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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Mar 26. 2021

오직 주먹과 맷집으로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1898-1976)



 얼마 전에 떠들썩하게 벌어진 권투 시합이 있었다. 세기의 대결이란 선전과 달리 그 경기는 미지근하게 끝났다. 뭐 싱겁기로는 늘 K.O.승으로 끝나던 마이크 타이슨 경기도 마찬가지였지만, 권투 애호가들의 준거점은 그보다 더 과거를 향한다. 슈거레이 레너드, 토마스 헌즈, 마빈 헤글러, 이 세 명의 걸출한 복서가 물고 물리는 판에 로베르토 두란이라는 강자까지 끼어들었던 1980년대야말로 권투의 중흥기였다. 그 무렵 권투 열기를 함께 이끈 건 영화 <록키 Rocky> 시리즈였다. 이 영화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았다는 이유로 손창민이 덩달아 스타가 됐던 시절이었다.


 세상엔 재미있는 일들이 이따금 벌어진다. 몇 해 전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권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던 사건도 그렇다. 가상이 실재를 압도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셈이다. 내 생각에, 그가 명예를 얻을 자격은 충분했다. 영화 속 록키 발보아가 로드워크 끝에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올라 주먹을 치켜든 씬은 권투야말로 삶 가운데 가장 정직한 스포츠란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격이다. 지금도 안에 전시된 작품들보다 바깥에 서 있는 록키 동상을 보려고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니,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띄운 일등 공로자는 아무래도 록키 같다. 그 다음이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겠지?


Alexander Calder, Untitled, 1935.  이미지 출처 | Wikiart


 조각가 칼더와 배우 스탤론은 닮은 점이 있다. 두 사람은 명성을 쌓기 전에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애당초 운동선수가 아니었던 것처럼, 칼더 또한 처음에 잡은 진로는 작가가 아닌 엔지니어였다. 필라델피아가 칼더의 출신지였다면, 파리는 그에게 작가적 생명력을 불어넣은 곳이다. 칼더는 몬드리안(P.Mondrian), 아르프(J. Arp), 뒤샹(M. Duchamp), 코르뷔지에(L. Corbusier), 미로(J. Miro) 등 당시 최고의 조형 예술가들을 거기서 만났다. 그래서 나온 발명품(?)이 모빌(mobile)과 스테빌(stabile)이다. 조각을 공중에 매달아 움직이게끔 하는 모빌이 형뻘이며, 바닥에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스테빌은 동생이다. 공학과 미술의 접점인 그의 조각은 키네틱 아트의 시초가 되었다.


Alexander Calder, Arc of Petals, 1941 이미지 출처 | Wikiart


 당연히 가벼워야 되는 그 작품들은 장소와 무게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이 점은 칼더가 현대 조각에서 이룬 가장 큰 혁신이었다. 그것보다 나는 또 다른 새로움에 끌리는데, 이차원의 회화를 삼차원적 조각 속에 고스란히, 그것도 우아하게 조합한 점이다. 얇은 절편이 섬세하게 이어진 칼더의 작업은 덩어리로부터 탈피한 조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는 몬드리안과 미로의 그림을 입체로 표현해보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그 화가들이 제안을 거절하고 ‘옳거니’하며 자신들이 입체 작업에 뛰어들었다면 미술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요즘 현대 미술가들 중 상당수는 그림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문헌 작업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디제이션 강박증에 시달린다. 장르의 이종격투는 흥미로운 이벤트지만, 권투 선수처럼 오직 스텝과 주먹과 맷집으로 끝장 승부를 보던 칼더의 예술 시대가 더 품위 있었다.




 - 2015년 6월 대구문화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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