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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Dec 29. 2023

회색으로 변해버린 사회 속 작은 사랑이 만들어낸 이야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중심으로



        들어가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이야기는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사건마다의 인물 간의 관계를 하나씩 살펴보면 언제나 사랑이 함께 있었다. 국가의 원칙주의가 그를 좌절시키더라도 주변 인물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로 그는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 영화를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속 비극시의 6가지 질적 요소를 이용해 분석해 보고, 이야기 속에 담긴 따스함을 찾아내고자 한다. 



        플롯, 성격, 사상에서의 연민과 공포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는 대부분의 시간은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정을 이입하여 전개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기에 마지막 주인공이 항소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인물의 통일성을 바탕으로 플롯의 개연성과 필연성이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두 인물 다니엘과 케이티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다니엘은 심장병 판정을 받은 환자로 일을 그만두고 질병 수당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질병수당 대상에서 제외되고 구직수당을 받으려 하지만 이 또한 실패한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만 국가의 지나친 원칙주의와 형식에만 집중하는 태도로 그의 노력이 번번이 좌절된다. 전개가 마지막으로 흘러갈 때쯤 그는 항소의 기회를 가지게 되고 승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심장 발작으로 인해 결국 사망하게 된다. 이야기의 긴밀한 연결 관계가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매듭이 풀리고 마무리됨으로써 관객은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주인공을 중간자적 인물로 내세워,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도 느낄 수 있었다. 다니엘의 작중 행동과 대사를 보았을 때 항상 남을 신경 쓰며 도와주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성격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보다 더 큰 것을 베풀고, 결국 남의 시간을 뺏고 폐를 끼치는 것을 피해 구직수당 받는 것을 포기한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케이티 가족에게 따뜻한 말은 건네어주는 모습은 선인을 모방했다고 볼 수 있다.  


케이티는 런던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창피를 당하더라도 참아가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케이티에게 일어난 사건들도 인과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케이티는 초반부터 밥을 먹지 않고 참아왔는데 이것이 결국 식품보급소에서 통조림을 급하게 챙겨 먹는 행위로 이어진다. 식품보급소 장면에서 그녀가 생리대를 조심스럽게 찾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구하지 못한 생리대를 결국 나중에 마트에서 훔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경비원의 도움을 받게 되는 전개가 펼쳐진다. 한편, 낡은 신발과 식품 보급소의 일로 딸 데이지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게 되고 앞서 만난 경비원을 통해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려고 한다. 이처럼 영화 중간마다 일어난 사건들이 하나의 연결된 필연성을 가지고, 플롯의 통일성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케이티라는 인물의 성격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그녀의 판단, 행동 하나하나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었다.  




        장경, 노래, 조사에 담긴 상징성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플롯과 더불어 장경에서도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롱 쇼트 기법을 자주 사용하여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수당 지급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멀리서 찍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데, 이때 주변에 사람들은 거의 없고 주인공 혼자 걷는 모습에서 쓸쓸함과 고독감이 느껴진다. 또 다른 특징적인 촬영기법으로, 인물의 행동을 벽 또는 문 사이를 통해 멀리서 지켜보게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은 방관자적 시선을 가지게 되고 인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지만, 화면 밖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주었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 주인공이 마지막 항소를 남겨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장면에서는 거울에 비친 주인공 모습이 두 개로 분할되고 거울 밑에 위치한 경고 표시로 인해 보는 사람의 긴장감을 고양시키며 클라이맥스로 다다른다. 이외에도 케이티 집 앞에 다리가 하나 없는 강아지가 지나가거나 욕실의 타일이 깨지는 등 장면 속 사소한 요소들이 영화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대사를 통해서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 전체 플롯을 아우르는 국가의 냉소적이며 무관심한 태도를 비판하는 의도에서 주인공은 “코코넛과 상어 중 뭐에 사람이 더 많이 죽게?”라는 질문을 한다. 이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 딜런에게 한 질문으로 영화 중후반에 가서 딜런은 코코넛이라고 대답한다. 일반적으로는 상어가 더 사람을 많이 죽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사람을 더 많이 죽인다고 메시지를 전달하며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니엘은 대사를 통해 ‘바다’에 관해 종종 언급한다. 다니엘이 튼 노래의 제목이 ‘항해’라는 것을 언급하는 장면이나, 생전 아내의 말을 인용해 “바람에 기대어 먼바다로 떠나고 싶어”라는 말을 한다. 이러한 바다 모티프로 주인공의 현재 답답한 심정이 더 강조될 수 있었다.  



