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아키미 <바나나피쉬>와 그리스 비극의 담론
요시다 아키미의 <바나나피쉬>
<바나나피쉬>는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연재한 요시다 아키미 선생님의 대표 작품으로 2018년에 애니메이션화 되어 더욱 인기를 끌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주인공 애쉬가 '바나나 피쉬'를 접한 뒤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범죄, 스릴러 만화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작품 속 일련의 사건 보다도 애쉬의 삶과, 또 다른 주인공 에이지와의 애틋한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바나나피쉬>의 전반적인 구성과 애쉬의 삶이 어떻게 그리스 비극과 유사한지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실제 공연이 되었던 그리스 비극과 비교하기 위해 원작 만화책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극시의 질적 구성요소
우선 <바나나피쉬>를 <시학>에서 언급하는 비극시의 6가지 질적 구성 요소에 대입해 보도록 하자.
6가지 요소 장경, 노래, 조사, 사상, 성격, 플롯으로 그중 앞에 3가지는 애니메이션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요소들이다.
'장경'은 가시적 무대장치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작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바나나피쉬에서는 맨해튼의 거리 묘사와 액션신 등이 굉장히 사실감 있게 표현되어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두 번째 요소는 '노래'이다. 1900년대 뉴욕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인물의 관계를 극대화시키는 bgm과 하나의 회차(막)가 끝나고 이어지는 엔딩곡은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며 막과 막사이에서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가령 <Hometwon>이라는 수록곡은 두 주인공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또 다른 수록곡 중 하나인 <Leaper>는 애쉬가 자유의 실체(에이지)를 발견했을 때 한줄기의 빛을 본듯한 희망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세 번째는 '조사'로 조탁된 언어 즉, 대사를 말한다. 바나나피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여러 문학을 인용했다는 점인데 이로 인해 잘 정제되고 조탁된 언어를 볼 수 있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이 독백이나 대화의 형식으로 잘 나타나있다. 주인공 애쉬는 자신의 심리 상황을 설명할 때 종종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을 인용한다. 이외에도 작품 전반적으로 문학이 녹아져 있어 감상자로 하여금 더 쉽게 이해되도록 해주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사상'과 '성격'이다. 사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아니고 대상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성격 또한 'character' 보다는 인물의 행동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애쉬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헤쳐나가고 어떠한 사유, 인식 능력을 가졌는지, 극 중 대상(애쉬)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의도에서 나온 행동인지 보여줌으로 사상과 성격은 명확하게 드러나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애쉬의 행동이나 선택은 대부분 자유를 갈망하는데에서 출발하며, 자신에게 있어서 자유의 상징인 에이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노력을 함으로써 드러난다.
마지막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플롯'이다. 24화에 걸쳐 전개되는 내용들이 모두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개연성과 필연성을 수반하고 있어 구성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1화에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바나나피쉬를 손에 넣음에서부터 시작되는 방대한 서사는 24화까지 흐름을 지키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바나나피쉬>가 플라톤이 생각하는 '좋은 비극시'의 조건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앞으로 언급할 내용은 바나나피쉬를 모두 봤다는 전제하에 작성된 글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연민과 공포의 스펙트럼
우리가 비극시를 재미있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극 중 상황 속에서, 인물의 행동들이 나중에 있을 비극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애쉬가 가지는 바나나 피쉬에 대한 호기심은 동료들의 잇따른 죽음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죽음까지 유기적 인과관계로 연결된다. 이러한 필연적 과정 속에서 감상자는 연민을 느끼게 되고 죽음이라는 일상적 소재가 다가옴으로써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중간적 인물인 주인공
비극에서 주인공은 엄청난 초인이거나 악인이 아닌 우리가 봤을 때 납득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중간적 인물'이어야 한다. 얼핏 보면 애쉬의 비범한 두뇌, 뛰어난 상황판단, 좋은 운동신경 등의 요소로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인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에이지)을 지키기 위해 절친(쇼터)을 죽이는 과정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 보이는 약한 모습을 통해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을 알 수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였기에, 결말의 불행에서 연민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수가 불러온 나비효과
또한 비극에서 주인공이 불행을 겪는 원인이 악덕이나 비행 때문이 아닌 '치명적 과실(hamartia)' 이어야 한다. 치명적 과실이란 실수 자체는 심각하지 않으나 그로 인한 파장이 큰 것을 말한다. 애쉬가 죽게 된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라오에게 신 스우린과 결투의 취소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실은 애쉬를 죽음이라는 어마한 파장을 몰고 와 비극성을 강조시켰다.
급전과 파토스
비극에서 매혹적인 요소로서 '급전'과 '발견'을 들 수 있다. '급전'은 이야기의 전개가 반전되는 것을 뜻하고 '발견'은 비밀이 밝혀져 '무지'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수반되었을 때 '복잡한 행동'이라 부르며 주인공의 고통을 뜻하는 파토스와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들이 갖추어졌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비극의 플롯이라 말한다.
급전과 발견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바나나피쉬>는 급전의 요소는 확실하고 발견의 요소는 비교적 약한 것으로 보여지나 급전을 파토스와 함께 제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24화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애쉬의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상자의 연민과 공포의 감정은 불의(unexpected)와 상호 인과관계가 함께 있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이 측면에서 애쉬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 납득이 되지 않거나 뜬금없는 죽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죽음은 예측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그의 죽음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가보았을 때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화부터 보여준 순간의 선택들이 엮여 죽음이라는 결말로 몰고 간 것이다.
해피엔딩의 회피
반대로 비극에서 피해야 할 요소는 바로 '권선징악'의 구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상자가 원하는 대로 악인은 불행해지고 선인은 행복해지는 결말을 그리는 것은 좋지 않은 비극이라 하였다.
모든 시련들을 극복해 낸 주인공이 마지막화 10분을 남겨두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은 독자들이 좀처럼 원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요시다 아키미는 독자의 요구와는 달리 작품의 완결성 위해 권선징악이 아닌 비극을 택했기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만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바나나피쉬와 카타르시스
작품이 끝나고 인물의 감정이 해소가 되면서 덩달아 감상자들도 작품 속에 빠져나오게 될 때 느껴지는 감정이 '카타르시스'라는 해석이 있다. 사실 나는 바나나피쉬를 본 후 작품 속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약 9시간 정도 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상황에 이입하고 격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주인공의 죽음은 엄청난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안겨주었고 이에 벗어나는데 적어도 일주일이 소요되었다. 애니메이션과 원작 만화를 여러 번 반복 감상하고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지금, 바나나피쉬는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나의 삶 일부이다.
나가며
지금까지 바바나피쉬의 전반적인 구성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개념과 간략하게 비교해 보았다. 다음은 두 주인공 애쉬와 에이지의 우정과 아가페적 사랑에 관해 자세히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