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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Sep 20. 2022

주량즈, ⟪미학으로 동양인문학을 꿰뚫다⟫

중국의 미학으로 서양의 미학을 비견해 보다

주량즈 지음, 신원봉 옮김, 알마출판사, 2013.3.15.출간, 648쪽, (원저는 북경대학교출판사에서 2006년 출간)




읽는 동안 가슴이 웅대해지고 감동이 밀려왔다. 중국예술의 정수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현기증도 동반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세를 풀고 읽을 수가 없어서 내내 정자세로 집중해서 읽다보니 장시간 읽을 수가 없었다. 전체 15챕터의 단락을 매일 한 챕터씩 읽으면서 독서를 마쳤다. 


이 책은 북경대학교의 미학과 교수인 주량즈가 학생들에게 할 미학 수업을 위해서 준비한 강의서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전체 15강인 것을 보니 한 학기 수업 분량이었던 모양이다. 각각의 챕터가 분량이 비슷한 것을 보니 한 챕터가 한 주의 수업분량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번역하신 신원봉 교수의 번역도 탁월하다. 


읽는 동안 어려운 부분은 별로 없었다. 워낙 같은 문화권에서 살아오며 이미 체득된 지식들이라 이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여 그물망을 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교, 도교, 불교, 주역 등 중국의 주요 철학이 예술과 미학에 미친 영향관계를 조금 더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었고, 비슷한 듯 다른 서로의 특이점에 대해서도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계기였다. 오히려 지난날 열심히 공부해온 서양미술사나 서양의 미학이론 보다 훨씬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문화가 가진 힘이고 알게 모르게 삶 속에서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 체득된 내 문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동양에서의 예술미학의 제1조건은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있다. 천지만물 속에 깃든 생명력과 내 생명력이 하나된 경지를 잘 담아낸 작품이 최고의 예술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동양의 예술가는 스킬을 수련하여 뛰어난 스킬을 발휘하여도 그림에 생동력이 없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스킬이 뛰어난 예술가는 낮게 평가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과 내가 하나되는 내면적 체험을 화폭에 어떻게 상쾌하게 담아낼 것인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내가 천지만물의 생명력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유불도의 가르침이 조금 차이가 있다. 도교에서는 지식도, 욕망도 버리고 세상에서 초탈할 것을 가르친다면, 불교에서는 불이사상을 통해 나와 대상이 둘이 아님을 가르친다. 유교에서는 인과 예와 같은 덕성의 함양을 가르친다. 이와 같이 예술에 있어서도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우선 마음을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예술활동 역시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이 좀 어눌해도 인격이 고매한 자의 예술은 높게 평가받고, 스킬은 뛰어나지만 삶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명나라에 와서는 이런 관행이 문제가 되어 중국 예술의 질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를 계기로 중국은 미학이론을 점검하여 쇄신하는 기회가 되었지만 큰 틀의 미학 이론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예술에 있어서 예술가의 인격 함양이 중요하고, 실제로 예술 창작과정도 수행의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작품에는 자연스러이 예술가의 정신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예술가도, 관람자도, 작품을 그리거나 품평할 때 참고가 되는 이론이 많이 등장하는데, 사혁의 육법(* 아래 해설 참조)은 그 중 하나이다. 자고로 그림이든 글이든 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 전이모사라고 하여 6개의 법칙을 통해 회화의 창작 원리와 구도 등에 대해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회화의 외형 뿐 아니라 기운과 정신의 드러남을 중요하게 생각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회화에 어떻게 화가가 삼라만상의 생명력과 생동력을 잘 담아내는가가 중국의 중요한 미학이었다. 이런 문화이기 때문에 관람자도 화가가 그려낸 그림 속에서 생명력을 느끼고 그 안에서 관람자의 생명력도 생동하여 내면을 수양할 수 있는 것이다.  




