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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Sep 25. 2024

⟪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

이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이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우선 아테네가 극중 무대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셰익스피어가 고대 그리스의 가장 번창했던 폴리스인 아테네를 배경으로 극을 썼으니 도대체 어느 시대와 어떤 점에 촛점을 두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일부러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관심 포인트


역시 셰익스피어! 등장 인물 소개를 보는데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라는 이름이 있다. 아테네의 장군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름이 낯설지 않다. 여전히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은 채로 작품을 다 읽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이름이 맴돌 뿐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쨌든 아테네의 번성기가 극의 무대인 듯하니 시기로 따지면 기원전 5세기 쯤이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더듬어 가다보니 그 이름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났다. 셰익스피어는 기원전 5세기의 고대 아테네의 정치 상황과 당시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정치가 페리클레스와 장군 알키비아데스를 이 작품에 소환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극 중에 알키비아데스만 등장시키지만 이미 그 한 사람의 이름 안에 그 시대와 그 사람들이 살아가던 아테네가 배경임을 알키비아데스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정황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가 쳐들어와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이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페르시아와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동맹국들 끼리 서로 협력하여 페르시아와 대항하자는 델로스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동맹국이 낸 기금을 델로스에 보관하고 그 관리를 아테네가 맡는다. 그런데 아테네는 동맹국들의 자금을 아테네 치장에 유용하였다. 그 때에 파르테논 신전도 석조로 새로 세웠으니 아테네는 동맹국들의 자금을 아테네의 영화에 가져다 쓴 것이다. 이런 아테네에 불만을 가진 동맹국들이 아테네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 이후로 펼쳐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패망하게 되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걷는다.  


바로 이 시대 아테네의 정치가가 페리클레스였다. 그리고 알키비아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외조카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이자 동성연인이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워낙 명문가 출신에 외모도 잘생겼고, 뛰어난 재능에 전투에도 뛰어나 전장에서 공훈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출세의 가도만 달릴 줄 알았던 그가 점차 자만심에 빠지며, 아테네로 부터 여러 번 추방도 당하며 정치적 부침을 겪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며 아테네로의 복귀를 시도하지만 결국 아테네가 패배하면서 당시의 페르시아 땅인 프리기아로 피신하지만 그곳에서 암상당하며 삶을 마친다. 그는 플라톤의 ⟪향연⟫에도 등장하는데, 향연이 끝나갈 때 즈음 술에 잔뜩 취해 향연장에 나타난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향연의 주최자 아가톤을 고래 고래 고함쳐 부르며 등장하여 소크라테스 옆에 앉는다. 이렇게 그 시대의 중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알키비아데스를 셰익스피어도 그의 극 중 인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


돈이 몰리는 곳이면 어디든 가지 각색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셰익스피어는 바로 그런 인물로 타이먼이란 거부를 등장시켜 돈과 그의 돈 주변으로 몰려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며 돈 앞에는 인성도, 도덕도, 예의도, 양심도 모두 팽개치는 배금주의의 적나라함을 보여준다. 


타이먼은 대단한 거부이다. 그는 자기가 가진 재산으로 자주 향연을 베풀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다. 화가의 작품, 시인의 찬사에 대해 아낌없이 돈을 베풀고, 아직 값도 치르지 않은 끼고 있는 반지도 친구에서 빼서 주기도 하고, 빚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젊은 귀족에게 공짜로 빚을 갚아줄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금까지 내어주는 성품이 넉넉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앞뒤없이 베풀기만 하던 그의 자금이 드디어 바닥이 나고 만다. 당장 급해진 그는 자기가 베풀었던 사람들에게 하인들을 보내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당연히 자기가 베풀었으니 그들도 자기의 어려움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같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린다. 핑계도 다양했다. 하필 지금 돈을 누구에게 빌려주었다느니, 하필 지금 돈이 몽땅 떨어졌다느니… 하며. 그리고 타이먼이 돈을 빌렸던 원로들도 그가 돈이 떨어져 간다는 소식에 빌렸던 돈 내놓으라고 타이먼을 독촉한다. 사람들의 파렴치와 친구들을 믿었던 자기의 마음이 배신당하며 세상의 적나라함을 목격한 그는 아테네의 집을 떠나 아테네 성밖의 산속 동굴로 칩거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절함과 부도덕함, 배신감에 그는 점차 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그가 머물던 동굴 안에서 금덩어리들이 발견된다. 그는 다시 부유해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부유함의 허상을 경험하고 난 그는 금 보기를 돌처럼 한다. 그에게 박절하게 굴던 사람들이 그가 금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온갖 입에 발린 말을 해대며 다시 관계를 잘 가져보자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타이먼은 악담과 함께 금덩어리를 던져주며 욕을 하거나 돌을 던져 그들을 내쫓는다. 


