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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Sep 09. 2018

우리는 선택을 했다, 그 기로에서

영화, "체실 비치에서"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라는 철학자를 설명하는 간단한 말에 이런 말이 있다. “B와 D사이의 C”,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생을 살아가는 실존철학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실존철학이 뭐 말하자면 저렇지만 철학을 논하자면 나름 긴 이야기라는 것은 알지만 일단, 여기선 )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이 C라는, 선택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을 흘러가게 해주는지 보여준다. (조금은 더 복잡한 “미스터 노바디”라는 비슷한 주제의 영화도 있긴 하지만) 이 영화, "체실비치에서"는 사랑이란 이야기의 서사를 빌려서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천천히, 그리고 단순하게 그린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결혼식 날부터 시작해서 영화는 중간중간 플래시백으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토록 다른 그 둘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를 보여준다. 어색한 기류가 누가 봐도 흐르는 두 사람은 정략결혼이라도 한 걸까 싶을 정도로 서로한테 조심스럽고 그래서 영화 초반과 영화 초반에 설정하고 있는 현재 시점 분위기는 불안하다, 곧 탁자 끝에 유리잔이 아슬아슬 놓여있는 것처럼.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생을 살며 살아왔던 둘이다. 그런 둘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함께”를 약속하게 된다. 서로는 서로 함께할 것을 선택한다.   

  서로가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하게 된 건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선택하고 자신의 것을 서로 조금씩 내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고 당시 영국의 분위기는 아마도 더 그러지 않았을까?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처럼 환경이 다르면 맞춰가야 할 것도 많다. 플로렌스는 엄마와 아빠를 설득했을 것이고, 에드워드는 창고 사무실에서 일하고 플로렌스의 아버지 밑에서 일할 것을 감수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 내어주면서 서로의 삶을 함께하기로 선택한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선택이 근데 이 영화처럼 단 하루 만에 깨어질 수 있다는 게, 모든 연인들이 오늘 못 보면 죽을 것 같이 사랑하다가 갑자기 서로에게 꺼내지도 못할 말들을 꺼내며 욕을 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상처주며 헤어진다. 이 두 연인 또한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는 서로 사랑한 기간보다 짧게 나오나 체실비치를 기점으로 그들은 돌아서서 다른 길을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서로 헤어지기로 선택했다. 

    영화 포스터에 나와있는 말처럼 에드워드는 단지 서툴렀을 뿐이고, 플로렌스는 두려웠었다. 그들은 불안하고 서툴러했기에 사랑하기로 선택했던 결정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선택하게 된다. 아마도 소설 구절에 나온 말을 따온 것 같은 포스터의 아래와 같은 구절은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래서 다르게 흘렀던 삶이 앞으로 영화에 나올 것임을 말해준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시간은 흘러서 에드워드는 나이를 먹고 플로렌스의 딸일 클로이를 가게에서 마주하고 그 뒤에 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라디오를 통해서 플로렌스의 소식을 듣게 된다. 서로 사랑하던 시절에 플로렌스가 그를 위해 모든 연주를 받친다는 말에 그렇다면 나는 C열 어떤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너에게 브라보를 외치겠다는 에드워드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머리가 다 새어버린 그 노년에 그 사랑의 약속을 실현해낸다. 에드워드도 플로렌스도 그 긴 시간을 지내오면서 만약 우리가 그 체실비치에서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녀를 붙잡았더라면, 그녀가 자신을 고백했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는 길을 선택했더라면, 계속 되뇌이며 생각하지 않았을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그 경계선을 넘어가면 나의 자아가 끝난다.)에 매혹을 느낀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355쪽, 민음사. 

자신이 소설에서 쓰는 길은 자기가 갈 수도 있었던 다른 길들이기도 하다고. 생은 순간의 기로에서 선택으로 그 명을 이어나가고 우리는 그 걸어가는 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달라질 길들을 반추하며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쿤데라의 소설과는 다르고, 쿤데라의 말과는 같게 우리는 그러지 않았더라면의 우회된 길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두 연인은 과거형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체실 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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