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레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 시간은 한 번씩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 때론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자신이 작게 느껴져 좌절을 겪기도 한다. 이는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를 살았던 모두가 그러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화가들의 '자화상'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작품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신에 대한 외경심을 가졌던 중세 시대를 지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그려졌던 자화상이다. 사실 이 자화상은 처음 공개될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림에서 정면을 쳐다보는 것은 '신'만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뒤러가 자신을 마치 신처럼 그렸다는 것인데. 아마 신과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하는 화가, 곧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뒤러 오른쪽 옆 글귀는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영원한 물감으로 자신을 그렸다"라는 말인데, 여기서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 번째 작품은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의 자화상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림 속 반 다이크는 왼손으로 금목걸이를 들추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해바라기를 가리키고 있다. 해바라기는 이름처럼 태양을 향해 바라보는 꽃으로, 충성과 숭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영국의 찰스 1세의 궁정화가였던 반 다이크에게 해바라기는 '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몸에 걸고 있는 황금 체인은 1633년에 찰스 1세가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국왕의 후원에 대한 감사와 왕에 대한 헌신, 그리고 화려하고 명망 높은 궁정화가로서의 모습을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 번째 작품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자화상이다. 귀스타브 쿠르베는 '세상의 기원'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가다. 또한 그는 귀족적이고 낭만적인 화풍이 유행했던 19세기에 현실을 그린 예술가로서 19세기 회화의 변화를 주도한 화가라고도 불린다.
쿠르베는 렘브란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렘브란트 못지않게 많은 자화상들을 남겼는데, 쿠르베의 자화상 속에서도 렘브란트 작품의 특징인 명암이 두드러지는 빛과 어둠이 특징적으로 보인다.
네 번째 작품은 이쾌대(1913~1965)의 자화상이다. 진한 눈썹과 강렬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이렇게 강렬해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실 아주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다. 1913년생인 이쾌대는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내고,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인민 의용군으로 참전하다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구금되었다. 이후 남북한 포로교환 때 북한행을 선택했던 이쾌대는 계속해서 북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월북 이후 남한에서는 그의 언급이 금지되고, 북한에서 숙청 사건에 휘말리며 현재 이쾌대의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1988년 월북작가에 대한 해금 조치를 받아 한국 근대미술가 10인에 선정되면서 남한에서 재조명받았다. 위 자화상은 그가 이러한 분단의 혼란을 겪기 전인 1940년대 후반에 그려진 작품이다. 근대에 도입된 중절모와 서양식 팔레트를 들고 있으나,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과 배경을 통해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그의 강렬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자화상이다.
다섯 번째 작품은 카라바조(1571~1610)의 자화상이다. 아마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이 그림이 왜 자화상이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선 카라바조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카라바조는 원래 난폭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실력은 있지만, 폭력을 일삼는 화가였다고 한다. 1606년, 카라바조는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전까지는 후원자들이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감옥에서 꺼내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감옥에서 도주를 하게 된다. 하지만 몰타, 나폴리 등을 전전하며 계속 도주하던 그는 1610년, 결국 사면권이 있던 교황을 찾아가기로 한다.
그때, 사죄의 의미로 그린 것이 위의 <다윗과 골리앗>이다. 그래서 이 그림 속 사내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그린 것으로, 그가 들고 있는 머리는 그 당시의 카라바조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목을 자신이 베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속죄의 의미로 그린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린 해인 1610년에 카라바조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림은 결국 교황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여섯 번째 작품은 비운의 천재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자화상이다. 에곤 실레, 그는 28년의 삶 동안 유화 300여 점, 수채화와 데생 2000점 등 엄청난 작품 수를 남기며 천재라고 불렸던 화가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독특한 화풍과 적나라한 누드화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생애 동안 가장 많이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자화상인데, 특이한 점은 자화상에 여러 명이 등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에곤 실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중 자화상>이다. 이 작품에선 2명의 에곤 실레가 등장하는데, 위쪽에 있는 남자는 어디를 쳐다보는지 모르겠는 눈빛을 하고 있고 아래쪽 남자는 왠지 분노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정면을 직시하고 있다. 하지만 상반된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적대하는 모습이 아닌 얼굴을 맞대어 서로에게 기대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에곤 실레는 이 상반된 두 모습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여기선 3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몸과 얼굴 모두 붉게 칠한 모습이 조금 섬뜩한 느낌을 준다. 2명을 그린 자화상에선 표정을 통해 감정을 구분할 수 있었으나, 이 세 명의 자화상에선 쉽게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에곤 실레는 죽음에 대한 공포, 내면의 관능적 욕망,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가지며 의심과 불안에 놓인 인간의 육체를 거친 왜곡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내면과 그것을 담은 자신의 여러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화가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이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생애를 자화상으로 남긴 화가로도 유명하다. 위의 자화상은 렘브란트의 20대를 담은 자화상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그린 뒤 4년 후인 1632년, 젊은 나이에 많은 명예와 부를 가져다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이 바로 그 <툴르프 박사의 해부>이다. 기존의 평면적인 초상화에서 벗어나 빛을 이용해 입체적인 초상화를 그려냄으로써 인물을 표현해낸 것에 의의가 있다. 이 그림을 계기로,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초상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위의 작품은 렘브란트의 30대를 담은 자화상이다. 20대의 초상화에선 어리숙하고, 가벼운 느낌이 났다면 30대의 렘브란트는 초상화 속에서 고풍스럽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50대를 담고 있는 자화상이다. 1642년, 렘브란트가 40대일 때부터는 그는 이전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데.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 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1645년 두 번째 아내 '핸드리케'를 맞이한다. 하지만 쌓여가던 빚을 감당하지 못해 1656년 파산선고를 받고, 그가 사랑하던 집과 예술작품 모두를 잃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나갔지만, 무너진 화가로서의 명성은 예전만큼 회복할 수 없었다. 1662년, 두 번째 아내 '핸드리케' 마저 잃고, 1668년엔 유일한 아들'티투스' 역시 죽게 된다.
위의 작품은 많은 화가들의 자화상 중에 걸작으로 꼽히지만, 정작 렘브란트가 죽게 되는 해인 1669년에 그려진 자화상이다. 20대부터 세월을 거쳐 이 그림 속 렘브란트는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하고 지긋이 우리를 바라본다.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던 화가로서의 삶에 그도 많이 지쳤던 것인지, 분명 빛은 그의 얼굴을 밝게 비추고 있으나 그의 표정은 어두워 보인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마지막 자화상을 그리며 무슨 고민을 담았고 생각을 했을까?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 윤동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다. 깊은 자아성찰 끝에, 자신에 대한 내적갈등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인상적인 시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지금은 잘 걸어왔는지 매 순간 고민한다. 다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하고, 우울감에 빠트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기 힘든 요즘,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 고뇌하던 화가들의 '자화상'을 보며 모두 위로받았으면 한다.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