Johann Heinrich Ramberg, <타이먼과 금(4막 3장)>, 1829, (사진출처 : en.wikipedia.org)




한편 알키비아데스 역시 아테네에 큰 실망을 한다. 알키비아데스의 친구 군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형언도를 받았다. 알키비아데스는 원로원의 의원들 앞에서 친구의 구명을 위해 노력한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군인이었음에도 원로들이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알키비아데스에게  추방형을 내린다. 전장에서 아테네를 위해 혼신을 다한 그와 친구 군인을 망신주며 뼛속까지 귀족들의 잘난체를 하는 그들을 본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를 저주하며 아테네를 떠나 아테네를 몰락시킨 방안을 모색한다.  


그런데 아테네의 상황이 점점 안좋게 변해간다. 의원들은 다급해져서 다시 부자가 되었다는 타이먼과 추방했던 알키비아데스에게 다시 아테네로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타이먼은 자기를 방문한 알키비아데스에게 아테네를 멸망시키라고 말한다. 단지 배신감 때문만은 아니다. 아테네가 처해있는 배금주의, 귀족들의 돈놀음,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그들의 이기주의, 사람들의 부도덕에 어떤 동정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한 그는 스스로 자기 삶을 마감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로 쳐들어 갔으나 원로원 의원들이 나와 자기들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알키비아데스에게 사과를 하며 아테네를 구해줄 것을 호소하자 그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극은 그렇게 끝난다.  



셰익스피어가 기원전 5세기를 무대로 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것


르네상스를 거치며 전 유럽으로 상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난 이후로는 유럽의 강대국들이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미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이 전세계로 무역선을 띄우며 어마어마한 자본을 축적해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영국의 16~17세기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비해 한 발 늦었던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거치며 그 대열에 참여했다. 스페인을 누르고 해상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네덜란드의 해상권까지 빼앗아온 영국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이미 셰익스피어는 그 시대에 번창해가는 황금만능주의와 그에 반비례하여 타락해 가는 인간의 심성을 보았던 것일까? 바로 이 작품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인간들의 지독한 배금주의와 돈 앞에 양심도, 도덕도 내팽개치는 다양한 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 시대를 통해 현재를 본다


타이먼이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아낌없이 베풀었건만 자기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과 질시였고, 다시 금을 발견했다는 소문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다시 얼굴을 내미는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타이먼은 돈 앞에 한없이 야비해지는 인간의 바닥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작품 속의 야비한 사람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고 비웃을 수도 없다. 우리 역시 돈을 쫓는 배금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전 세계는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아테네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신 숭배에 빠져 도덕이고 뭐고 내팽개친지 오래이다.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또는 자기 나라의 이익이라면 전쟁도 불사한다. 오직 이익만을 쫓는 세상이 되었고, 그 이익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여전히 세계의 이곳 저곳이 전쟁중이다. 


타이먼과 그의 돈을 노리고 몰려드는 사람들, 정치가들에게 질시 당하는 장군 알키비아데스, 공익 보다는 사익 추구에 빠진 원로원 원로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니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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