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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Dec 22. 2024

⟪템페스트⟫

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

이 작품은 연세대 오화섭 교수(작고)가 번역한 문예출판사 판본으로 읽었다.  



젊은 시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과 ⟪템페스트⟫였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 작품들이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좋다. 한여름 밤의 꿈은 청소년기의 내가 봐도 변화무쌍하는 사랑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템페스트는 인생의 풍상을 겪으며 쌓였던 울분과 원한이 세월과 함께 용해되어 용서라는 너그러움으로 바뀌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좋은 이유를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인간사를 어떻게든 해석해 보려는 의도가 엿보여서 그런 것 같다. 인간의 감정과 길흉을 좌지우지 하는 내면과 외부의 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내면의 영적인 체험이라든지, 밖에서 우연처럼 찾아오는 길흉사를 겪다 보면 우리의 마음과 인생을 뒤흔드는 영적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있는 것 같은 그 무엇! 그것을 이 두 작품이 정령이나 요정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템페스트의 모티프


이 작품을 번역한 오화섭 교수의 작품 해설에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609년 여름 조지 소머스경의 지휘로 북미 버지니아로 함대가 출항했다. 그런데 서인도 군도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버뮤다 군도에 10개월간 표류했다. 온화한 기후라 좋았지만 돼지와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고 한다. 선원들은 그런 일을 겪으며 그곳이 요정과 마귀가 사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1610년 5월에 두척의 배로 버지니아에 도착하였고, 같은 해 9월에 이 이야기가 영국에도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작품의 플롯은 독일작가인 야코프 아이러의 ⟪아름다운 지데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본다고. ⟪템페스트⟫는 1612년에 쓴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거의 최후의 작품이다. 그는 1616년에 사망했다. 


1674년 각색한 셰익스피어 희곡의 오프닝을 위한 무대 연출에 대하여 1709년 Nicholas Rowe가 묘사한 그림



작품의 줄거리


이 작품은 나폴리와 밀라노 라는 두 도시국가를 대비시키며 극을 전개한다. 나폴리 측은 왕 알론소, 왕의 아우 세바스티안, 왕의 아들 페르디난드가 대표 주자이고, 밀라노 측은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 공작의 아우 안토니오, 공작의 딸(미란다)가 대표 주자이다. 


밀라노 공작의 아우 안토니오는 형 페르디난드를 밀어내고 현재 밀라노의 공작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를 지지해 주는 댓가로 나폴리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다. 나폴리왕은 쫓겨난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와 딸 미란다를 잔인하게 취급했다. 바다에 버려진 공작과 딸은 어떤 섬에 표류하게 되어 지금 12년째 둘이 살고 있다. 그동안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익혔고, 3살이던 딸에게는 최고의 교육을 시키며 잘 키워냈다. 


William Maw Egley, <프로스페로와 미란다>, 1850년경



마침내 프로스페로는 자기가 습득한 마술을 써서 자기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들이 탄 배에 폭풍을 불어 파선케 한 후 모두가 자기가 사는 섬으로 표류하게 만든다. 사건은 표류한 오후 2시경부터 6시경까지의 이야기이다. 


큰 줄거리는 두 가지 축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프로스페로의 삶을 망친 원수들에 대한 그의 용서이고, 다른 하나는 나폴리 왕의 아들인 페르디난드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의 사랑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프로스페로에게 역경을 가한 원수들에게는 프로스페로가 마법을 쓰기도 하고, 정령인 에이리얼 및 요정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그들 스스로 죄과를 뉘우치게 함으로써 프로스페로가 용서해 주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둘째로 첫 눈에 사랑에 빠진 페르디난드와 미란다의 급작스런 사랑이 걱정되는 프로스페로는 일부러 페르디난드에게 고난을 겪게 함으로써 사랑을 시험해 보고 나서야 그들의 사랑이 진실됨을 알고 결혼시키는 이야기이다.  


헨리 퓨젤리, <에어리얼>, 1800~1810




작품에 드러난 시대상


우선 이 두개의 핵심 플롯을 중심으로 하되 그 과정에서 당시의 주변 국가간의 정세 이야기도 나오고,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쟁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밀라노의 안토니오는 공작인 형 프로스페로의 권력을 부당하게 탈취한 후 그 권력을 지지해주는 댓가로 대등한 관계였던 상대편 국가 나폴리에 조공을 바침으로써 국격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나폴리 왕의 동생인 세바스티안도 친구 안토니오의 행실을 보고 배웠고, 게다가 안토니오가 도와주겠다고 부추기자 형인 왕의 권력을 찬탈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안토니오에게는 자기가 성공하면 조공 바치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겠다고 한다. 근묵자흑이다.  


