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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Nov 18. 2024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

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

이 작품은 동국대 교수였던 김재남 교수가 번역한 해누리 출판본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제작, 공연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작품은 전원극에 속하는 낭만희극이지만 전원에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깊고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다. 결론이 아름답게 맺어진다고 하여 과연 희극이라 할 것인가. 모두 일이 사필귀정으로 돌아가 곤란을 겪던 사람들이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들이 겪었던 고난까지 제 자리로 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희극인 이유는 고난 속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과 다음 세대의 청춘남녀가 각자의 배필을 만나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 속에 잠재된 비극성


이 작품에는 세 가문이 등장한다. 1) 공작위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지금은 도시에서 먼 시골 동굴에 은거하고 있는 옛 공작(Duke Senior)과 그의 딸 로잘린드, 2) 형의 공작위를 찬탈하여 현재 공작위에 앉아 있는 동생 프레데릭공과 그의 딸 실리아,  3) 타개한 로울랜드 드 보이스경의 세 아들인 올리버, 자크 드 보이스, 올랜도가 그들이다. 프레데릭공과 고 로울랜드경은 서로 원수였고, 옛공작과 로울랜드경은 친밀하게 지냈었다. 로울랜드경은 아마도 정의감이 깊은 사람이었던 듯 하다. 공작위를 찬탈한 현재의 공작 프레데릭을 싫어했고 옛공작과는 친하게 지냈던 것을 보면. 


등장인물 관계도




이 세 가족은 각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옛공작이 공작위를 빼앗긴 이후 먼 시골의 숲 속 아든(Arden)으로 물러나 사는 동안 그의 딸 로잘린드는 프레데릭의 딸 실리아와 같이 궁에 살며 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둘은 어렸을 때 부터 같이 자라 친남매처럼 자랐던 것이다. 그러나 프레데릭공은 조카딸 로잘린드가 눈엣가시라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리아가 언니를 쫓아내면 자기도 나가겠다며 아버지에 맞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레데릭공이 조카딸 로잘린드를 쫓아내자 로잘린드는 사촌 동생 실리아, 그리고 궁의 어릿광대을 데리고 각자의 패물까지 챙겨 로잘린드의 아버지가 은거하고 있는 아든 숲을 향해 떠난다. 이에 키가 큰 로잘린드는 남장을 하고, 키가 작은 실리아는 여동생으로 변장을 한다. 


2017년 <뜻대로 하세요>에서 로잘린드 역을 맡았던 Marie Davey




다른 가문으로써 로울랜드경이 죽으며 장남 올리버에게 두 동생을 잘 교육시킬 것을 당부하며 둘째와 세째 아들에게도 많지 않지만 유산을 남겨 놓았다. 그런데 형 올리버는 둘째 동생은 교육을 시켜주고 있지만 막내 올랜도에게는 교육도 시켜주지 않고 동생에게 책정된 아버지의 유산도 뺏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올랜도는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성격이 고매하고 잘 생겨 형인 자기 보다 사람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대해서도 질투를 하고 있다. 마침 동네에 씨름꾼이 나타나 프레데릭공의 저택 잔디밭에서 도전자와 씨름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형 올리버는 올랜도가 그 씨름꾼과 씨름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씨름꾼을 도발하여 올랜도와 씨름을 하게 한다. 씨름을 한 상대의 갈비뼈를 몇 대씩 부러뜨리는 그 씨름꾼이 당연히 올랜도를 이길 것이라 생각하여 씨름꾼을 이용하여 동생을 제거할 생각이었지만 올랜도가 씨름꾼을 물리친다. 



인연의 시작


올랜도가 씨름꾼과 씨름을 할 때 마침 로잘린드와 실리아가 그 장소에 나타나게 되고, 두 사람의 체격 차이를 본 사촌남매는 올랜도의 씨름을 말린다. 그럼에도 올랜도가 씨름을 하겠다고 하자 두 사촌은 자기들의 목거리를 그의 승리를 기원하며 걸어준다. 그리고 씨름을 지켜본다. 로잘린드는 첫 눈에 이미 올랜도에게 반해버린 상태였다. 이 씨름이 있고 난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로잘린드는 숙부에게 쫓겨난다. 로잘린드와 실리아는 공작의 궁을 나와 시골의 아든 숲을 향해 가고, 가는 도중에 내내 로잘린드는 올랜도를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씨름을 치른 이후 올랜도 역시 더 이상 형과 같이 살 수 없어 나이든 하인 아담이 자기의 노년을 위해 모아둔 돈을 주며 함께 떠나자는 말에 두 사람도 함께 아든 숲을 향해 떠난다. 



