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레오의 것만이 아니다

헤르타 뮐러, "숨그네"를 읽고

by Lace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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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 "숨그네", 박경희 역, 문학동네, 2014.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폴트 아우베르크(이하 레오)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지만 러시아인들에 의해 히틀러가 저지른 일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강제 노역을 하러 가게 된다. 소설은 레오가 수용소로 가기 위해 짐을 싸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레오를 걱정하지만,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것이 시원하다. 그는 마을에서 적발되면 살아서 사랑할 수 있는 몸으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레오의 5년은, 그가 밟았던 수용소는 어떠했던가. 정말 그가 차라리 도망가고 싶던, 고향을 벗어난 그 곳은 어디였는가? 그곳은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이 무너지는 곳, 늘 배고픔이 떠나지 않는 곳이었다. 허기만이 가득한 곳, 배고픈 천사들이 있는 곳.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레오라는 한 청년이 수용소에서 간 일, 그 수용소에서의 그의 삶과 그로 인해 변해버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레오는 시멘트를 나르고, 석탄을 푸고, 붉은 벽돌을 나르고, 역청을 옮기고, 슬래그벽돌을 치우고, 오로지 노동만을, 단순한 노동만을 한다. 수용소에서 그의 삶은 노동, 아니 노역으로 점철된 삶이었고 그곳엔 다른 것도 아닌 허기만이 배고픔만이 늘 그와 함께 있었다, 그곳을 나와서 까지도. 햇수가 지나갈수록 수용소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붙이기 어려운 생활들을 한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오로지 노동뿐이며, 늘 배고픔에 허덕이며, 머리에는 이와 몸에는 벼룩들이 들끓고 하루하루 더 볼품없어질 뿐이다. 뼈와가죽의시간이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들이 먹는 것으로 치환되는 곳이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파우스트"는 각각 소금 1되와 설탕 1되가 되었고, 그가 짐을 싸왔던, 그와 함께 더불어 왔던 것들은 설탕이나 소금 그날의 저녁으로 바뀌기 바빴다.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은 살아남지 못하고, 단순히 죽음은 옷가지를 더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탈바꿈되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는, 도저히 인간의 삶이라고는 할 수 없는 끔찍한 수용소의 상황 속에서도, 역설적이게도 “숨그네” 속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 있고, 그에 대한 의지가 있고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레오가 잊지 못한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말과 흰 아마포 손수건 같이.

수용소 속에서도 레오는 각자의 이름을 기억하며 개개인의 이야기로 그들의 별명으로 지어준다. 한 마리의 노동자가 아닌, 트루디 펠리칸은 트루디 펠리칸으로 베아트리체 차켈은 베아로, 알베르트 기온도 알베르트 기온으로 남는다. 그들의 모습은 처음 이 수용소를 밟았던 날들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들은 단순히 노역을 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그래도 살 수 있게 된다. 크리스마스엔 어설픈 트리를 만들고, 그들이 행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카티의 빵을 지켜주는 것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자 한다. 많은 것들은 잊어버렸지만, 동시에 또한 어떤 것들은 잊지 않는다. 레오는 그래서 할머니의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을 잊지 않고, 늙은 러시아 여인이 준 흰 손수건도 먹을 것들로 바꾸지 못한다,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만 치환되는 그 굶주림의 생활 속에서도.

그런 것처럼, 레오가 어떤 것들은 끝까지 지켰던 것처럼, 수용소에서의 5년과 같은 급작스러운 공포와 굶주림 또한 영원히 남는다. 수용소 밖을 나와도, 더 이상 배를 주리지 않아도,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어도 영원히 삶에 흉터를 남긴다. 레오에겐 영원히 허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듯 숨길 수는 있지만, 그 날과 그 시절에 대해 침묵할 수는 있지만 그런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실제로 뮐러의 아버지가 침묵했던 시절과 어머니가 침묵했던 시절처럼 침묵해야만 하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역사에 의해, 사회에 의해 후에 침묵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침묵은 레오의 것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 모두의 것일 수도 있고, 모두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헤르타 뮐러는 "숨그네"를 씀으로써 그 침묵을 깼다. 침묵은 이처럼 깨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 모두 침묵해야 하는 시절을 알고 있고, 그 시절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침묵을 깨야하는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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