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을 중심으로
[연작] 길고양이(2010 ~ )
“뒤늦게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것은 아직도 '길고양이'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고, 그것을 사진으로나마 해소하기 위한 측면이 큽니다. '길고양이' 사진을 한두해 담고 끝날 문제는 아닙니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사진은 찍으려고 합니다.”([연작] 길고양이, 작업노트 중에서)
길거리에 나서면 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길고양이’이다. 걸어 다니면서도 길고양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탐색전을 벌인다. 특히 주차된 자동차 밑 공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길고양이는 자동차 밑을 동굴처럼 안전한 곳으로 여겨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2010년부터 길고양이 사진 작업 시작
2010년부터 길고양이 사진 작업을 시작해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10년 말, 하늘로 간 길고양이를 추모하는 ‘메멘토 모리’의 의미로써 11장 사진을 진한 흑백으로 공개했다. 2011년도 마찬가지로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서 일정 기간 공개하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는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바 매년 틈틈이 연재하고 있다.
사실 동물원 사진을 찍기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란 동물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길고양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동물원을 계속 찾는 동안 마음에 쏙 들어온 동물이 있었으니, 검정과 진한 노랑이 알록달록하게 버무려진 점박이 무늬에 고독한 눈빛이 멋져 보였던 동물인 표범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서 표범과 꼭 닮은 녀석을 보게 됐다. 크기는 표범에 비해 엄청나게 작았으나, 얼굴 생김새는 그야말로 똑 빼다 박았다. 길고양이였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었으나 둘의 처치는 반대였다. 표범은 동물원에 갇혀 자유를 속박당한 대신 먹이를 무한으로 공급받고, 아프면 간호를 받고, 우리 청소까지 받는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자유를 얻은 대신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살기 위해 쓰레기봉투 더미에서 먹을 것을 뒤적거려야 하는 길고양이를 보며 생긴 안타까움과 절망이 길고양이 사진 작업의 계기가 됐다.
# 길고양이는 현대판 장발장이다
길고양이를 ‘도심 속의 하이에나’라고 칭할 수도 있지만 내 판단으로는 ‘현대판 장발장’이 따로 없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생을 마감하는 길고양이는 태생적으로 배고픔의 고통과 슬픔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 하루하루가 배고픔과의 전쟁이다. 길고양이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이들도 상당수 되지만, 길고양이는 사람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약자에 불과하다. 길고양이의 시야에서 세상을 본 일이 있는가? 길고양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선 바닥에 정말 기다시피 엎드려야 한다. 고양이의 시야에서 바라본 세상은 험난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너무나 거대해 보이고 자동차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집고양이의 평균수명은 10년에서 15년인데 반해, 길고양이는 평균수명은 고작 3년이다. 3년은 어디까지나 ‘평균’이다. 더 오래 사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더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길고양이들이 허다하다. 어린 길고양이의 경우, 삼분의 일이 태어난 지 3개월도 안되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길고양이가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안전하다고 믿는 자동차 밑에 있다가 깔려 죽기도 하고,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맞아 죽거나 일부로 독(쥐약 같은)을 타서 내놓은 먹이를 먹고 죽기도 한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거나 오염된 물이나 상한 음식을 먹고 걸린 질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기도 한다. 간혹 떠돌이 개들에게 물려 죽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매우 부정적으로 형성되어있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하고 먹이를 구해야 하는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생이 짧아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생 동안 종족 번식을 통해 종을 이어가려다 보니 암컷 길고양이는 과다한 임신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도 많다.
# 길고양이에게 관심과 배려를
2009년 11월 3~4일 총 2부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인간과 고양이’ 편은 이렇게 끝맺는다.
“5,000년간 이어온 인간과 길고양이 공존의 역사 그 결말은 비극이어야 할까요. ‘길고양이’를 없애기보다는 ‘길고양이 문제’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길고양이의 인도적 처리를 위해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초등학교 무상 급식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나고, 굶는 사람도 수두룩한 세상에 누가 길고양이 따위에게 신경을 쓸까? 하지만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은 의외로 많다. 거주지의 주변 지역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보살피는 이른바 ‘캣맘’들도 상당수 있다.
2006년부터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가 찰카기(본명: 김하연) 님은 말한다. “길고양이 사진 작업은 길고양이에게 씌워진 오해와 잘못된 편견을 걷어내고 고양이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중받는 생명임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고양이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은 ‘고양이는고양이다’와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고양이가 있음을 알려주고픈 ‘고양이는의외로가까이있다’. 그리고 길고양이의 가장 큰 천적인 사람에 의해 목숨이 끊어진 고양이를 땅으로 돌려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찰카기 님 이외에도 오랫동안 길고양이 사진으로 찍고 있는 사진가들이 많다. 이런 사진가들의 노력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나 또한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가의 의무와 책임은?
민주주의 사회인만큼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길고양이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과 오해로 길고양이에게 발길질을 할 권리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 폭력이 아니다.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가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소설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중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길 어딘가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거나 질병으로 인해 짧은 묘생을 마감하고 있는 길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감히 사진가의 의무와 책임을 논한다면 사진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일까? 카메라는 인스타그램을 꾸미거나 블로그를 장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까지 깊은 감동을 주거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진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사실을 넘어 진실을 기록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짱돌’을 던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이미 과거로 흘러갔다. ‘관심’과 ‘참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카메라를 든 이들이여, 겉멋일랑 길바닥에 버려라.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조금이나마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진을 하길 바란다. 길고양이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배려를 촉구한다. <비두리(박창환)>
아트렉처 에디터_사진작가 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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