아든 숲


마침내 두 사촌자매와 어릿광대는 아든 숲이 있는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이 시골 마을에도 문제가 있다. 시골에 도착한 로잘린드와 실리아, 그리고 어릿광대는 오래 걸어서 너무 피곤하고 배도 고파 길에서 만난 시골노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먹을 것을 청하지만 노인은 대접할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자기들의 주인이 출타중이라 재료를 꾸어다 먹을 것을 만들어 줄수도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유한 농장주에 비해 가난한 소작인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한지 언뜻 언뜻 묘사로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연구가 Frederick Gard Fleay의 주문으로 John Macpherson이 그린 연작 작품 중 아든 숲, 에칭작품, 1889




이즈음 올랜도도 아든 숲에 도착하여 로잘린드에 대한 자기의 넘치는 열정을 시로 지어 나무 마다 걸어둔다.  이것을 발견한 남장한 로잘린드는 올랜도 역시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외에도 아든 숲 주변의 시골 마을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청춘 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양치기 소년과 소녀의 밀고 당기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고, 순수한 시골처녀를 차지하려는 두 사촌자매를 따라온 어릿광대의 수작이 이어진다. 남장한 로잘린드는 올랜도가 알아보지 못하니 그의 사랑을 상담해 주는 척하며 올랜도의 절절한 사랑의 고민을 다 들어준다. 


작품에서 아든 숲은 모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는 장소로 등장한다. 마치 성경 속의 에덴 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곳이 마냥 모든 것이 풍족한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옛공작과 그를 추종해서 따라온 귀족들은 비록 아든 숲 속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영화로왔던 옛 궁에서의 삶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예절과 문명이 주는 무게, 그리고 결국 자기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동생의 부패와 비교하면 숲 속의 동굴은 문명도, 부귀와 영화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속세의 욕망이 시원하게 씻겨나간 듯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회심한 형 올리버가 쫓아낸 동생을 찾아 이 숲으로 들어왔고, 형의 공작위를 찬탈한 동생 프레데릭도 형을 찾아와 공작위를 형에게 되돌려 주며 돌아오라고 한다. 이 숲이 좋음에도 이 숲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은 다시 자기들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문명 세계로 돌아가기 전 이 숲에서 그룹 결혼식이 열린다. 동생을 찾으러 온 올리버를 보고 실리아가 한 눈에 반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 로잘린드는 올랜도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아버지에게 소개한다. 이 두 커플과 함께 시골의 양치기 커플과 순박한 시골 처녀와 어릿광대의 결혼식이 열리며 희곡이 마무리된다. 


어릿광대 터치스톤과 순박한 시골처녀 오드리, 2009년 연극에서.



작품의 여운


아든 숲은 모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기를 성찰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이다. 아든 숲은 결코 에덴 동산처럼 자연의 혜택이 넘치는 풍족한 곳이 아니다. 문명이 베푸는 풍요와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 곳은 잠시 문명의 혜택을 벗어나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장소는 될지언정 영구히 살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이다. 하물며 이곳에서 살고 있는, 시골살이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조차 살기에 팍팍한 장소이다. 시골이라서가 아니라 이곳까지 침투해 있는 주인과 소작인의 관계라는 문명의 짐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명에 길들여진 도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연의 원초성이 살아 있는 곳에서 문명의 무게를 내려놓고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장소는 되어주는 장소이다. 


이런 본래성을 회복하는 장소에서 젊은이들이 쌍쌍이 맺어졌다. 아름다운 맺어짐도 있지만 계략에 의한 맺어짐도 있다. 그들의 삶이 어찌 전개되든 이 젊은이들이 앞 세대를 이어가고, 또 이 젊은이들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곧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삶은 영속적으로 계속된다는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기에는 시골과 원시성을 보존한 숲만큼 좋은 장소가 있을까. 


