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청춘의 넋두리니 듣고 싶은 사람만 들어주세요."
"제 청춘의 넋두리니 듣고 싶은 사람만 들어주세요."
우리는 쓸모없는 젊은이들
우리는 갈 곳 잃은 톱니바퀴
세상은 내 것이 아닌 가봐 역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 우린
useless generation
우리는 쓸모없는 젊은이들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세상은 내 것이 아닌 가봐 역시
우리는 가질 수가 없네 아무것도
useless generation
Dead Buttons-Useless generation
한 때 세상은 내 것이고, 나는 그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적 내 삶은 작은 일에도 지옥 같았는데, 그래도 나는 소설이나 만화 속 주인공처럼 언젠가는 다 괜찮아지는 그런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왜 해리포터에게 호그와트가 생기듯, 나도 어떤 시기에 이르면 내 삶의 전환 같은 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런 전환을 기대하기에 나이를 먹어서 이제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사춘기가 이미 훌쩍 지났는데도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언젠가는 짠하고 내 삶이 변할 거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 덧없게도.
이번 학기만 마치면 나는 졸업이다. 하지만 어디 가서 4학년이고 이제 곧 졸업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4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이루어 낸 것이 없다. 아, 취업을 위한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 없다. 3학년 때 영화를 좋아하게 되어서 뒤늦게 영화를 찾아봤다. 처음엔 소위 예술영화라고 영화관이 부르는 것들, 그 후엔 더 알게 되어 한국 영상자료원이나 시네마테크도 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생소한 언어들이 가득한 세계였음에도 그 속에 있을 때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그 뒤 인스타그램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염탐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내 머리 속에 강박처럼 자리 잡았고, 지난여름 나는 토익공부와 자격증 공부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고전 소설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영화들을 접하고 더 많은 글들을 썼다. 그래도 전공인 철학에 대해서, 고전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것들을 접한 시간들이 충만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다니며 4년간 나에게는 충분히 대체 불가능한 그런 시간들을 보냈지만, 세상이 보기에는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살았냐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말하자면 실용성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세상의 눈으로는 실용적인 가치가 없는, 미래를 위한 가치가 없는 시간들은 낭비한 시간들이 된다. 누가 시간을 그런 가치로 판단할 수 있나 의아스럽지만 뭐 그렇다고 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본다면 대체 4년 동안 무엇을 했냐는 질문이 내게 올 것이라는 것이 뻔하다.
니체는 25살 때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레몽 라디게는 16~18살 때 "육체의 악마"를 썼다. 트뤼포는 자신의 나이가 18살 때, 장 콕토와 같은 영화도 만들 수도 없고,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도 써낼 시간이 없다고 한탄했었다. 그러나 그는 시네필의 초상이 된다. 그는 하루에 영화 3편과 일주일에 소설 3권이면 인생이 행복하다 했다. 매일 밤 시네클럽을 전전했으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나는 인생에 빚을 져가면서, 타자기를 훔쳐서 팔아가면서 자신이 염원하는 것에 몰두하는 열정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트뤼포가 될 수 없다.
대체 재능이 없다면, 트뤼포처럼 열심히 공부하거나 대범하거나 하지. 나는 그 둘 중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하루에 3편의 영화를 볼 만큼 미치지도 못했고, 매일 같이 글을 써내는 사람들처럼 성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남들이 다 하는 공부를 하고 있지도 않다. 차를 끌고 집은 나왔는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 아직도.
정말 쓸모가 없다. 내가 그렇다. 수많은 곳에서 여러 가지의 일을 접해봤으나 그 어디 곳에서나 나는 대체 가능한 존재였다. 동네 빵집에서 벗어나 처음 콜센터에서 일을 해 보았고, 한 명의 사람에서 노동자로 바뀌었다. 더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언제나 대체 가능한 사람이었고, 어쩔 때는 수량화되고 계량화 되었으며 그것들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아직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에게 내가 대체 가능한 것처럼, 나도 얼마든지 내게 돈을 주는 회사가 대체 가능했다, 아르바이트에 국한된다면. 이 사회에서는 모든 것은 환산되고 대체 가능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것들도 환산 가능하고, 대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사회의 계산법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내자면 나는 정말 쓸모가 없다. 난 닳고 나면 언제든지 새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이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커다란 기계 속에서 필요한 톱니바퀴도 아니다.
세상은 자꾸만 나에게, 우리에게 쓸모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쓸모없는데 그 우리 중에서도 아무것도 할 일없이 지내는 나는 더 쓸모없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다르게 나를 더 괴롭게 한 건 슬프게도 내가 예찬한 지성이었다. 더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쓸모로 평가되는 존재가 아닌데 실제 이 바닥에서 그렇게 취급을 받고 그것이 아니라는 이상을 아니까 더 괴로워졌다. 그런 식이다. 그러니까 묻고 싶은 거다. 우린 정말 쓸모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