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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Sep 26. 2024

⟪오셀로⟫ 다시 읽기

이 작품은 연세대 최종철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다.


바보, 머저리, 등신, 축구, 등 어떤 욕을 먹어도 모면하기 어려운 사람이 오셀로이다. 가장 나쁜 놈은 이아고이지만 그에게 속아 흠결없는 아내를 죽였으니 오셀로 또한 이아고 못지 않게 못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영화로 본 사람도 많을 것이고, 또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이 하도 유명하여 거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은 책의 말미에 이 책을 번역한 최종철 교수가 훌륭하게 잘 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작품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내 감상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줄거리


베네치아 정부에 고용된 장군 오셀로는 베네치아 귀족의 영애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져 야밤에 몰래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나중에 알게된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지만 마침 터키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접수되며 베네치아 공작은 급히 오셀로를 키프로스로 파견한다. 파견 전에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공작은 장인과 사위 사이의 오해를 풀어 서로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한다. 데스데모나도 남편을 따라 키프로스로 가고 싶다고 공작에게 청을 하고, 두 사람은 같이 키프로스로 향한다. 


Percy Anderson, <오셀로 복장>, 일러스트, 1906




오셀로에게는 부관인 카시오와 기수인 이아고가 있다. 이아고는 자기 보다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카시오가 급격히 진급한데 반해 자기는 기껏 기수나 하고 있다고 잔뜩 불만에 차 있다. 그리고는 카시오의 자리를 뺏으려 한다. 또 데스데모나가 카시오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꾸며 둘을 모두 제거하려 한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오셀로에게 끊임없이 카시오를 비난하고, 또 데스데모나의 행실에 대해 오셀로가 의혹을 갖도록 이간질을 하며 오셀로의 마음 속에 드디어 질투의 씨앗을 심는데 성공한다. 질투의 씨앗이 심긴 이상 그것은 스스로 무럭무럭자라는 법이다. 질투와 의혹은 계속 커져 가고, 이아고는 그런 오셀로에게 계속하여 의심스러운 물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여주거나 목격하게 하면서 오셀로의 질투를 증폭시켜 나간다. 결국 오셀로는 질투를 멈추지 못하고 데스데모나가 정말로 카시오와 불륜 관계라 의심하며 그녀를 죽이고 만다. 마지막에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가 이아고가 저지른 모든 행실을 폭로함으로써 오셀로에게 진실을 밝히지만 이미 데스데모나는 죽은 다음이다. 이에 오셀로의 자책은 이미 늦었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친다.   



오셀로의 약점


오셀로는 간악한 이아고의 이간질에 속아 질투에 눈이 멀어버렸다. 얼마든지 아내의 진실을 확인해 볼 수 있었음에도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아고의 간교에 흔들린다. 오셀로의 잘못이라면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라 믿고, 이아고야말로 충직한 신하라 믿어버린다.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질투에 빠진 오셀로를 통해 극명하게 마주한다. 가련한 데스데모나. 그녀의 잘못이라면 사랑을 모르는 남자를 사랑한 죄이다. 


이 작품은 우리 마음 속에 정착한 질투라는 씨앗 하나가 무성하게 자라나 어떻게 한 사람의 몸과 정신을 순식간에 장악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기 스스로 뿌린 마음 속 질투도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럭무럭 자라나 삶을 속박하지만, 하물며 매일 옆에서 악마가 그 씨앗에 물주고 거름까지 주며 부추기기까지 한다면 그것을 제거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정신이 똑바로 서지 않거나, 상대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면 질투는 상대를 집어 삼키기에 앞서 자기 삶을 먼저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분명 이아고가 가장 나쁜 놈이지만 그의 간계에 흔들리며 자기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너무도 쉽게 의심해버리고 심지어 창녀라고 아내를 매도하는 그의 언행은 참으로 못난 소인배에 다름 아니다. 그의 대사를 보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자격지심이 있었던 듯하다. 그는 건장한 체구에 베네치아에 채용된 장군이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성공한 용병이었음에도 검은 피부의 무어인에 나이도 살짝 많고, 게다가 여인들과 어울리는 에티켓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다. 그런 자기를 사랑한 데스데모나는 분명 신사들과 놀아나다 자기와 같은 특이한 사람을 잠깐 사랑한 것 뿐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리고 이아고는 그런 그의 자격지심을 이용하여 자기의 간계를 실현시켜 나간다. 


수많은 귀족 집안의 청혼도 거절하던 베네치아의 귀족 아가씨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까지 배신하고 그와 야밤 결혼식을 올린 것이 오히려 오셀로를 의심케 하는 약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사랑을 쉽게 의심하고 질투에 눈멀어 죽이는 것을 보면 그는 자기가 올라선 자리를 유지할 역량도, 마음의 덕량도 부족한 소인배에 불과해 보인다. 사실이 밝혀지고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오셀로는 자결하고 말지만 차라리 죽는 것이 살아서 평생을 자책하며 사는 것 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외모는 대장부의 모습이나 쉽게 간계에 빠져들어 자기에게 불리한 것만 믿어버리며 그는 그의 성공의 정점에서 몰락하고 만 것이다. 


Alexandre-Marie Colin,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1829





현재에도 존재하는 이아고!


예전에도 이 작품을 읽을 때 이아고의 간악함에 가슴이 쿵쿵거려 읽기가 힘들었는데,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그랬다. 오히려 더했다. 젊어서 읽을 때는 이아고와 같은 인물에 대해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이겠거니 하며 읽었다. 그런데 세상 살아보며 정말로 그런 인간이 현실에도 있더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 다시 이아고를 마주하니 더 분노가 올라온다. 


자기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농락하는 인간, 철저히 남의 삶을 방해하고 조직 내의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면서 조직과 사람들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인간, 자기가 군주인 양 군림하며 사람들을 무시하는 인간.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간. 실제로 그런 인간들이 있음을 경험하였기에 이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이 잠깐 괴로웠다.  


세상 살아가며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요즘처럼 소시오패스가 많은 세상이고 보면 이아고 같은 인간을 만날 확률은 옛날 보다 더 높아졌을 수도 있겠다. 단지 이런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들을 빨리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라고, 또 마음 속에 질투나 좋지 않은 감정의 씨앗이 뿌려진다면 그것이 자라기 전에 빨리 뿌리채 뽑아버릴 수 있는 판단력과 덕량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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