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그들을 위해 미술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화가와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러빙 빈센트'이다. 이 영화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 후 1년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빈센트'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떠난 '아르망'의 등장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르망이 빈센트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짚어가는 영화이다. 빈센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던 아르망은 그의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미치광이로 치부하지만, 점차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그의 힘들었던 삶과 내면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는 로토스 코프(Rotoscope)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로토스 코프'란 촬영한 동영상 이미지를 한 프레임씩 베껴 그리는 장치로, 정확한 동작을 그려내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애니메이션화할 수 있는 기법이다. 3D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는 실사 영화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하지만 현재는 영화 특수효과의 일종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미지의 형태를 한 컷 한 컷 베껴 그려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기법이라 오프닝 1분을 위해서만 729장의 유화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내용처럼 이 이 영화는 125명의 사람들이 고흐의 기법을 교육받는 과정을 거쳐 수작업으로 약 6만 5천여 점의 유화를 그렸다고 한다. 탄생까지 10여 년이 걸린 영화 <러빙 빈센트>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흐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물론, '자화상', '아를의 포룸 광장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 '가셰 박사의 초상'과 같은 고흐의 명작들을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러빙 빈센트’가 시각적 효과가 큰 영화라면, 이번에 소개할 ‘반 고흐로부터 온 편지’는 직접 고흐와 대화하는 듯한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고흐의 정신적 고통과 고뇌를 우리에게 직접 전달하는 듯한 대사를 통해 직접 보여준다. '셜록'이란 영국 드라마로 익숙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반 고흐의 역할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고뇌와 외로움에 고통받는 고흐는 사실적이며, 외적 싱크로율 또한 높아 몰입도가 크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렇지만 고흐의 시점에서 그의 입을 통해 진술하는 심리적 고통, 고뇌, 예술적 철학까지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고흐의 작품을 본다면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많이 느낄 거라 생각한다. 고흐가 느꼈던 슬픔과 고독, 외로움이 더 묻어 나오지 않을까?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원작으로 한 픽션이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며 작품 속 모델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는데,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모델에 대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상상의 폭이 크다는 장점으로 인해 <진주 귀고리 소녀>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 가난한 '그리트'는 도자기 장인의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화가 '페르메이르'의 집에 하녀로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리에트가 페르메이르의 작업실 청소를 맡게 되는데, 그리트는 '빛이 바뀌는 것이 괜찮다면 창문을 닦아도 되는지'를 질문한다. 이 장면을 통해 그리에트가 가진 예술적 감각이 드러난다. 이후 그리트와 화가 페르메이르는 예술적 교감을 나누게 되고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은 페르메이르는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그 작품이 바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다.
이 영화에서는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모습이 익숙한 배우라 '과연 이 역할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영화 속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은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이 그림 밖으로 나온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흡사한 모습을 자아내며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워준다. 한편 페르메이르 역할을 한 화가 콜린 퍼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신사 이미지의 콜린 퍼스가 장발을 한 흔치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흥미가 있다면 한 번쯤 보기 좋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먼 인 골드는 황금빛 색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클림트의 그림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픽션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는 반대로 영화 <우먼 인 골드>는 한 여인이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빼앗긴 가족의 유품을 반환받으려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세계대전 당시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도망쳐 미국에 자리 잡은 유대인 '마리아'는 죽은 숙모의 그림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되찾기 위해 친구의 아들인 변호사 '랜드'를 찾아간다. 대형 로펌까지 박차고 나와 열정적으로 돕는 랜드와 함께 마리아가 국가를 상대로 그림을 되돌려 받고자 하는 8년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 제목 ‘우먼 인 골드’는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나치가 붙였던 제목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많은 문화재와 예술품들이 훼손되었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 문화재는 많지 않다. 이를 알고 있기에, '정부를 상대로 한 개인의 문화재 반환 요청 소송'이란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지저분한 법정 싸움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국가의 유산이라 주장하며 그림을 반환하지 않기 위해 변호인단을 꾸린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자들의 행동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싸움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고인이 된 숙모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사람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또, 우리가 만나볼 수 없는 작품 속 모델을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며 분노를 한 템포 식혀주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 왜곡과 진실을 폄하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결말이 정의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해진다. '문화재 반환 소송'이란 주제의 영화인 만큼 관심 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담은 영화 <프리다>를 소개한다. 멕시코 문화를 소재로 삼았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도 프리다 칼로의 캐릭터가 등장하였듯,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이다.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겪고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똑똑하고 밝은 소녀로 자랐다. 그러나 그녀가 18살이 되던 해, 하굣길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는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30번에 걸쳐 수술하게 된다. 그리고 프리다 삶의 또 하나의 큰 사건, 연인 ‘디에고’와의 사랑 이야기도 담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중 유일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답게 전쟁 같은 디에고와의 사랑과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데, 디에고와의 사랑은 몸과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 두 사건은 그녀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던 만큼 그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침대에 누워서까지 그림을 그리다 47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녀의 삶은 열정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이런 파란만장한 삶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도 투영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설명 없이도 그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영화 <프리다>는 매력적인 색감, 소품, 의상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프리다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한다.
영화 <내 사랑>은 화가 모드 루이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쁜 포스터와 <내 사랑>이란 제목 때문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지만, 로맨스보다는 그녀의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한 영화이다. 그녀의 그림은 따뜻하고 행복함이 담겨있지만 사실 그녀의 삶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모드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 내에서 서로 떠맡기 싫어하는 존재가 된다. 우연히 잡화점에서 가정부를 찾는다는 에버렛의 전단지를 보고 그를 찾아간다. 에버렛은 다리를 저는 그녀가 탐탁지 않지만 입주 가정부로 들이게 되고 모드는 구박하는 숙모의 집에서 나와 에버렛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에버렛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툴고 거친 사람이었다. 또한 장애가 있는 모드를 무시하고 거칠게 말하는 에버렛은 걸음이 불편한 그녀를 배려하지 않고 혼자 앞서 걸어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모드가 에버렛의 집에 파란 새 그림을 그려둔 것을 보고 에버렛이 "누가 벽에 요정을 그려도 된다고 했어요?"라고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하진 않는다. 어느 날 생선 장수인 에버렛을 찾아온 고객이 집 내부에 모드가 그린 닭을 보고 관심을 가진다. 이후 고객에게 카드 그림을 한 장씩 팔게 되고 모드의 그림은 닉슨 부통령까지 구매하며 유명세를 띄게 된다. 그 사이 모드와 에버렛의 관계도 달라진다. 처음 모드와 에버렛이 만났을 때, 모드는 에버렛의 빠른 걸음에 맞춰 다급하게 걸었었다. 이후 에버렛과 모드가 나란히 걷고, 에버렛이 수레에 모드를 태워 가는 장면을 보며 그들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낮은 자존감의 에버렛은 그림으로 유명세를 탄 모드가 자신을 떠날까 봐 더 차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모드는 달라지지 않았다. 몸은 불편하지만 에버렛보다 내면이 단단하고 자존감 높은 모드가 에버렛을 따뜻하게 품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모드의 내면과 모드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원제가 <Maudie, My Love>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갑고 지저분한 에버렛의 집이 모드의 그림으로 채워지는 것은 마치 에버렛의 마음도 모드로 인해 따뜻하게 채워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모드가 살았던 튤립 그림이 가득한 집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담담한 일상과 모드의 따뜻하고 곧은 내면, 온화한 풍경과 ost는 마른 감성을 채워준다. "끝내 행복을 찾은 건, 우리 집안에 너뿐이구나"라는 숙모의 대사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행복과 자존감,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