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재심"하라

영화, <재심>을 보고

by Lacedie




재심 2 再審

1. [법률]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송 당사자나 기타 청구인이 그 취소와 변경을 청구하여 다시 하는 재판
-출처, 다음 한국어 사전



재심이란 위처럼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는 영화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내렸던 판단들에 대해서, 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였다.


영화는 이 영화의 주된 사건이 되는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에 따른 다양한 사건들이 더 드러나고 밝혀지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추적하고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이 이 사건을 처음부터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우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영화 감상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초점은 “법에 대한 폭로”에 맞춰서 감상하게 되었다.



진실한 법 집행이 좋은 정부의 대들보이다.


시드니 루멧의 “12 angry men”의 시작에 나오는 문장이다. 영화에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이준영 변호사는 법이라는 것과, 법이라는 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지금 어떠한지를 잘 대변하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그에게 변호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로펌도 그런 식으로 운영된다. 그에게 변호란 어떤 가치나 신념을 옹호하고 대변해주기보다는 파는 것이다. 그런 그는 현우를 만나서 그 생각에 변화를 가지게 된다. 현우가 살인자로 낙인 된 그 사건을 준영은 조사할수록 부당한 판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한순간의 실수들과 몇몇 사람들의 직업의식 실추와 가치나 진정성과 같은 것들이 전혀 중요한 것이 되지 않을 때, 그것들이 한 인간의 삶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나.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의 길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현우를 보면 부조리함을 느끼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사회가 느껴졌을 현우가 안타까울 뿐이다. 사회에 대한 낙망을 사회가 만들고 이는 분명 사회에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결국엔 그 사과를 받아준 현우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고. 삶에는 역시 돈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 그럼에도 빛나게 되는 결말들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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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실 상 최소한의 제도일 뿐이다. 법이 모든 것들을, 모든 가치를 수호해줄 수는 없다. 최소한의 제도이고 그렇기에 그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후 “12 angry men”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내용에서도 배심원 제도가 개인이 바쁘다는 이유로 주어진 사건을 고려 없이 끝내려고 한다. 그러나 법 판단이 재고 없이 반성 없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상당히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판사가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불성실로 임하지 않았다면, 법이 수호하는 것들을 그 가치를 잊지 않았다면 현우과 같은 피해자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법이 최소한의 제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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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이라는 단어처럼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주요 인물인 살인자로 잘못 알려진 현우와 돈을 위해 법을 수호했던 준영이라는 변호사가 현우의 재심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두 인물 모두 감정선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재심이라는 단어처럼 이들은 각자의 삶 앞에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들에 대해서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그 가치관을 바꿔나간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어느 누군가에게 법에 대해서, 진실과 진정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고 생각을 바꾸도록 호소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영화를 두고 차라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다시 보는 것이 낫다고 하는 리뷰들을 보았다. 물론 세상에 숨겨놓았던 어떠한 사건과 진실들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는 그 사건을 더 명확히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것과 다르게 다른 것들을 더 자극할 수 있다면 그건 영화가 가진 “호소력”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중간중간 너무 의식될 정도로 극화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장면들이 나는 불편하긴 했지만, 그런 장면들이 때로는 어떤 이에게 호소를 하고, 감정을 더 깊게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가 가진 호소력을 믿고 싶기에 이 영화가 단지 사건의 전달을 넘어 어떤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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