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맵 매거진 Mar 22. 2021

미술의 오일장에 불어온
따뜻한 봄바람

2021 화랑미술제 리뷰

 미술의 오일장에 불어

따뜻한 봄바람

2021 화랑미술제 Photo by. ARTMAP


 좋은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네요. <2021 화랑미술제>가 드러낸 성과는 미술 시장에 관여하는 이들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간 게 분명합니다. 이 소식은 몇 가지 뚜렷한 사실을 담고 있는데요. 그것은 첫째로 “아트페어 장소를 찾은 입장객이 작년에 비하여 세 배가 늘었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전 지구적 재난의 초반기인 작년 기록과의 대비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예년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약 30%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집계된 사만팔천 명이라는 숫자는 지금껏 화랑미술제 개최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이라고 하네요. 둘째로 페어를 통하여 “작품 거래액은 약 칠십이억 원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예년 기록의 두 배를 넘어서는 결과입니다. 셋째로 이번 화랑미술제는 “행사 기간 미술계의 인플루언서들이 방문”하며 페어에 관한 관심도를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소식은 화랑미술제를 주관하는 한국화랑협회가 집계한 공식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는데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숫자로 바꾸고, 문서로 인용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건 웬만한 사람들이 알죠. 소셜 팩트가 전달되고 퍼져가면서 하나의 정보는 정설로 굳고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며 다양한 해석이 벌어지잖아요? 이 글 또한 그러한 언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고요. 앞에서 전한 사실 이외에 여러 정보에 관해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일종의 르포르타주 식으로 된 이 칼럼을 쓰는 나는 그 소식이 과장되거나 각색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접했던 뜨거운 반응도 그걸 보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훈풍이 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2021 화랑미술제 Photo by. ARTMAP


 원래부터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는 모두가 ‘난 그럴 줄 알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비슷비슷한 분석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럼 ‘왜 진작 그런 예측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게 전문가적 견지’라고 합니다. 주식시장이나 금리 선물시장이나 미술시장이나 전문가들은 늘 그런 법이지요. <2021 화랑미술제>가 방아쇠를 당긴 미술시장의 재부흥은 몇 가지 그럴듯한 독립변수가 놓입니다. 그건 뭣보다 전염병의 대창궐에 대한 반동 심리로 제시됩니다.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억눌려 있던 미술 소비심리에 물꼬가 터졌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이건 시장과 그 안에서 거래되는 재화 용역 상품 분석에서 일종의 대체 소비재 가설을 덧붙일 수 있겠죠. 하늘길이 막혀 해외 미술 투어가 어려운 지금의 상황은 새로운 시장 돌파로 이어졌습니다. 또 안으로 주식시장과 부동산 투자 환경의 등락에 연동된 돈의 흐름이 미술로 방향을 잡았다고 보는 것도 고차원적인 분석은 아닙니다. 특별히 최근에는 재계와 정계에서 상속세와 작품 대납제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미묘한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지요. 이밖에도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다른 몇 가지 이유도 이번 페어의 성공에 있었을 겁니다.


2021 화랑미술제 Photo by. ARTMAP


 사실, 미술품 견본 시장으로서 아트페어는 그곳을 찾는 일반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구조와 행위가 얽혀 있습니다. 이 시장에 참가하는 행위자들이 각자 가진 이기심과 이타심이 예컨대 비엔날레, 화랑과 미술관, 아트페어, 옥션, 레지던시, 언론사, 미술대학 등의 다른 미술 주체와 은밀히 연관되어 움직이니까요. 아트페어에서 공개되는 모든 작품은 하나의 유일무이한 개별체로서 대접받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회 어디서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미술 작품에도 일종의 위계가 정해져 있단 걸 누구도 부인할 순 없을 겁니다. 메이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아트페어들은 이른바 시장에서 먹히는 극소수의 작가들 작품 유통으로 작동됩니다. 저는 그들을 알파(a) 작가라고 부르겠습니다. 알파의 위계가 곧 예술적으로 우수한 작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의 예술적 성취 수준과 같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미술가들도 숱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술가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략 천 명 가운데 한 명꼴입니다. 오만 명에 가까운 시각예술인 중에 자신의 작품을 거래해 본 경험을 가진 자도 상당수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상업성의 주요 지표가 되는 재 판매율, 경매나 화랑을 통한 이차시장의 범주 안에 드는 작가는 훨씬 줄어 백 분의 일에 해당하는 오백 명 선입니다. 또 그중에서 환금성이 보장되고 교환가치 상승세가 가파른 작가는 몇 안 됩니다. 네, 스무 명 안팎의 알파 작가들이 시장을 이끕니다. 페어에 참여하는 갤러리스트들과 아트딜러들은 알파 작가들의 작품이 매물로 나올 때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2021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특별전 <ZOOM-IN>  Photo by. ARTMAP


