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신이 산다, The Brand New Testament
모든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토토의 천국”, “제 8요일”, “미스터 노바디”로 유명한 자코 반 도마엘의 새로운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원제: The brand new testament)이다. 평소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답게 이 영화는 상상력도 매우 뛰어나고 오감이 화려한, 미니어처 장난감 같은 영화이다. 그러나 단순히 너무 가볍지도 않은 영화이다. 이 귀엽고 발칙한 신성모독급 영화는 여러 챕터로 구성된다. 우선 그 챕터대로 영화를 따라가 보자. 영화는 지상으로 배경을 옮기기 전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성서의 수순을 밟는다.
브뤼셀에는 신이 산다. 천지를 창조하고 브뤼셀도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나니 심심하다. 피조물을 만들었으나, 뭔가 보기에 심히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브뤼셀에 사는 괴짜 신은 자신의 형상과 닮은 인간을 창조한다. 그 인간 남자는 아마 우리가 모두 아는 아담일 것이고, 그에게 신은 이브를 선사해준다. 그 후 아담은 자손들을 낳는다. 성서의 내용과 똑같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신은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자애로운 신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불행을 즐기며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불행을 조작할지를 늘 고심하고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인간의 고통을 정교하게 세팅한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신 가족들은 설정이 참 정교하면서도 귀엽다. 어머니는 여신이지만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매일 수를 놓고, 아닐 때는 야구가 유일한 삶의 낙이다. 신과 이 여신 사이에는 j,c (jesus christ 겠죠?)라는 아들과 에아라는 딸이 있다. 이 가족이 식사를 하는 씬에서 에아의 아버지인 괴짜신은 에아에게 오른쪽에 앉지 말라고 한다. 그 놈(아들)생각이 난다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주기도문 구절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재밌는 설정인지 새삼 느낀다.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괴롭히는 아버지가 딸인 에아가 볼 땐 한심할 뿐이다. 그런 에아는 어느 날 입구도 출구도 없는 이 아파트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이미 일전에 세탁기를 해킹해서 지상세계로 내려간 오빠의 도움으로 에아는 아파트에 탈출할 수 있게 된다. 그전에, 탈출하는 김에 아버지의 컴퓨터를 해킹도 하고, 덤으로 모든 인류에게 남은 수명을 전달하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남은 수명이 메시지로 연락이 온다. 아버지가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세상은 엉망진창이 된다.
신이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전제, 더 나아가 인류가 신을 숭배하는 이유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 채 하루를 불안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에아 덕분에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게 된 인간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이는 괴짜신이 인간을 가지고 조종할 수 있는, 인간이 신을 숭배하는 유일한 전제가 어긋남을 의미한다. 또한 죽음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점, 이 곳에서 이 영화는 죽음을 직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직시할 때 우리는 생을 직시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걸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18명으로 새로운 사도를 채우기 위해 에아가 찾는 6명의 사도의 각기 다른 욕망과 함께 이 영화는 이 땅, 지상,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형적으로 기독교가 反현실적이며, 이 세계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천국과 하나님의 땅을 기약하는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이 영화는 신성모독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단순히 성서에서 모티브를 딴 것만으로는 끝날 수 없을 것이다. 도마엘이 단순히 “18 제자 재밌겠는데?” 이런 생각으로 성서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참 발칙하고 귀엽지만, 기독교 사상에 입각하면 이는 신성모독이다. 새로운 신약성서! 말 그대로 이 영화는 기존의 기독교적 사상을 깨 부시고 반기를 들고자 한다.
출아파트기 이후는 에아가 찾아 나선 6 사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렐리, 장 클로드, 마크, 프랑수아, 마르틴, 윌리의 각기 다른 욕망으로 기독교에서 금기시되는, 반 기독교적인 그러나 인간다운 욕망을 되찾는 모습을 그린다. 이 6명의 사도들은 정결하지도 않고, 암살자도 있으며, 주어진 성 정체성이 불안한 자도 있고, 동물을 사랑하는 자도 있다. 이는 성경에 모두 금기시 되는 것들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신도들은 하늘나라를 꿈꾸며 신께서 지키라 명하신 것들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약성서라는 이 영화에서는, 그로 대표되는 이 여섯 사도들은 하늘나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한다.
사실상이 여섯 사도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현대에서 논란거리면서 꼭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진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들 이슈가 되지만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되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합리주의 이성주의, 그리고 기독교주의로 잃어버린 우리의 욕망과 그 근본적인 것에 대한 충실한 성서인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존 서양의 오래된 사고에 대한 반기이다. 그것들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나 금기시 되어 왔던 것들과 결핍, 장애,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루나 이 영화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정서들은 영화 속 설정의 귀여움과 영화 사이사이에 깔린 위트들로 인해서 중화된다.
그러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에아와 결국에 세상을 초기화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여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사상에서 여신이란 없다.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지 딸도 아니며, 12제자들에 여성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신의 자식으로 내려온 것은 아들이 아닌 딸인 에아이며, 기존의 괴짜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바꾸는 것도 어머니인 여신이다. 기독교주의가 남성주의와 결부되어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여성주의적인 요소들은 철저히 한 번 더 반기독교적인 면모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꼭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알면서도 끌어안고 있는 구시대적인 사고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허락해준다.
사실 이는 전혀 어려운 이야기들이 아니다. 매우 단순하다. 당신의 지금의 삶을 사랑하라는 것! 에아가 지상에 내려와서 처음에 빅토르 만나 한 말을 기억하는가? “천국이 바로 이곳이다.” 바로 여기! ici! 그렇다. 천국은 하늘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현대인데 왜 자꾸 사람들은 근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가? 왜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하늘나라에서만 구하는가? 구시대 근대의 시절에는 천국이 하늘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는 행복과 천국은 바로 지상 여기(ici)에 있다. 새로운 신약성서는 말한다.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