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 첫 눈이 내렸다고 한다.
외출할 때 옷을 여며 입으며 겨울이 온것을 실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눈이라니, 해가 지날수록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것만 같다.
이렇게 매해마다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눈'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어 내린다.
누군가에겐 낭만이, 누군가에겐 추위가, 심지어 누군가에겐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시선을 그려내는 화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화가에겐 사랑이, 어떤 화가에겐 차가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눈내리는 겨울을 풍경으로 담은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속에서 화가들에게 다가온 눈의 의미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내게 있어 눈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Claude Monet,1840.11.14 - 1926.12.05 )
빛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다. 베퇴유의 겨울을 그린 <베퇴유 부근의 유빙>.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보냈던 때와는 달리, 이 시기 모네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아내 '카미유'까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다 결국 사망하고야 만다.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을 모네. 아르장퇴유에서의 행복했던 시간 속에서 그렸던 사랑스럽고 따뜻한 봄과는 대조적으로, 베퇴유에서의 작품은 모네의 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혹한기 겨울의 축축함과 얼음의 날카로움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 Peter Doig, 1959.04.17 - )
생존하는 현대 미술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피터 도이그는 100억 원 이상 거래된 작품이 무려 10점이나 된다고 알려져 있다. 피터 도이그는 어린 시절 머물렀던 캐나다의 눈이 오는 풍경을 그리곤 했는데, 1993년에 <Blotter>라는 작품으로 영국의 '존 무어 회화상(John Moores Painting Prize)'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피터 도이그는 사진 이미지 그대로가 아닌 사진 속에서 그 순간의 추억과 느낌을 불러내어 캔버스 위에 나타내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이 작품들도 그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다시 그려져 있는데, 서정적이면서도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몽환적임 또한 느껴지게 한다.
"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데 집중하느라 놓쳐버리는 것들에 관심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실망하게 되는 건,
찍을 때 당신이 느꼈던 감정을 사진이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피터 도이그 (Peter Doig)-
(John Henry Twachtman 1853.08.04 - 1902.08.08 )
존 헨리 트와츠먼은 미국 인상파 작가로, 바다와 항구, 폭포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1875년에 독일 뮌헨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1886년에 미국에 돌아와 그리니치에 정착하여 그곳의 풍경들을 많이 그렸다. 특히 그가 소유했던 그리니치 근방의 농장과 정원의 풍경들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눈이 내린 겨울 풍경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그는 시골의 풍경 중에서도 특히 겨울 풍경을 좋아했는데, 트와츠먼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눈이 올 때보다 더 사랑스러운 자연은 없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의 작품 속 겨울에서는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감성을 엿볼 수 있다.
(Boris Kustodiev 1878. 02.23 - 1927. 05.26 )
러시아 작가 보리스 쿠스토디에프는 옛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일리야 레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쿠스토디에프는 러시아의 겨울 모습을 작품 속에 많이 담았는데, 추위에 익숙한 러시아인이라서일까, 쿠스토디에프의 작품 속 겨울 이미지는 경직되고 움츠러든 모습이 아닌 활기차고 생동감 잇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십여 년 전부터는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 위에서 생활해야 했다. "축복받은 우리의 러시아 땅"이라는 말을 남긴 쿠스토디에프답게 그림 속에서 러시아를 사랑하는 마음과 삶의 행복감이 묻어 나오는데,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 쌓인 겨울을 고대하게 한다.
네 개나 되는 계절 중에서도 겨울이란. 온 세상이 희게 덮인 몽환적인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그 계절은 혹독한 추위를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에게 어떤 기대감과 설렘을 선사한다. 이는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혼란스런 시국과 추위로 눈밭을 밟기란 고사하고 집 안에 틀어박힌 나날들이 반복되는 요즘, 화가들이 그려낸 흰 풍경들을 보며 겨울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