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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May 18. 2023

서양미술사의 고찰(고딕, 르네상스 초)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chapter 10-12) 읽고


13세기 서유럽에서는 일정한 양식을 유지하기보다 새로운 해결책과 이념을 모색해 나갔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12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새로운 양식이 나타났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고딕양식이다. 고딕 양식에서는 두 개의 활 모양 늑재를 접합시켜 첨형아치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방식이 건축에서 평평함과 뾰족함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해 주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을 살펴보면 고딕양식에서 수평보다는 수직적 요소를 강조하였음을 볼 수 있다. 고딕양식에서 건물이 높은 하중을 견디기 위해 고안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공중부벽’이다. ‘공중부벽’으로 인해 건물 각 부분의 무게를 균등하게 분배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딕건물의 높고 뾰족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13세기 필사본 삽화를 그리던 북부화가들은 인물의 규칙적 배열을 지키는 것에 더불어 강렬한 감정 표현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저자는 <그리스도 매장>과 12세기의 <수태고지>를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 매장>에서 인물의 감정 표현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두 개의 도판을 비교해 보았을 때 동세나 상황 묘사에서는 감정이 어느 정도 느껴지나 인물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 묘사에서 아직까지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다른 기독교 미술과 다르게 눈에 띄었던 점은 ‘조토’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기독교 회화에서 기록과 내용 전달에 중점을 맞췄던 반면 조토는 성경 이야기가 눈앞에서 바로 전개되는 듯한 ‘환영’을 느끼게 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환영’에 신경 쓴 것은 후에 투시법이나 르네상스로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피렌체 사람들이 화가의 기지와 재주를 자랑거리로 삼으며 미술가들의 명예와 지위는 높아졌고 독립적인 개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점에서 화가들이 단순 ‘장인’의 개념을 넘어서 예술이라는 개념을 개척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미술사라는 분야가 생겨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매장>


13세기 기독교가 장엄하고 엄숙한 것을 중시하였다면 14세기에는 좀 더 세련된 것을 추구하였다. 건축가들은 교회 이외에도 시청, 사무실, 교량, 학교 등 세속적인 것들에 초점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조각도 같은 맥락에서 교회의 석조물보다는 귀금속이나 상아로 만든 소모품에서 작가들의 솜씨를 보여주곤 했다. <성모와 아기 예수>에서 동세를 s자로 휘게 해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정확한 비례를 맞추는 와중에도 세부묘사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토의 미술은 피렌체와 시에나 등에 영향을 끼쳤다. 그중 시에나는 고대 비잔틴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시모네 마르티나와 리포 멤미가 그린 <수태고지>를 보았을 때 13세기 <그리스도 매장>에 비해 표정 묘사에 더욱 신경 썼고 섬세한 형태와 서정적인 감정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베리 공작의 기도서>를 살펴보면 작가는 당시 시대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하고자 하였다. 또 당시 화가 들은 스케치북에 동식물의 드로잉을 해 두어 작업하는 데 참고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시대 사람들이 현실을 묘사하는데 관심을 가졌고 르네상스에 임박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성모와 아기 예수>
<수태 고지> - 시모네 마르티니와 리포 멤미
<5월> - 랭부르 형제


 ‘재생’ ,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토 이후이다. 조토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를 잘 재현했다는 칭송을 받았듯 이 근방 시기의 사람들은 고대 미술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를 칭찬의 척도로 삼을 정도로 고대 미술 재현에 관심을 가졌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고딕 양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고전 건축의 요소를 활용하였다. 당시에는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방식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나 현대의 유럽의 건축물의 대부분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스 미술의 전환점이 단축법이라면 르네상스에서는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건축뿐만 아니라 원근법 측면에서도 투시를 수학적으로 해결해 준 인물이다. 이를 근간으로 그의 주위 화가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쳐 투시가 적용된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이라는 벽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벽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는 ‘환영’을 보여주었다. 마사초에 더불어 조각가 도나텔로도 실제를 근간으로 하여 세밀한 묘사를 하였음을 <성 게르오르기우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만 하여도 인물의 이상미와 세련미를 추구하였다면 이후 반 에이크는 ‘이상화’ 작업 대신 인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본질에 가깝게 다가갔다. 또 반 에이크는 자신과 자신의 그림을 증인으로 내세우거나 유화를 발명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하였다. 

<성 삼위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들> - 마사초
<성 게오르기우스> - 도나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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