 알파 작가들의 등극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여기에 학계와 현장 경험자들은 진지한 분석을 시도해 왔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내가 보기에, 거기엔 답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일 뿐이죠. 알파 작가는 엄청난 노력과 재능이 만든 성취지위가 아닙니다. 우연과 필연의 요소가 들쭉날쭉 섞인 그들의 출세 과정은 평론가와 기자, 학예사들이 가담한 스토리텔링 구성을 기본으로 깔고 해외 미술계에서의 적극적인 반응도 필요합니다. 그들 작가의 서거 또는 몇십 주기의 시점에 작품 가격은 급등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2021 화랑미술제>는 그러한 몇 가지 계기가 겹쳤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들이 주도하는 아트페어 시장에 역시 못지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호응했습니다. 알파계의 잠재적 후보군인 그들의 선전과 더불어 젊은 작가들의 데뷔도 눈에 띕니다. 사실 한국의 신진 작가들이 형성하는 화풍이 존재하며, 그건 선배 작가들이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아, 그래서 줌인(ZOOM-IN). 


2021 화랑미술제 Photo by. ARTMAP


 <줌인>은 한 유력 포털사이트를 통해 받은 포트폴리오 가운데 뽑힌 열 명의 신진 작가 특별전입니다. 이들 열 명의 작가 작품이 특별 부스에서 공개되었고, 관객들이 현장에 준비된 전자 태블릿으로 투표해서 세 명의 인기 작가를 꼽는 프로그램인데요. 열 명의 작가 선정은 전문가의 식견이 작동하고, 마지막 세 명은 대중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보면 될까요? 내가 보기에 작품이 원래 가진 특성과 디스플레이 환경에 따라 일반 관객들의 호불호가 쉽게 탈 맹점은 다소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보완으로, 아트페어에 참여한 화랑 관계자들의 선택을 일정한 비중으로 포함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자세한 기준을 모르는 나의 관점에서 이 이상의 언급은 삼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건 무엇보다 적어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아트페어에 방문한 관객들의 안목을 얕보는 말이 될 수도 있겠죠?


2021 화랑미술제 토크라운지 Photo by. ARTMAP


 아트맵(Art Map)이 기획한 토크 라운지도 앞으로 당분간 이어질 전시환경에서 하나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자부하는데요. 언택트 시대의 예술 향유가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을 드러낼 것인지 생각하는 자리는 적재적소의 섭외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건 마치 학교에서 잘 짠 커리큘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연자들의 발언도 경의를 표하고 싶고요. 다 좋은데,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뭔가 하면, 아트 페어는 매일 출석하고 마지막엔 시험을 치르는 학교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 하나하나의 강좌는 닷새 일정 속에 어느 하루를 택해 온 관객들에게 무작위에 가깝게 돌아간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예술행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각론을 세분하는 게 언제부터인가 벌어지는 유행 같습니다. 차라리 하나의 주제에 관해 서로 다른 발언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다양하게 듣는 시도도 한 번쯤 벌여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어차피 현대 예술의 큰 부분이 실험 아닌가요. 실험에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번 <2021 화랑미술제> 또한 하나의 큰 실험장이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중충한 현실 안에서 몇 단계의 방역 관문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입장이 가능했던 세계, 그곳으로의 손짓 자체가 예사로운 건 아니었죠.




-2021 화랑미술제 리뷰-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매거진의 이전글 낙서를 닮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