주량즈 교수의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


이 미학서를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미술도 저절로 연상이 되었다. 우리가 중국의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문화권이다 보니 중국의 철학과 예술도 당연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전 읽은 ⟪현재 심사정⟫에 현재가 미술을 공부하면서 중국의 화보책을 가지고 연습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현재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문인화가들이 중국의 여러 화보를 참조하며 그림을 배웠다. 화보의 그림을 수없이 따라 그리며 연습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작품 세계를 열어간 것을 알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측은지심이 일었다.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려면 작품이 제작된 시대상과 시대를 이끌어 간 철학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쉽게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화보에 실린 그림들도 당대 것만이 아니라 여러 왕조의 그림들이 같이 실려 있는데도 시대적 철학이나 그 시대의 화론(미학)도 모른채 화보만으로 그림을 공부했으니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드물게 들여오는 책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가며 공부하려니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서양의 예술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 바라보는 우주와 자연, 인간이 대상화되어 등장한다면, 중국의 미술은 우주, 자연, 인간이 서로 생명력으로 소통하며 하나되는 경지를 추구했다. 서양의 현대미술이 굳건한 이성 중심의 전통적 미술사를 깨기 위해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 예술을 추구했던 반면, 동양(중국, 한국)의 미술에서는 그 과정이 필요 없었다. 동양의 미술은 예술가가 내면의 체험을 통해 우주, 자연, 인간과 하나가 되려고 했지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성을 오히려 버려야할 것으로 보았지 이성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지인이 서로 생명력으로 소통하여 하나되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서양처럼 모더니즘이 필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도 우리나라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을 거치면 외세에 의해 전통문화가 파괴되고 시대의 흐름에 쫓아 서양화로 치닫다 보니 정작 우리에게 필요없는 서양미술사의 과정에 올라타서 20세기를 보내온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나는 20세기의 서양의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비이성과 무의식-인공적인 미, 추, 파격, 전도, 전통파괴 등- 에 기반한 작품들이 썩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을 봐도 나에게 다가오는 감흥이 별로 없다. 그것은 그들의 질서와 논리와 합리로 대변되는 그동안의 이성놀음을 뒤집는 또다른 파격일 뿐 그 안에 여전히 살아 생동하는 생명력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폐함만 느껴진다. 이성이 가면을 쓰고 신사인 척 하다 본색이 드러난 후 후다닥 수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서양의 조류를 이제 막 서양미술에 합류한 20세기의 우리의 미술가들도 따랐다. 나는 우리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서양 미술사의 모더니즘을 끌어다 설명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에게는 그 모더니즘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이성에 기반하여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성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좋은 철학과 예술 이론을 두고도 그것을 겉으로만 흉내내고 진심을 담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한다고 본다. 중국의 영향이 지대하다 보니 우리는 내내 중국의 영향을 답습했지 자체적인 미학이론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물론 겸재 정선과 같은 진경산수와 같은 우리다운 미술과 화론이 나온 적도 있지만 그것도 짧은 시간으로 끝났다. 그렇게 우리다운 우리의 힘을 기르지 못하고 결국 식민과 전쟁의 과정을 거치며 서양화의 길로 들어섰고, 우리의 문화와 전통은 단절되어 버렸다. 


나는 예술이 유흥거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물론 절대 유흥거리가 아니다. 종교가 사라진 시대에 종교를 대신한 것이 예술이라고 할만큼 예술은 우리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 그런데 그 예술이 단지 예술가의 감정놀음이나 이성놀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훌륭한 예술가들을 많이 안다. 예술가가 세상과 생명력으로 하나되어 그 하나된 내적 체험을 드러낸 작품, 그리하여 그것을 보는 관람자로서의 나도 예술가의 생명력을 통해 내 생명력이 생동하고 마음도 수양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 사혁(謝赫)의 육법(六法)

사혁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남제(南齊, 479~502) 말기의 화가로 화가품평(畫家品評)인 《고화품록(古畫品錄)》의 〈서문〉에서 6가지의 화평 기준을 제시했다.

① 기운생동(氣韻生動) : 그림에는 기운이 생동해야함

② 골법용필(骨法用筆) : 붓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골법으로 붓을 사용

③ 응물상형(應物象形) : 형상에 대한 것으로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그림

④ 수류부채(隨類賦彩) : 채색하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사물의 종류에 따라 채색

⑤ 경영위치(經營位置) : 구도에 대한 것으로 그림의 제재와 화면의 위치를 경영

⑥ 전이모사(轉移模寫} : 그림을 임모하는 기능에 관한 것으로 옛 그림을 옮겨서 베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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