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MIRROR SEASON 1 -EPISODE HOT SHOT
BLACK MIRROR SEASON 1 - EPISODE HOT SHOT
*해당 에피소드의 스토리와 결말을 다루고 있기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한 남자의 기상으로 시작한다. 그가 일어난 곳은 평범한 방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이 검은 유리로 덮혀져 있는 원룸과도 같은 좁은 방에, 검은 유리에서는 끊임없이 쇼 프로그램 광고가 나온다. 치약을 짜는 일도, 음식을 사는 일에도 다 돈이 들어간다. 광고 없이 보는 유튜브 레드처럼 광고를 스킵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에 있다. 자전거를 끊임없이 돌려서 해당 노동에 대한 가치를 얻게 되면 그것을 통해 음식을 사 먹고 도플에게 옷을 입혀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회색 옷을 입고 모두 똑같이 생긴 자전거 위에 올라가서 페달을 돌린다. 자전거를 돌리면서 보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이 되면 더 이상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모두는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일상을 꿈꾼다.
또다시 블랙 미러가 가져온 가상 미래에는 여러 가지 설정이 있다. 폐쇄된 공간, 미디어의 과잉,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을 잡아먹는 사회가 이번 에피소드의 사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한 설정들이 만들어진 이유가 없이 극단으로 설정해 놓는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시즌 1의 에피소드 1번의 경고가 극단으로 설정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옷을 입을지 보다는 도플이 어떤 옷을 입을지를 더 전전긍긍하고 그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광고와 그래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검은 유리일 뿐이다. 미디어는 뚱뚱한 청소부들을 조롱하고 자전거를 돌리는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그러한 것처럼 실제로도 청소를 하는 청소부들을 조롱한다. 미디어가 알려준 대로 미디어를 소비하고 미디어의 의도가 곧 자신의 의도가 된다. 오락거리만으로 만 유지되는 사회, 모든 것이 오락거리가 되는 곳. (지금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 한 남자는 어떤 여자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가짜로만 넘쳐나는 그가 살고 있는 것에 진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다시 미디어에게 먹히고 그는 미디어에게 복수를 꿈꾼다. 핫샷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알리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쓰레기를 산다고요. (중략)
자유롭고 아름다운 진짜를 보여줘 봐요, 못하죠?
경이로운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당신들은 그 경이로움을 별 볼일 없는 조각으로 자르죠.
그리고 나서 조작하고 포장하고 만개쯤 되는 필터를 거치게 해서
아무 의미 없는 작은 불빛으로 만들어 버려요.
밤낮으로 자전거를 타지만 대체 무엇을 위한 거죠?
그 전력이 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요?
진실, 진짜가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이 진실과 진짜에 가까이 가기 위해, 그리고 진짜를 돌려받기 위해 호소한다.
"뭔가 진짜에 가까이 갈 수도 있다는 꿈을 잠시 꿨던 어리석음도 다 꺼져. 그러다 결국 또 다른 하나의 견고한 농담거리가 된 수백만 명의 추악한 농담거리가 된 내 감정도, 모두 꺼져!"
하지만 그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그 진실을 폭로해서 무엇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진실, 진짜를 원한다는 것과, 우리를 둘러싸는 모든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지. 흥분한 상태에 이른 주인공에게 심사위원이자 진행자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핫 샷'이 시작한 이래에~~~
그 진행자의 말에 모든 도플들을 환호한다. 또한 그의 호소는, 그의 진실은 하나의 퍼포먼스로 전락한다. 너무나도 쉽게. 가상화된 캐릭터로 그 자리에 앉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끄는 대로 무비판적으로 흘러가는 우둔한 군중이다. 즉각적인 반응만이 그들에게 존재할 뿐이다. 군중의 함성은 개인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하나의 공연이 아니라 진실이죠? 당신만의 진실도 어쨌든 진실이니까요.
진실에 대한 간절한 호소는 자전거를 다시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 한 번에 무너진다. 목숨을 담보로 호소했으나, 지금 현실을 나아지게 해 준다는 말에, 진실은 너무나도 쉽게 다시 꾸밈이 된다. 진실은 공연이 되고, 방송이 된다. 그렇기에 위의 진행자가 한 말엔 진실에 대한 양면성이 드러난다. 무겁고 두꺼운 것 같으면서도 부서지기 쉽고 아무 힘없는 진실이라는 존재가... 진실이라고 말한 것은 소용이 없다. 진실만은 힘이 없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진짜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해당 에피소드의 엔딩은 서글펐다. 자신을 가두는 검은 유리를 깨부수어서 얻은 유리조각이, 진실에 대한 간절함을 의미하던 유리조각이 어느덧 자신을 조금 더 큰 방, 조금 더 나은 생활로 가져다주는 도구에만 그치고 만다. 진짜를 원했지만 다시 가짜에 편입되는 존재들이란. 그가 말했듯이 더 나아진 삶은 그냥 단지 조금 더 큰 유리의 조금 더 큰 방일뿐이었으나 그는 그 생활을 결국 받아들인 것 같다.
해당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뒤통수 한 대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주인공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종국엔 내가 진실이라는 말을 이용한 것에서 그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내가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진실되게 쓰기 위해서 계속 쓴다고 생각해왔다. 결국 주인공이 작은 방에서 큰 방을 가기 위해 깨진 유리조각이 단지 방을 넓히는 열쇠밖에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유리를 왜 깼는가? 단지 진실이라는 말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고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며, 사실 상 그 진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아닐까? 그럼 그 진실은 의미가 있을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나만의 진실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진실이라는 언명 하나만으로,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무엇을 행동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다시 알고 있으면서 그 진실을 가리는 체계로 갇힐 수밖에 없다면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