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다, 여름 서스펜스.
0707(무슨 007 같은) 오늘은 소서다.
이제부터 눈치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니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장마는 원래 주룩주룩 일주일 내내 주구장창 비가 와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늘과 눈치게임을 하는 시기로 변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비가 그칠지 우산을 가져갈지 말지, 장화를 신을지 말지 잘 판단해야 그날 하루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비가 와서 신발이고 옷이고 가방이고 다 젖었다. 심지어 무려 막 세탁을 마친 운동화였는데!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다 젖은 운동화를 신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분명 내가 신은 건 운동화인데 물웅덩이를 신은 것처럼 질척질척하고 철벅철벅하고 걸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번엔 꼭 장화를 신고 가겠다! 그래서 젖는 신발을 신는 기분을 느끼지 않겠다! 출근을 해서도 뽀송뽀송한 발을 사수하겠다! 그런 다짐으로 장화를 이틀이나 신고 갔는데 비는커녕,,, 답답하고 장화 안에 습기 차서갑갑한 하루를 보냈다. 완패...
이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 새벽에 비가 많이 오면 다음날은 비 소식이 있어도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날씨 앱이 비 소식으로 울고 있는데도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제 올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날씨 앱을 열심히 보는 계절이 또 없다. (겨울 포함, 추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난 쨍하고 에너지 넘치고 때로는 사람을 넉다운 시킬 정도로 작열하는 여름을 좋아했는데, 이제 좀 여름이 싫어지려고 한다. 넋이 빠진 채로 요즘 지내는 것 같다. 더워서 기운도 없고 적당히 뭘 먹을 수도 없다(더워서 찬 게 먹고 싶은데 속이 계속 탈 나니까 따뜻한 걸 먹어야 하나 싶은데 또 그건 안 땡기고, 그래서 결국 식욕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여름이란 계절이 좀처럼 살기 힘들고 적응하기도 어려운 계절이었구나. 반성.
절기라는 게 참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입춘이라는데 이렇게 추워도 되는 게 맞는 건지, 우수인데 눈이 와도 되는 건지, 소서인데 무려 작은 더위인데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지. 사실 작은 더위는 맞다. 이제 7월 초인데 더워하면 안 된다. 7월 중순을 넘어 8월까지 그리고 9월까지도 더위가 이어질 거라는 건 우린 잘 아니까. 여기서 더위에 굴복하면 안 된다.
그래도 큰 더위를 지나 아니 무슨 벌써 입추야? 할 날이 올 때까지 이번 여름을 잘 보내고 싶다. 뭐 그런 다짐으로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