두번째로, 정령인 에이리얼과 (프로스페로와 미란다가) 살고 있는 섬의 원주민인 칼리반을 다루는 모습을 통해 권력자가 아랫 사람을 얼마나 부당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세번째로 곤잘로라는 나폴리의 강직한 노 고문관 입에서 나오는 섬을 식민지로 개척해야겠다는 말과, 미천한 신분인 술주정뱅이 주방장과 광대의 입에서 칼리반을 데려다 노예로 팔면 큰 돈 벌겠다는 대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대 사람들이 식민지 개척과 노예 무역에 미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네번째로, 섬의 주인이자 원주민인 칼리반을 폄하하는 말들 - 무식하고 괴상하게 생겼다 - 은 하나같이 백인 식민 통치국가들이 식민지국에 대해 했던 폭언과, 폭행, 쇄뇌의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칼리반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말하면서 미천한 존재인 술주정뱅이 주방장 조차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그 땅의 주인이었던 칼리반이 얼마나 외지에서 온 백인들에게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으면 새로 온 백인 술주정뱅이가 압박을 가해지기도 전에 스스로를 가장 아래에 두면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까? 그런 순종적인 원주민을 사람 취급 하지 않고 노예로 잡아다 팔면서 치부하던 당시의 선진국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섬에 표류한 백인이자 당대의 부자 나라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시대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비판적 시각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도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던 당대의 정치 및 시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가 오화섭


나는 이 작품을 번역한 오화섭교수에게도 눈길이 갔다. 그는 1916년에 태어나 1979년에 세상을 뜬 영문학자이다. 오롯이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어낸 분이다. 책에 소개된 이력을 보니 “미국 현대극을 자연스러운 우리 말로 번역해서 알린 선구자로 ‘번역을 창작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방 이후 부터 극단에서 직간접적으로 활동하며 번역 대본을 무대에 올리는데 힘썼으며, 한국 영어문학회 회장, 한국 셰익스피어협회 이사 등을 지내며 학술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음악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서 각종 매체에 음악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를 거쳐 1953년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의 교수 이력은 소개하는 사이트별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연세대학교에서 교수 및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연극 평론, 희곡을 번역하여 우리 연극의 발전에도 이바지한 분이라고 한다. 


나는 그의 번역으로 템페스트를 읽으며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 그리스 신화를 다채롭게 채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오화섭 교수는 신화에 나오는 특정 캐릭터에 대해서 그들의 본래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 속의 그들의 역할로 풀어서 번역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 신화를 모르는 독자라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번역을 한 것이다. 하긴 그 시절에 셰익스피어를 읽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스 신화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작품을 읽던 중에 좀 이상하다 싶어서 원문을 찾아보고 나서야 오교수가 어떤 식으로 번역을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문에는 모두 신화 속의 이름을 소개했을 뿐 그들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3막 3장에 나온다. 


“천둥 번개가 치고 에어리얼이 얼굴과 몸은 여자고, 새 날개와 손톱이 달린 괴물의 모양을 하고 등장해 식탁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자 기묘한 방법으로 음식이 사라진다.”


이 부분에 대한 원문은, 


“Thunder and lightning. Enter Ariel like a Harpy; claps his wings upon the table; and, with a quaint device, the banquet vanishes.” 이다. 


번역문에 비해 원문이 짭다. 왜냐하면 원문에 나온 Harpy를 번역가는 이름 대신 그것이 어떤 것인지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고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단지 원문의 Harpy는 그대로 번역하고 주석으로 그에 대해 설명을 달아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나는 격동의 역사를 모두 지난 시점에 태어났다. 그러니 그 어렵던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라와 학문의 토대를 세우려 애쓴 분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모른다. 그 시절을 자기가 가는 길에서 열심히 살아내어 후배들에게 까지 도움을 주는 이런 분들을 대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곁다리 이야기


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일명 <템페스트>도 좋아하고, 2010년에 개봉했던 영화 <더 템페스트>도 좋아한다. 2010년 작 템페스트에서는 미란다의 아버지가 아니라 미란다의 어머니가 나오는 것으로 각색했다는 것이 색달랐다. 헬렌 미렌이 미란다의 어머니 프로스페라 역을 했다. 벤 위쇼가 에어리얼 역을 맡았는데, 나는 이 2010년판 영화가 대단히 좋았다. 헬렌 미렌의 역할도 대단했지만 에어리얼 역의 벤 위쇼의 연기가 탁월했다. 정말 정령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싶었다.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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