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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28. 2018

미술 그리고 경험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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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유명한 그림도 많고 잘 그린 그림도 많다. 물론 비싼 그림도 많겠지. 하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친구에게 인상적인 그림이 나에게는 한낱 장식에 불과할 수 있으며, 모두가 좋아하고 유명한 그림이라고 해서 나의 마음에 들 수 있을리 만무하다.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조차 모호한 지금, 나에게 말을 거는 작품은 무엇일까?


오늘은 사랑, 일상에 이어, 마지막으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경험은 기억할 수 있는 사건뿐만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떠오르는, 어렴풋이 느낌으로만 전해지는 경험까지 포함한다. 우리가 모든 기억을 꺼낼 수 없는 까닭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혼란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고 또 진솔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당신, 우리의 이야기다.


여전히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아주 작은 부분이며 개인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이 시선이 누군가의 감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Gerrit Dou, Sleeping Dog, 1650, Oil on panel



1. 어쩐지 눈이 가는 건

‘검은 개’가 그려진 작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개가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빨이 날카로운 모습이라면, 난 그 그림을 멋지다고 이야기하고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눈이 멍청하고 이빨이 부러진 개라면, 나는 그 그림을 꽤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그리곤 그 개의 사연에 대해 생각하며 콧등에 난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너도 편히 살지는 못했구나’ 어쩌면 안쓰러운 마음에 금액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려올지도 모르지. 그림의 제목을 생각해 본다면, ‘검은 개’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아픔’이라던지 더 나아가 ‘미안해’처럼 의미를 담은 제목을 지을 것이다. 어떤 개 한 마리를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Damien Hirst, For the Love of God, 2007 (약 940억)



2. 근데 나는 말야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감각기관이나 언어와 같이 보편적인 방식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은 매우 개인적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신만의 ‘경험’으로 삶을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에게는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의 취향은 고상해야 할 이유도, 어려운 단어로 모든 것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그림을 보는 기준이 ‘얼마나 유명한지’나 ‘가격’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많은 기준이 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2016, TBS



3. 우린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어

무릇 우리가 살필 수 있는 누군가의 삶은 대체로 중심에서 먼 가장자리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중심에 가까운 깊은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적잖이 당황한다. 허나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누구 하나가 속내를 드러내고 나면 이야기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이 후련하고 상대와 친해진 느낌이 들곤 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색채와 선과 모양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림은 보편적이지 못한 언어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그것이 작가의 이야기와 맞아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단지 내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까워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면 그 때부터 그림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Oil on canvas



4. 몇 가지면 충분해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특정한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예를 들어, 아늑한 산장같은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과 2시간 동안 신나게 떠들며 얼그레이 스콘을 먹은 기억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아마도 친구, 산장, 얼그레이 스콘과 같이 몇 가지의 특징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작은 것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가 쌓이기도 한다. 커피 잔 하나를 보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 다른 날에는 여유로운 아침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우리는 작품을 볼 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단지 몇 가지 특징만으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상상에는 길이도 면적도 없다. 우리가 작품 밖으로 나가 무한한 상상의 영역에서 작품을 바라본다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색과 선과 면은 아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우리, 경계에 머무르지 말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아트렉처 에디터_공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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