누구지? 자네는 무엇이지?”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내던지며 추상표현주의에 젖어있던 쿠르트를 일깨우게 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이 교수는 실제로 전위 예술 작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안토니우스 판 페르텐 교수가 모자를 벗지 않는 이유, 지방과 펠트를 작품에 사용하는 일화, 강의 시간에 포스터를 불태우는 행위 등은 실제 요셉 보이스의 일화에서 따왔다. 다만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영향을 받은 스승은 ‘칼 오토 괴츠’라고 한다. 리히터가 뒤셀도르프 대학에 입학했던 당시 요셉 보이스가 조각과 교수로 있어 간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고, 미술사에서 상징성이 큰 인물이다 보니 이런 영화적인 변주를 둔 것 같다고 김찬용 전시해설가는 덧붙였다.
“진실한 것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제가 지금 숫자 여섯 개를 말하면 헛소리 같고 의미 없겠지만 그 숫자가 로또 당첨 번호라면 의미가 생기죠. 일관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울 지경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진실을 원합니다.”
쿠르트는 나치당에서 유대인 안락사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의학 실장이 나치 전범으로 체포되는 순간을 신문에서 오려 캔버스에 재현했다. 다음날엔 사랑했던 이모와 자신의 사진을 옮기고 그 위에는 우연한 순간에 사진 엘리의 아버지, 이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그를 그려 넣게 된다. 그 후 다시 의학 실장을 그려 넣으면서 ‘실재하고 한결같고 일관된’ 현실을 표현한다. 사진을 모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두꺼운 붓으로 붓질을 더해 뿌연 사진처럼 만드는 포토 페인팅을 고안해내며 진실한 아름다움과 마주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영화를 위해서 리히터와 오랜 시간 작업한 조수를 섭외해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영화에서 쿠르트와 엘리자베스 이모를 그린 그림은 리히터의 작품 ‘마리안느 이모’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본래 ‘어머니와 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의 개인사가 밝혀지지 않길 원했던 그는 영화에서처럼 아마추어 사진이라고 말하였기에 그의 작품들은 ‘작가미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후에 리히터가 본인 작품들의 비하인드를 공개해 지금은 ‘마리안느 이모’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것 이외에도 쿠르트는 영화에서 2차 세계대전의 사진이나 의학 실장의 사진과 같은 것들을 그려낸다. 어렸을 적 겼었던, 마주했던 고통과 두려움을 직접 마주하면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며 이모의 말을 담아낸 것이다. 어릴 적 이모가 정신병원으로 끌려갈 때 손으로 가렸다가 뗀 자리에 남은 흐릿한 잔상을 마주하면서 일관되고 가치 있고 아름다움을 내비친다.
로또 번호와 같이 무작위로 뽑힌 숫자는 의미를 가지게 되고 아름다울 지경에 이른다. 사진을 포함한 예술과 우리의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함에 담긴 ‘진실’은 어느 순간 ‘진심’이 담기면서 소위 말하는 ‘진짜’가 된다. ‘이게 바로 진짜 내 삶이야’라고 말하는 것에는 내 삶이 진짜라고 생각하든 아니든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이고 그 진심 어린 삶에는 내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으로(진실-진심-진짜-진심-진실) 순환한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검은 벽을 걷어내서 무작위로 뽑힌 숫자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것은 순환되고, 가치 있게 되고, 필연이라고 느끼게 된다.
영화가 모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을 대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영화대로 진실 되게, 리히터의 작품과 삶은 또 그 그것에 맞게 진실대로 바라보길 추천한다. 돌아보지 않고 마주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를 문득 생각해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행위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것들이 내가 지어낸 것은 아닌지, 막연한 허상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쿠르트와 요셉 보이스의 페르텐 교수의 방식대로 마주해 봤으면 한다.
*영화 이외의 작품 이야기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잘 정리된 글이 있어 링크를 첨부해 둡니다.
참고
1.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571390&memberNo=35413298&vType=VERTICAL
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40/0000042126?sid=004
사진 출처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9794&imageNid=6684690
글 아트렉처 에디터_uumin_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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