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는 OTT(Over The Top)서비스. 그 중에서도 466만 명의 이용자 수를 보유한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스위트 홈’이 얼마 전 종영했다.
제목과 달리 전혀 스위트(Sweet)하지 않은 내용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오싹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마냥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요즘. 좀비물 같은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더욱 각광받는 것은 그래서일까.
환경오염과 코로나19처럼 전 유행병 상황들을 떠올리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예전 드라마 한 편을 봐도 '어, 저 사람은 왜 마스크를 안 쓰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니 말이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언하기 어렵고 불안한 시대다. 미래를 미리 엿보고 싶은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에 공감을 실어주는 것이 아포칼립스 물일지도.
미술에도 역시 아포칼립스적 무드를 뿜어내는 작품들이 있다. 겨울이 지나가기 전, 한 번 더 오싹함에 몸을 떨게 할 그림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이 그림을 어디선가 본 적 있을지도 모른다. 세 번 보면 죽는 그림이라는 도시괴담으로 유명한 그림이다. 황폐화된 환경 속에 정체불명의 대상이 거울 앞에 있는 모습. 그림 속 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 그것과 눈이 마주칠까 두렵기까지 하다. 왜 그런 도시괴담이 생겨났는지 일순 이해가 된다.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Zdzisław Beksiński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Zdzisław Beksiński (1929.02.29 ~ 2005.02.21)
마치 도시괴담 같은 오싹한 그림을 그려낸 작가가 바로 벡신스키. '환시 미술(Fantasy Art)'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환시 미술(Fantasy Art)이란, 환상을 보듯이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초현실주의로 분류되지만 그를 따르는 유파들은 자신들을 환시 미술이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는 그는, 정작 자신은 그림을 통해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미 부여나 상징적 해석을 거부해 의도적으로 작품마다 제목과 설명을 남기지 않았다.
"나도 내 그림을 잘 모릅니다. 이해하려 들지 마십시오. 내 그림에는 아무 의미도 담겨있지 않으니까요."
불타는 건물을 뒤로하고 괴생명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SF 영화의 초입부 장면이 떠오르는 그림이다. 레지던트 이블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 같기도 하다.
샛누렇게 변해버린 하늘과 텅 빈 건물들. 언젠가 인류가 멸망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장면이다. 시커먼 입 속에서 쏟아져나오는 개미떼들 같은 괴생명체 무리. 압도적인 재해 앞에서 굳어지는 몸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이 몸을 덮치는 듯하다.
벡신스키는 건축물과 관련해 많은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 건축가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을 엿볼 수 있다. 조지아의 고대 동굴 도시, 바르지아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벡신스키는 그림에 아무런 의도가 없음을 밝혔지만, 그의 모든 작품들이 어떤 일관된 암울함과 압도적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세계가 빚어진 데에는 어떤 자기경험이나 세계관 등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벡신스키는 폴란드 출신으로 유년시절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 주변에는 유태인 수용소가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두 눈으로 목격했을 그에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소재가 되었을지도.
벡신스키는 또한 아내의 죽음과 바로 이듬해 일어난 아들의 자살 등 비극적인 개인사를 겪기도 했다. 어두운 작품세계와 그의 경험들이 연관있어 보이기도 하나, 그가 했던 말대로 벡신스키의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지양해야 할 듯하다.
향간에서는 그를 놓고 죽음의 화가라고 일컫기도 한다만, 이는 작품의 여러 예술적 요소들을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뭉뚱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그림이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새로운 이야기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죽음과는 상반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넷플릭스 스위트홈을 정주행한 후, 헛헛한 마음을 부여잡고 벡신스키의 작품을 찾아보았던 나처럼, 그의 매혹적인 세계관 속에서 시즌 2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 | 아트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