유성 영화로 넘어오면서 영화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음악은 대사나 장경으로 다 표현하기 힘든 심리적인 부분을 보완해 준다. 그러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영화 중간에 인위적으로 삽입되는 사운드트랙이 존재하지 않고 그 대신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음악을 사용하였다. 중간에 들려오는 노랫소리들은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평온한 인상을 준다. 인물의 상황을 떼어놓고 보면 노래는 한없이 평화롭지만 그 상황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집에서 작업을 하며 나오는 라디오 속 음악은 부드러운 멜로디이다. 그러나 라디오 속 앵커가 전달하는 내용은 강풍에 대한 기상청의 주의보이며 주인공 또한 심장병으로 인해 생계가 막힌 상황이다. 또한 블레이크가 질병수당 대상에 들지 못해 상담원에게 전화를 연결할 때 나오는 대기음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경쾌한 느낌은 주는 노래이다. 그러나 노래가 나오는 중간에 삽입되는 신(scene)들은 탈락서류를 바라보는 신, 심장약을 먹는 신, 개의 배설물로 이웃과 싸우는 신 등 긍정적이지 못한 것들이다. 이렇게 노래와 대조되는 상황으로 주인공의 초조함과 답답함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작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위에서 살펴보았 듯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주인공 죽음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영화를 비극적이고 암울하기만 하다고 표현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영화 전체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등장인물들이 언제나 ‘사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본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불’이라는 모티프로 케이티 가족에게 사랑을 전달한다. 작중 초반에 블레이크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케이티네 집에게 전기요금을 대신 내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에어캡으로 데이지 방의 창문을 덮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에어캡이라는 소재는 평소에도 자주 볼 수 있는 사소한 물건이지만 이러한 물건으로도 방 전체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에어캡 자체가 블레이크의 사랑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어 주인공이 물고기 모양 모빌을 선물하는데, “바닷속 같을 거야. 볕이 잘 드는 바다지”라고 말한다. 이 세 장면 모두 빛을 전제로 하며, 차갑고 삭막한 도시 속에서 블레이크는 이들에게 따스함을 선물해주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저녁에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다니엘은 초 4개를 한 그릇에 놓으며 온기가 느껴질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초 하나하나가 케이티네 가족 3명과 블레이크를 상징하며 비록 작은 초이지만 같이 모여 서로 온기를 나누면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다니엘이 케이티네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은 사랑’이란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변인을 향한 사소한 관심과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작품 초반부터 여러 사람들의 작은 손길을 받아 자신이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고 있었다. 목재소의 직원이 도움을 주겠다는 말로 시작하여, 수당 신청 기관의 친절한 직원, 도서관에서 만난 여러 시민들, 블레이크를 친구처럼 대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도와주는 옆집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도와준 케이티네 가족 등 주인공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 속 작은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목표로 나아갔다. 이렇게 작지만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다니엘이기에 케이티네 가족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가며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와 케이티의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담담하게 감상하다가 주인공이 사망에 이르자 엄청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영화를 감상하였을 때는 사건보다 인물 간의 관계나 심리에 집중해서 보았더니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이야기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훗날 시간이 지나 블레이크의 나이가 되었을 때쯤 이 영화를 다시 보아, 새로운 시각으로 또 다른 것을 느끼며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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