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by Lacedie


관계를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쇼코의 미소"의 이후, 최은영의 소설을 다시 손에 쥐었다. 자의는 아니었다. 독서모임 선정 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아니라면 난 최은영의 소설을 보지 않았거나 아주 오래 지나서야 읽어봤을 것이다. 최은영의 소설은 좋다. 그녀의 인기에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젊은 작가상에 수록된 “그 여름”을 읽고는 그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은영의 소설은 -그래서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일요일 오후처럼 나긋나긋하고 노곤 노곤한 목소리가 나서 마음에 든다. 물론 그 목소리 안에는 서늘함이나 뚜렷함이 감추어져 있지만. 책 전체를 아우르는 최은영 작가의 문장의 목소리가 그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안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서 좋다.



맨 앞에 수록된 “그 여름”이라는 작품은 이경과 수이가 고등학교부터 청년 때까지 함께했던 짧고도 소중하고 사랑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이경의 회상으로, 이경과 수이는 이미 많은 시간들을 건너왔고, 서로가 서로를 아직 이해할 수 없어서 헤어져야 했던 이별의 순간을 그린다. 서로가 만나서 사랑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실재하지도 않게 그 여름으로만 머물러있다. 서로에게 어쩌면 어떠한 상흔으로 남아버린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사랑을 겪고 대부분의 경우 헤어짐을 겪고 사랑했던 추억들은 상처로 남는다.


해당 소설집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도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차마 알지도 못했던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수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경, 모래의 아픔을 몰랐던 나비, 숙모의 사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혜인, 가족이 결국 버릴 때까지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랄도,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미주. "그 여름"을 시작으로 소설은 "고백"을 거쳐 "아디치에서" 우리가 서로를 상처 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그 운명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다.



나비는 모래에게 모래 나름의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모래는 상처 따위 모를 것이라며 단정 지어 버린다. 그래서 나비가 모래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오히려 모래에게 상처를 남긴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주는 사람이 될까 봐 자신을 단속하고 기대하지 않는 소설 속 인물들은 나비가 자신의 마음을 단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교사에게 역시나하는 마음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본인이 모래에게 상처를 주었음은 모른다. “고백”의 미주 또한 진희의 일이 주나의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어떠한 눈빛을 진희에게 보냈는지는 정작 의식하지 못한다.


당시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 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최은영, "모래로 지은 집", 181쪽.


항상 내가 고민이었던 것은 "상처는 사라져 버리지 않고 돌고 돌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걸까?"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내게 깊은 흉터를 남기고 또 그 상처를 나는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떠넘기고, 또 내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상처라는 건 도무지 혼자 안아서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아디치에서” 엄마마저 포기하게 했던 랄도라는 인물은, 마음에 아픔과 상처와 괴로움이 있기에 집에만 칩거하고,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는 시간을 고향에서 보냈다. 우연히 오게 된 아일랜드에서 그는 하민을 만나며 다시 생을 마주하게 된다. 아디치까지 도달하여 이 책을 덮으면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비록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우린 결국 사람으로 인해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관계를 포기하지 말자고.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최은영, "고백" 중


“고백”의 구절처럼 사람이 필요한 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리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끔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도, 그래도 다시 그 상처를 덮어주는 사랑을 서로에게 주면서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성장해나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길”의 마지막처럼 같이 어두워지더라도 희미한 빛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그렇게 서로 함께.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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