희극이지만 희극안에 비극성이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다. 비극이 해소되었다고 희극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작품을 희극이라 보는 이유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내비치고 있고, 무엇보다 다음 대를 이어가며 삶은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생은 한편의 연극”


우리는 흔히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라고 하여 인생을 한편의 연극에 비유한다. 그런데 이 표현의 원전이 바로 이 작품이다. 2막 7장에서 옛 공작을 따라 아든 숲으로 은거한 귀족 제이퀴스가 하는 대사에 나오는 말이다. 그 부분 전체를 옮겨 놓는다.     



2막 7장


JAQUES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At first the infant,

Mewling and puking in the nurse's arms.

And then the whining school-boy, with his satchel

And shining morning face, creeping like snail

Unwillingly to school. And then the lover,

Sighing like furnace, with a woeful ballad

Made to his mistress' eyebrow. Then a soldier,

Full of strange oaths and bearded like the pard,

Jealous in honour, sudden and quick in quarrel,

Seeking the bubble reputation

Even in the cannon's mouth. And then the justice,

In fair round belly with good capon lined,

With eyes severe and beard of formal cut,

Full of wise saws and modern instances;

And so he plays his part. The sixth age shifts

Into the lean and slipper'd pantaloon,

With spectacles on nose and pouch on side,

His youthful hose, well saved, a world too wide

For his shrunk shank; and his big manly voice,

Turning again toward childish treble, pipes

And whistles in his sound. Last scene of all,

That ends this strange eventful history,

Is second childishness and mere oblivion,

Sans teeth, sans eyes, sans taste, sans everything. 

(출처 : https://shakespeare.mit.edu/asyoulikeit/full.html )


(한글 번역) 제익퀴즈 


세계 전체가 하나의 무대지요. 그리고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배우에 불과하고요. 모든 사람이 등장했다 퇴장했다 하는데, 한 남자는 평생 동안 여러 가지 배역을 맡고 그의 일생은 칠 막으로 구성되지요. 처음에는 어린애인데, 유모의 품에 안겨 '으앙으앙' 울고 침을 질질 흘리지요. 그 다음에는 투덜거리는 어린 학생인데, 가방을 멘 채 아침에는 빛나는 얼굴이지만 달팽이가 기어가듯이 마지못해 학교에 가지요. 그 다음에는 연인인데, 용광로처럼 한숨을 쉬고, 애인의 이마를 생각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지요. 그 다음에는 군인인데, 기이한 맹세들을 늘어놓고, 수염은 표범과 같으며, 체면을 몹시 차리고, 싸움은 번개처럼 재빠르며, 물거품 같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대포 아가리에도 뛰어들지요. 그 다음에는 법관인데, 살찐 식용 닭과 뇌물 덕분에 배는 제법 뚱뚱해지고, 눈초리는 매서우며, 수염은 격식대로 길러져 있고, 현명한 격언과 진부한 문구도 많이 알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 자기 배역을 연기하지요. 그런데 여섯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슬리퍼를 신은 말라빠진 어릿광대 역으로 변하는데, 콧잔등 위에는 안경을 걸치고, 허리에는 돈 주머니를 차며, 젊은 시절에 입었던 홀태바지는 말라빠진 허벅지에 너무나도 헐렁하고, 사내다운 굵직한 음성은 어린애 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되돌아가서 피리처럼 삑삑 소리만 내지요. 그리고 파란 많은 이 일대기의 끝 부분인 마지막 장면은 제 2의 어린 아이의 시 절인데, 오직 망각만 있을 뿐, 이빨도 없고, 눈도 없고, 미각도 없고,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거지요. (출처 : 김재남 번역, 해누리 출판사)


William Mulready, <세계 전체가 연극 무대>, 1838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이 대단히 좋았다. 찰리 채플린이 말하길,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코미디이다)이라고 하였다. 이 작품 ⟪뜻대로 하세요⟫는 겉으로 드러난 결말은 희극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짙은 비극이 깔려 있다. 삶이란 그런 것 아닐까? 인생이 어찌 희극적이기만 할 것이며, 어찌 비극적이기만 할까. 개인개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면 상처 없는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다보면 내 삶에 밝고 화려한 희극의 실이 짜넣어지는 날도 있으니.

                    

사진출처 :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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