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cedie Mar 10. 2016

필름 카메라로 순간을 담다.

  


  우리 집에는 필름카메라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필름카메라는 나에게 조금 특별하다. 엄마와 아빠가 신혼일 때 그 둘의 데이트를, 내가 어렸을 때 한, 두 살 먹어가며 성장하는 내 모습을, 가족의 피크닉을,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억을 찍어준 놈이다. 아니, 할아버지구나. 우리 집은 한번 산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고 거기다 잘 버리지 않는 편이라 엄마가 처녀 때부터 사용해왔다던 그 카메라는 물론 최근 5년간은 잘 쓰지도 않았지만, 어디 가지 않고 집안 어딘가에 잘 숨어 잘 살고 있었다. 없어졌거나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동생과 나는 낭만적인 척 하는데 (특히 내가) 푹 빠져있어서 필름카메라를 찍는 취미를 갖고 싶었다. 하나 장만하려했는데, 동생과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서는 엄마와 아빠는 기억 속에서만 자주 보였던 그 카메라를 사용해보라고 하셨다.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카메라. 나는 거의 디지털 세대라 필름을 껴서 사진을 찍었던 경험은 가져보지 못했다. 동생과 나는 필름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십 년 전에는 사진을 찍을 때 했었던 당연하고도 단순한 일련의 행동들, 필름을 사서, 필름을 끼우고, 와인더를 돌려 사진을 찍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고 필름을 다시 빼는 일이 너무나도 쉬운 일이겠지만, 필름 카메라를 처음 사용하는 나는 필름을 끼는데도 제대로 끼지 못해 필름 하나를 버리고, 뺄 때도 빼는 법을 제대로 몰라 카메라 뚜껑을 실수로 열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터치 한 번으로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는 디지털카메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모든 단계에 내 손길이 닿는 그런 행위들, 특히 사진을 다 찍고 필름을 다시 되감기 위해 돌리는 그 수동적인 기계 동작, 필름을 돌리는 그 느낌은 상당히 멋스럽고도 설레는 느낌 났다. 


  동생과 내가 산 필름은 총 36번을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 필름카메라는 셔터를 잠깐 누르는 36번의 기회를 내게 허락했을 뿐이지만, 그 한 필름을 다 쓰지도 않은, 그 짧은 시간에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한 장면 당 3~4번씩 무의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이 셔터를 손쉽게 눌렀던,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을 그 필름 카메라는 36번도 안 되는 셔터를 통해 알려주었다. 

  어쩌면 너무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리인 것, 모든 것들은 순간이며, 그 순간들은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게 되면서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고, 촬영으로 남길 수 있다 보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다. 무한한 기록의 가능성이 나에게 찰나를 망각하게 한 것이다. 필름도 어차피 기록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동안 친구들과의 모임과 또는 여행에서도 디지털 카메라로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왔다. 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서 수많이 그렇게 사진을 찍다보니, 그 순간을 느끼는 것보다는 사진을 찍는 게 더 중요하게 되어버릴 때가 많았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가도 그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기록하기 위해 애쓰느라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공연을 보기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주객전도가 많이 일어나곤 한다. 또한 디지털은 많은 것들을 기록할 수 있고, 저장할 수 있다. 그 디지털의 엄청난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내가 찍는 모든 사진들이 똑같이 소중한 것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셔터를 누르고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지우고, 수정하고, 변형한다. 그 가능성이 내가 수많은 사진들을 강박적으로 찍게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필름카메라는 제한적이다. 정해진 컷만큼, 필름이 허락하는 만큼만을 기록할 수 있다. 그것이 좀 더 여유로운 템포로 세계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 기술이 내게 주입시킨, “조금이라도 예쁜 것은 모두 기록해야 해.”, “수정을 하고, 변형을 하면 되니까 일단 괜찮은 것 하나만 걸리게 많이 찍자.” 라는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해준다. 필름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다다. 너무 간단하고 단순한 동작이어서 어이가 없기도 하다. 찍으면 돌이킬 수도 없고, 맘에 안 든다고 삭제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장을 찍어서 한 장이야 건질 수 있겠지만, 셀카를 100장 찍어 1~2개를 남기는 그런 식은 어렵다. 얼마 안 되는 기회인만큼 셔터 한 번, 한 번을 신중히 누르게 된다. 그 순간들이 얼마나 순식간이며 또 얼마나 소중한지. “엇, 아차!” 하는 순간 찍히고 돌이킬 수 도 없다. 잘못 찍으면 잘못 찍은 대로 단 한 장은 그 한 장을 위해서만 쓰인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은 너무 쉽게 전제하는 생각들 “이 중 하나는 건지겠지.”, “마음에 안 들면 지우면 돼.” 그런 마음들이 내게 늘 있었다. 하지만 제한을 두면 사람은 늘 그 소중함을 몸소 느끼기 마련이다. 36번밖에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꼭 찍고 싶은 것들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제 때인 순간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말 결정적인 그런 순간들을, 오랜 인내의 시간들을 가지고... 그런 마음이 좀 더 내 주변의 세계를 한 발짝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게 하고, 여유를 가지고 그 순간을 만끽하게 했다. 그 때 느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소중히 하는 순간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던, 필름 카메라를 들던, 내게 카메라가 없던 다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필름을 채워가며 순간을 느끼고 사랑하는 경험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또한 필름 하나를 다 채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가는 일은 또 어떠한가. 필름 카메라가 설레는 이유는 이것이다. 필름을 다 쓰고 현상하기 전에는 내가 잡았던 프레임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런 설레고 궁금한 마음을 품고 사진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또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찍자마자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사진이 맘에 드네.” “별로네.” 라는 생각에 그 순간을 너무나도 쉽게 지워버리는 그런 디지털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모두 이런 것이 순간을 사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인화된 사진 중에 찍는 순간과 표정을 짓는 순간이 맞지 않아서 웃기게 나온 사진이 있었다. 그런 사진들도 웃으며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는 것. 아무래도 삭제라는 버튼 하나 누르는 것보다 인화된 사진을 찢어서 버리는 것이 더 마음이 어렵지 않겠는가. 


  내가 지난 날 필름카메라라는 소박하고도 작은 것을 통하여 얻은 것들은 참으로도 소중하고 예쁜 것들이었다. 현대인인 나는 기록하고 싶을 때에 수십만 장의 사진들을 찍어가며 사진첩에 몇 천 장이 넘어가는 사진들을 모으고, 그 사진들이 기억도 잘 안 나는 여기 저기 저장소와 어딘지도 모를 가상 속에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은 채 흡족한 마음을 갖는 것은 여전하나, 설레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 소중한 순간을 느끼지 못하고 순간에 순간, 또 여러 순간들을 그냥 흘러가게 놔두고, 그런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지내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는 않나? 넘쳐나게 되는 삶, 너무 넘쳐나서 낭비하는 삶, 순간을 낭비하고 순간을 소중하게 하지 못하게 되는 삶, 나는 현대인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넘쳐나서 작은 것들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가 많은 그런 삶들을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영원히 기록할 수 있고 그러기에 어느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기술의 편안함이 삶과 세상에 대한 체험의 안이함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의 문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것이 가치가 있어도 지금 깨닫기 어려우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은 다시 많은 것을 되찾게 해준다, 내가 필름카메라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듯이. 지금과는 익숙하지 않은 잊어버린 시대로의 잠깐 사이의 귀환. 한번 쯤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건 단지 추억만을 다시 불러일으켜줄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가면서 나름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꽤 괜찮은 기회들이 될지도 모른다.       




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몇 장 올려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을 살게 할 숲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