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MIRROR BANDERSNATCH
해당 글은 에피소드의 전체적인 내용과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주 우연과 운명을 같이 부른다, 그게 얼마나 논리적으로 모순인지 알고 있으면서.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다." "우연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다." 등 나는 우연과 운명을 자주 혼동하고 섞어 쓰고 바꿔 쓴다. 그러나 우연이란 이름은 운명과 같이 쓰일 수 없고 운명은 우연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우연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기에 반복된 것이며, 우연은 우연임으로 필연과 같은 이름을 하고 있는 운명과는 같이 불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을 자주 같이 부른다. 논리적으로 모순이나, 사실상 그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둘은 현실에서 굉장히 혼동된다.
내가 우연과 운명처럼 내가 자주 혼동하고 바꿔 쓰고 같이 부르는 단어들이 있었는데, 바로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놈의 "자유의지"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착실히 다니는 모태신앙 어린이였는데,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걸 물어봤었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너의 하나님은 네가 필요로 하신 것을 안다." 대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하라는 건지, 입 다물고 하나님이 알아서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통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꼭 농락하는 것 같고 수수께끼 같았다. 어떻게 보면 기분 나쁜 농담 같았다. 자주 배웠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까먹고,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면 두 개념을 헷갈리며 갈팡질팡하며 난관을 맞기 십상이었다. 자유주의자라면 결정론적인 결과를 믿으면 안 되는데 나는 자유주의자라면서도 결정적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었고 결정론자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의 선택을 이야기했다.
내가 물어봤던 성경에 대한 의구심의 대답은 모호한 것이었다. 자유의지를 얘기하다가도 어느새 결정론을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그 사이의 스무스함은 사실 아직도 나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그 대답들은 한쪽 다리는 자유의지에 한쪽 다리는 결정론에 기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왜냐면 그들은 그렇게 설명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사설, 이게 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이 에피소드를 끝내자마자 자유의지에 관한 책을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했다... 학부시절 때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어쩌면 이 모든 게 믿음의 문제라는 아주 나이브한 대답을 내렸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근데 어떻게 보면 그 나이브한 답이 답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 문제는 어느 철학처럼 어렵지도 않았다. (사실 쉽지도 않지만 ) 믿음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만 하면. 물론, 그 믿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확실하지 않은 사실들을 이야기할 때 믿음이란 말처럼 진실에 가깝게 느껴지는 말이 없었고, 믿음이라 하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믿음이란 말처럼 비이성적이고 강력한 말도 없다. 이건 사실이다.
내 얘기가 너무 길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 끄집어 놨냐 하면 블랙미러의 밴더스내치 때문이다. 블랙미러 시리즈 중 밴더스내치는 인터렉티브 스토리이다. 해당 에피소드 안의 내용처럼, 선택을 통해서 관람자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에피소드의 이름, 밴더스내치는 해당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읽는 판타지 소설, 그리고 프로그래밍하는 컴퓨터 게임 그 둘 모두를 이른다.
처음 선택은 매우 간단하다. 간단한 선택부터 주어지는 것은 선택에 대한 짐을 덜게 만든다. 내 선택이 크게 달라질 일을 만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도록. 아침 시리얼을 선택하던 가벼운 선택은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서 전혀 가벼워지지 않는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말은 굉장한 훼이크다.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만, 세상 모든 일이 YES/NO로 이루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치 결과를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끄는 것 같지만, 사실 상 선택만 두 가지였을 뿐이지, 사실 상 같은 선택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또는 같은 결과로 치닫게 되는 선택인 경우가 있다. 정답은 정해져 있으나 여러 가지 선택권을 주어 마치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이 에피소드의 하나의 결론처럼.
이 에피소드를 보면 이 모든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면 그러라고 만든 것 같으니까.
아무튼, 이 문제는 내게 너무 어려운 문제, 고질적인 문제였기에, 이론의 지혜를 조금 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조금 더 명확해질까? 그래도 세상 일로 가져와서 말하자면 내가 사는 삶이 자유의지의 삶인지, 결정된 삶인지 모를 것 같다는 예감은 강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